▲할라핀뇨, 아바네로(habanero)고추를 세로로 길게 썬 할라핀뇨와 한국 청양고추보다 서른 배 가까이 맵다는 주황색의 아바네로가 놓여있다.
김유보
반면 그린가(Gringa)는 명칭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된다. 좀 어이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미국 여자가 멕시코의 한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호텔을 나서던 여자가 호텔 앞 타코 집에서 꼬챙이에 꿰어진 파스토르를 보고는 큰 토르티야(tortilla: 옥수수 전병)에 치즈를 얹고 그 위에 파스토르를 올려서 먹은 것이 유래다. 미국 여인을 지칭하는 그린가(Gringa)가 그대로 이 음식의 명칭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린가(Gringa)라는 단어에서 난 멕시코의 아픈 과거를 느낀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졸지에 멕시코 주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을 잃게 된 멕시코는 결사항전을 하지만 멕시코 동부 연안 베라 크루스로 상륙작전까지 감행한 미국에게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함락되고 만다.
이후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1800만 가량의 달러만 지불하고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유타 주 등 한국 영토의 15배 정도 크기의 땅을 자국영토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때 미군이 입었던 군복 색상이 초록색(Green)이었다. 수도까지 무력으로 함락된 멕시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말 한 마디였다.
"Green, Go(미군은 물러가라)!!!" 합창으로 외쳤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작은 소리로 전하는 말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자국의 심장까지 들어와 버린 미군들에게 외치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남성을 지칭하는 그린고(Gringo: 미국 남자)가 되었고 스페인어 특성상 어미를 –a로 바꾸어서 성별을 구별하기에 미국 여자를 그린가(Gringa)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을사늑약으로 한일강제합병이 되어본 아픈 이야기가 있기에 그리고 3·1운동에서 불렀던 "대한민국 만세"라는 힘찬 함성이 있었기에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십삼 년 전에 2리터 맥주 병이 담긴 검은 봉지와 포장된 그린가, 파스토르를 들고 돌아가던 길은 지금도 가끔 지나가다 보면 무척이나 우울해 보인다. 옆에 와이프가 타고 있지만 혼자 중얼거린다. '길 참 을씨년스럽네!' 환하게 밝던 편의점 계산대, 왁자지껄하던 타코 가게 '타코스 라 살사(Tacos la salsa)'.
거기를 등지고 검은 봉지를 든 채로 가로등도 없는 길을 따라 아침 아홉 시까지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공간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이 아직도 보이는 듯하여 왠지 짠해진다. 하지만 밤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 찾던 곳이 가족들과 즐기는 맛있는 야식 집으로 바뀌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