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들이 '윤진숙'을 아까워하는 까닭

[여의도본색] 경질 이후에도 여권 안에서' 동정론'

등록 2014.02.12 10:18수정 2014.10.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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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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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4일 오후 국회 농해수위에 출석해 한 의원의 "왜 코를 막았냐?"는 질문에 웃음을 짓고 있다. ⓒ 이희훈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질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크크크'(또는 '큭큭')였다. 지난해 4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최근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때까지 10개월간 장관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이없이 수시로 터진 그의 웃음보 때문에 붙은 것이다.

물론 웃음보 때문에 윤 전 장관이 경질된 것은 아니다. 해양수산부장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하는 처신들 탓이다. 특히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를 두고 "상황이 별로 심각하지 않은 줄 알았다"든가 "GS칼텍스가 1차 피해자이고 어민이 2차 피해자" 등의 발언들은 기름 유출로 상심한 어민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결국 여당 안에서도 '경질론'이 불거졌고 박 대통령도 그를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부처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똑똑하다더라"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윤 전 장관을 임명할 때 "모래 밭에서 찾은 진주"라고 그를 칭송했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여당이 보기에도 그가 '진주'가 아니라 '모래'였는데도 박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이후에도 청와대의 판단은 정치권이나 국민의 여론과는 사뭇 달랐다.

기자는 윤 전 장관이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된 지 3개월쯤 지나서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왜 윤 전 장관을 장관에 발탁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윤진숙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에 반드시 여성을 발탁하겠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인재를 찾다가 발탁한 인물이다. 칠 십 몇 개의 프로젝트를 총괄했더라. 다 갖추고 있는 인재도 있겠지만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인사도 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윤진숙 장관이 장관을 못하면 앞으로도 해양수산부는 영영 여성 장관은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게다가 이 관계자는 "어이없다"는 정치권이나 국민 여론과는 완전히 다르게 윤 전 장관을 추켜세웠다. 


"그런데 윤진숙 장관의 인생관이 '웃으며 살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겠나. 청문회 때 비판 좀 받으면 심각해져야 하는데 실실 웃어버리니…. 하지만 장관에 임명되고 나서 독하게 맘먹었더라. 업무를 숙지하고 스타일도 좀 바꾸고. 그리고 부처 사람들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똑똑하다고 하더라.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업무보고 때 대통령 말을 중간에 끊고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게 대통령 맘에 쏙 들었다."

"남성 위주 관료사회에서 버티지 못했다"

지난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던 윤 전 장관은 '성실한 연구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부적절한 처신이 있긴 했지만 해양지리정보시스템 분야에서만은 독보적인 여성 연구자였다. "크크크"라는 별명을 붙여준 그의 웃음보도 장관이 된 이후에 특별하게 생겨난 것도 아니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무안한 상황에서 자주 웃는데 그것이 습관이 됐다"라고 전했다(관련기사 : 무명으로 장관 발탁, 인기 얻고 장관 낙마).

그런 가운데 최근까지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도 '윤진숙 동정론'을 펴서 눈길을 끌었다. 

"가장 나쁜 차관은 장관을 경질당하게 만드는 차관이다. 윤진숙 전 장관은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을'이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장관이 되면서 남성 중심의 관료사회에서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윤진숙 전 장관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이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윤 전 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인정하지만, "남성 중심의 관료사회에서 버텨내지 못했다"는 이 인사의 얘기는 꽤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이렇게 그가 장관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여권 안에서 동정론이 나오는 걸 보면 윤 전 장관을 경멸하듯 바라보던 여론의 시각에 지나친 측면은 없었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윤진숙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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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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