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일부 흔들리면 전부 흔들린다"... 벼랑에 선 검찰

[원세훈 공판] '김용판 무죄' 이후 첫 재판... 강화된 국정원 계정 특정 방식 설명

등록 2014.02.10 23:49수정 2014.02.1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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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트위터 계정 특정에 대한 검찰의 새로운 논리가) 또 무너지고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면, 상당 부분 명백하고 일부가 검증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전부 다 흔들리는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무죄 판결 이후 처음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판에서 재판부가 한 말이다.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트워터 계정을 새롭게 검찰이 특정했지만, 만약 일부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전체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검찰로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형국이다.

10일 오후 2시 준비기일 형식으로 열린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재판장 이범균)에서 검찰은 예고했던 대로 대선·정치 개입 관련 트위터 계정과 글(RT 포함)을 줄인 경위를 설명했다.

검찰, 기초 계정 줄이고 파생 계정 기준 강화해 국정원 계정 특정

검찰은 기초계정부터 줄였다. 당초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 5팀 직원들의 이메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383개 계정을 기초계정으로 삼았지만, 이중 114개를 제외하고 269개를 새롭게 기초계정으로 확정했다. 검찰은 압수된 이메일 중 김아무개씨의 이메일에 첨부된 텍스트 파일(security.txt)에 적힌 트위터 계정만을 기초계정으로 삼았다. 다른 이메일에서 발견된 계정을 버린 이유는 상대적으로 사용자 특정이 어려웠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기초계정에서 파생되는 그룹계정의 기준을 바꿨다. 애초에는 '기초계정 1개를 포함한 모두 3개의 계정이 동일한 시각에 같은 글을 2회 이상 트윗·리트윗한 경우'였지만, 우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는 ▲기초계정과 함께 트윗덱을 통하여 동일 글을 20회 이상 동시트윗한 계정 422개 ▲국정원 계정 691개(기초 269 + 트윗덱 연결 422)와 트위터피드를 통하여 'RT@트윗계정' 시작 동일글을 200회 이상 동시 피드한 계정 466개로 추렸다. 트윗덱과 트위터피드 사용 여부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두 서비스는 계정 등록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등 수동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정원 직원 계정으로 검찰이 확정한 계정은 1157개이고, 위법 행위 혐의 게시글은 선거글 44만여 건과 정치글 24만여 건 등 78만여 건이었다. 당초에는 2653개 개정에 게시글 121만여 건이었다. 검찰은 수일 내 이 내용으로 반영해 공소장변경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세 번째 공소장 변경이다.


검찰은 새로 확정한 계정에 대해 "현재 살아있는 계정도 있고 변호인이 이미 문제제기한 계정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면서 "그래도 국정원 계정으로 인정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서 포함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약점 파고드는 변호인 "기본적으로 입증 방식에 문제가 있다"


검찰이 이렇게 민간 빅데이터 업체의 데이터를 활용해 국정원 계정을 특정하는 작업을 거친 이유는 법무부를 거쳐 미국 트위터 본사의 협조를 얻는 작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은 이런 약점을 적극 파고들었다.

원 전 원장 측 김승식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여전히 우리는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접속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IP주소나, 아니면 처음 가입할 때 트위터사가 가지고 있는 이메일 계정을 통한 추적이라든지, 이런 것들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현재 검찰의 국정원 계정 특정 방식은) 기본적으로 입증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트위터피드 200회 반복으로 엄격하게 했다고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어떤 개인 사용자가 한 번만 설정을 해놓으면 1000번, 2000번, 1만 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두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 이메일에서 나온 계정 중 어떤 것은 기초계정으로 보고 어떤 것은 왜 기초계정으로 보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특정 계정의 개설일이 2010년 또는 2011년임을 지적하며 "검찰 수사에 의하면 (트위터를 전담한) 국정원 안보5팀이 시작된 시점이 2012년 2월이다, 그것보다 거의 1년 8개월 정도 전에 개설된 계정이 조직적인 트위터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기사의 첫머리에서 밝힌 '일부가 흔들리면 전부 다 흔들리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실증적 검증을 하지 않고 논리적 추론에 의해 이렇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라며 "그 논리가 또 무너지고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면, 상당 부분 명백하고 일부가 검증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전부 다 흔들리는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연히 변호인과 같은 주장을 예상했다"면서 "안보5팀이 실질적으로 조직 형태를 갖춘 것은 2012년 2월이지만, 그 이전에도 다른 팀에서 트위터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진술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우리는 트위터 개설 시점, 그리고 트윗덱 활동 시점 등이 특정한 정치 선거와 관련해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변호인이 주장한 내용 외에 더 다양한 요소들을 감안해 향후 계정별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17일... 빅데이터 업체 관계자 증인 출석

원 전 원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17일(월) 오후 2시로 잡혔다. 검찰에 트위터 정보를 제공했던 빅데이터 업체 2곳(다음소프트, 와이즈넛)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 공판에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는지, 그 과정에 위법성은 없었는지, 트위터 본사가 가지고 있는 원본과의 동일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세훈 #국정원 #심리전단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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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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