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피트 시거 인생을 기억하자"

포크송 가수 피트 시거 추모로 200여 명 모여

등록 2014.02.12 14:14수정 2014.02.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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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만드는 백창우 선생님께,


추운 겨울입니다. 지난 1월 27일 포크 송 가스 피트 시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민주화 운동 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던 '우리 승리 하리라(We Shall Overcome)', 송창식과 윤형주의 트윈 폴리오가 불렀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으로 알려진 반전 평화 가수 피트 시거가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아~" 하는 한숨 같은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던  피트 시거를 가까이 알고 지냈던 분들이 적지 않은 탓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마을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모여 피트 시거의 삶을 기렸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에서부터 8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약 2백 명이 모였습니다. 사회를 본 학교 선생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피트 시거는 노래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트 시거는 공동체의 힘을 믿었다. 바로 잡을 잘못된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었다. 오늘 밤 그런 피트 시거의 인생을 기억하자. 그의 삶과 음악을 경험해보자."

식사가 시작되고 음식이 식탁에 돌려지자 청년 둘이 식당 무대에 섰습니다. 한 친구는 기타를 매고 한 친구는 색소폰을 든 모양이 피트 시거와 동료 가수 밥 딜런을 흉내 내려고 하는 걸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노래 '소중한 친구(Precious Friend)'를 장난스럽고 신명나게 불렀습니다. 즉석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한창 음식을 즐길 무렵 사회자는 피트 시거가 했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피트 시거, 늘 청중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100년 후에도 인류가 생존할 확률은 반반이야"라고 말하면 너무 비관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낙관론자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모래알이 되어 양팔 저울의 한 쪽을 옳은 방향으로 기울게 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

큰 시소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한 쪽 바구니에는 돌덩이가 반쯤 차서 바닥에 내려가 있고, 다른 한쪽의 바구니에는 모래가 삼분의 일쯤 담겨 있다. 여럿이 함께 모여서 모래 바구니에 차 한 숟갈씩 모래알을 넣는 거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안 보여요? 바구니 사이로 모래가 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맞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불러다가 계속 찻숟갈로 모래를 부을 거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바구니에 모래가 가득해서 "휘잉"하고 시소가 다른 방향으로 내려갈 거니까 보세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뭐야, 누가 언제 이렇게 했지?"

우리하고 그 문제의 찻숟갈이 그렇게 한 거지 뭐. 이어 식당 곳곳에 앉아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고 자기가 기억하는 피트 시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한 삼십 대 초반의 아빠는 초등학교 다닐 때 피트 시거가 1960년대 불렀던 흑인민권운동 노래에 영감을 받아서 반 친구들과 비슷한 노래들을 지어서 연습을 했답니다. 한 번은 근처에 사는 피트 시거를 초청해 직접 지은 노래를 선보였더니 이런 말을 했다는 겁니다.

"가만히 들어봐. 너희가 만든 노래에는 좋은 정답이 너무 많아.좋은 노래는 정답을 주려고 해서는 안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은 노래라고."

피트 시거는 늘 청중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디서 불러서 노래를 하러 가도 "전 여러분에게 노래를 불러주러 온 게 아니에요. 함께 노래를 부르러 왔어요"라고 꼭 말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함께 불러요"라고 가볍게 외치거나 양손을 들면 사람들이 이내 입을 열고 어깨를 들썩이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여전히 학구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분이 계시는군요"라며 긴장을 풀어 노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제 아내도 어린 시절 피트 시거와 함께 노래를 불렀답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일 때 피트 시거가 우리 학교에 찾아왔는데 '아비요요'라고 피트 시거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서 들은 설화를 노래로 만든 걸 밴조를 치면서 불러줬어. 가축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아비요요를 물리치는 보잘 것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이야기가 점점 고조되면서 기타 소리도 요란해졌고, 피트 시거가 이야기를 온몸으로 흉내 내고, 아이들도 신이 나서 후렴 '아비 요요(Abiyoyo)'를 불렀던 게 생각나."

피트 시거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들은 얘기나 민요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청중과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걸 즐겨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어 갔고, 또 사람들더러 마음껏 노랫말을 바꿔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동네 음반 도서관에 피트 시거가 모은 세계의 민요 시디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의 아리랑도 들어 있습니다.

피트 시거는 흑인 민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노래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90세 가까운 나이에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피트 시거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삶을 살아냈습니다. 허드슨 강 기슭에 자기 손으로 지은 통나무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계속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을 찾아 다니고, 공장 폐수로 오염된 허드슨 강을 살리는 깨끗한 물 운동(Clearwater)을 1966년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 여러 사람과 함께 해왔습니다.

깨끗한 물 운동이라는 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드슨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며 더 많은 사람이 허드슨 강이 오염된 걸 알게 하고 그래서 뭔가 행동하게 북돋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께 사람들이 움직이니까 폐수를 내보내던 회사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연방 정부와 주 정부도 환경 보호 법안을 마련했습니다. 작년 여름에도 깨끗한 물 운동은 허드슨 강 횡단 수영 대회를 열었는데 어린이를 포함한 지역의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피트 시거도 참석해 노래로 흥을 돋구었습니다.

그럴 때는 93세의 나이도 피트 시거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지금 행동해야 미래 세대가 살 세상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피트 시거는 작년 자기 친구가 쓴 책 <나이 드는 내가 좋다>에 추천 글을 쓰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가 하는 일이 영원에 영향을 주네. 하나님은 나를 믿어, 하나님은 당신을 믿어."

그렇게 끝까지 '지금' 자기가 할 일을 해 오던 피트 시거는 작년 말 사랑하는 아내 토쉬를 먼저 떠나 보내고 몇 달 뒤에 그 뒤를 따랐습니다.

사람들의 얘기를 다 듣고 식사도 다 마찬 뒤 음식을 물리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식당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피아노, 기타, 밴조, 봉고 등을 연주했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피트 시거의 노래를 부르자 모두 어깨를 들썩거리고 손뼉을 치며 함께 노래했습니다.

먼저 나온 노래는 '내게 만약 망치가 있었다면(If I had a hammer)'이었습니다. 피트 시거의 당부대로 노랫말을 나름대로 바꿔 불렀습니다.

저도 흥이 나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내게 망치가 있었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두드리겠네. 내게 망치가 있었다면 무기를 없애는 일에 두드리겠네."

어떤 아빠와 아들은 '전쟁 공부는 이제 그만(I ain't gonna study war no more)'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선창을 하면 식당에 모인 사람 모두가 "전쟁을 더는 공부 안 하리"라고 화답했습니다. 어느덧 쑥스러움이 긴장이 풀리고 여럿이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흥이 나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벅차고 용기가 났습니다.

백창우 선생님, 피트 시거의 삶을 생각하자니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위한 노래 운동을 하고 계시고, 우리의 역사적 시들을 노래로 풀어 부르고 계신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형식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거대한 호수의 물 방울이 되어 멀리 멀리 퍼져 나가길,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만들기 기원합니다. 피트 시거가 꿈꿨던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피트 시거가 생애 마지막에 짓고 여러 사람들 특히 아이들과 즐겨 불렀던 노래를 띄어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어, 하나님은 그대를 믿어'
(God's counting on me, God's counting on you)

1. 주위에 잘못된 일이 보일 때
하나님은 나를 믿어, 그대를 믿어(이하 매절 반복)

(후렴)
끝내 이기길 바래, 끝내 이기길 바래
끝내 이기길 바래
그대와 나

2. 포기하지마 단념하지마 함께라면 이길 수 있어
3. 아이들과 노래할 수 있으면 절대 희망을 잃을 수 없네
4. 큰 문제가 생기면 모두 팔을 걷어 부쳐
5. 지금 우리가 하는 일, 그대와 내가 하는 일은 영원에 영향을 끼쳐

노래 함께 부르기>>
http://youtu.be/cvnsB_kVNYI
덧붙이는 글 http://www.redian.org/archive/66356 피트 시거를 다룬 이 글도 일독을 권합니다.
#피트 시거 #반전가수 #백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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