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호사를 누려~그래도 괜찮아

졸업식 꽃다발, 이젠 양보다 질

등록 2014.02.18 11:58수정 2014.02.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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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든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그것이 졸업이든 생일이든. ⓒ 박윤미


몇년 전만 해도 졸업식 꽃다발하면 싸고 푸짐하고 사진발(?) 잘 받는 거면 최고라고했다.
오로지 단지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한 꽃다발이면 됐다. 끝나고 나면 집에 가서 벽에 걸어두고 말렸다가 먼지 쌓이면 버려지는 게 졸업식 꽃다발의 숙명이었다.


그런데 요근래 2~3년 사이에 졸업식 꽃다발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다양한 꽃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블로그나 인터넷을 뒤져 최대한 예쁜 꽃을 고르고 예약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매장에 직접 와서 실제 들어가는 꽃을 선택하고 포장까지 고르고 간다. 상당히 깐깐해졌다.

나는 그 깐깐함이 반갑다. 드디어 우리 예쁜 꽃들이 당랑 몇 장 남겨지는 사진을 위한 것이 아닌 축하하는 마음과 그 자리를 빛내주는 중요한 진짜 꽃으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

손님 중에는 꽃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대목에 너무 남겨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하는 우리 같은 소매상들에게 어울리는 명언,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

꽃값은 고사하고 포장비 한 번 제대로 받아보는 것이 졸업철 장사의 로망이라면 로망일까? 그냥 해야 하니까, 꽃집에서 꽃을 안 팔면 안되는 거니까 몇 푼 안 남기고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필자는 꽃을 만진 지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맘 때면 같은 생각을 한다.
'아! 문 닫고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단골 떨어져나갈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최근엔 인터넷과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특히 LTE급 정보로 많은 분이 이제는 이 시기에 왜 꽃이 비쌀 수밖에 없는지 어느 정도 공감해줘 조금은 편해졌다.


품종이 다양한 꽃을 심어 팔기 위해 농부는 로열티를 주고 종자를 사와야 하고, 연료비가 상당히 비싼 시기에 꽃을 피우기 위해 내 집 보일러값 아껴서 비닐 하우스에  들어부어야한다. 인건비도 만만치 않아서 집안 식구들 심지어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작업해서 제때에 꽃을 출하해야 한다. 안전하게 경매장소까지 옮겨주는 물류비, 다시 소매점으로 도착하는 물류비, 거기에 화려하게 들어가야 하는 각종 포장재까지 더해진다.

과일과 채소가 비쌀 시기에는 꽃도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또 수지타산이 안 맞고 정부지원도 줄고해서 화훼농가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으니 굳이 어려운 경제 원리를 들어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꼼꼼하게 따지고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제도 꽃 한 다발 때문에 30분이나 먼 곳에서 달려온 손님이 있었다.

"꽃이 너무 비싸서 파는 저도 참 송구하네요. 문 닫고 어디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내게 요즘 손님들의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알아요. 이맘 때면 늘 비싼 거. 괜찮아요. 기왕이면 예쁜 거 하는 게 좋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이 비싼 꽃을 집에 꽂아 놓겠어요. 핑계김에 우리도 호사 한번 누려보는거죠."
"어차피 하는 꽃 기왕이면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그래, 맞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호사를 누려보랴. 콩나물 한 봉지에도 손을 벌벌 떨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니며 모은 돈은 다 아이들 밑으로 밀어넣는다. 졸업한다고 선물 사 줘, 용돈 줘 거기다 하늘 같이 높은 등록금까지.

어찌보면 이제 꽃다발은 아이들보다는 부모가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보상이 아닐까? 6년 3년 또 3년 심지어는 영유아 보육시설까지. 그렇게 젊은 날을 자식들 입에 밥 넣어주고 공부시키려고 고생한 날들을 돌아보면 꽃 다발 한아름 안고 잠시 '아! 꽃 예쁘다'고 할 여유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

꽃다발. 고생한 부모님과 졸업생을 위해 잠깐 누려도 되는 최소한의 잔치.
#졸업식꽃다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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