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표지
곰, 2013
작가의 다른 단편집들을 먼저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이번 <런어웨이>에서는 의아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단편은 단편인데 사실은 단편이 아닌'(?) 작품이 섞여있다는 것 입니다. 바로 작품집의 두번째부터 네번째에 수록된 <우연>, <머지않아>, 그리고 <침묵>들 입니다. 이들 작품은 하나 하나도 독립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편들이지만 등장하는 주인공이 모두 '줄리엣'이라는 여인으로 동일합니다.
그녀가 기차에서 에릭을 만나게 되는 <우연>과, 그의 아이인 퍼넬러피를 데리고 친정을 방문했을 때 겪는 일을 달누 <머지않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딸 퍼넬러피의 종교생활로 인해서 연락도 못하고 지내게 되는 <침묵>까지 유기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어 단편집 안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작품에서 빠졌던 세 작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반전>과 <허물>이 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옮긴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왜 이 작품들이 기존의 작품집에서 빠지게 되었는지가 의아한 작품들이었습니다.
편집자가 어떤 의도로 그 작품들을 제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타이틀인 Runaway에도 부합하고 작품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도 앞의 다섯 작품들에 비해 떨어지는 구석이 없는데 말이죠. 이 작품들은 자칫 잘못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으니 예비 독자분들을 위해서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표제작 <런어웨이>는 가장 먼로다운, 사람사는 소소한 삶의 모습 속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을 특유의 문체로 적은 단편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부모로 부터 도망쳤던 칼라가, 다시 도망친 이유였던 남편 클라크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웃집 여인 실비아로부터 도움을 받고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나 집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클라크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클라크는 칼라의 인생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 단계를 마치고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클라크의 자리는 무엇이 차지하게 될까? 클라크 외에 그 무엇이, 그 누가 생동감 넘치는 도전이 될 수 있을까? p.54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서로 엉켜있습니다. 다들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누군가는 또 충동적이기까지 하죠. 하지만 먼로의 시선에서 그들 모두는 동일하게 평가되고 동등하게 조명받습니다. 사랑 때문에 부모에게서 도망친 행위도, 잠시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려하는 일탈도, 그리고 그런 여성에게 모성애를 느껴 도망치게 도와준 이웃집 여인까지도 먼로의 소설 속에서는 옳다 그르다 판단 없이 사람사는 일상의 한 요소로 담담하게 묘사됩니다.
노벨문학상 특수가 살짝 지나간 지난 연말에 출시된 책이니 아마 이 책이 첫 먼로일 독자는 상대적으로 적어보이지만 이 책으로 앨리스 먼로를 처음 만나셨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집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작가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집 <디어 라이프>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떠남
앨리스 먼로 지음,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200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