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처럼 구불구불, 더러운 '똥골목'이 가장 그립다

바깽이의 인도여행엽서 ⑧

등록 2014.02.26 14:28수정 2014.02.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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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라나시 골목에서

바라나시 골목에서 ⓒ 박경


신神을 만났다.
천 개의 눈을 가진, 비와 번개의 신 인드라.

인도의 겨울, 먼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누런 바람이 휘몰아치고 세차게 비가 내렸다. 미로 같은 바라나시 골목 골목, 말라붙은 짐승들의 배설물이 다 씻겨 내려가겠지 기대했는데 웬걸.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골목에는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만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바라나시 골목에 처음 들어섰을 때, 앗차 싶었다. 앞서 간 여행자들은, 바라나시에서만큼은 트렁크보다 배낭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었다, 안 그러면 '똥 낀다' 고.
요령껏 피해 가면 될 일이지 그까짓 게 뭐 대수냐, 자신했었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에 덕지덕지 깔린 짐승들의 배설물을 피해 걷기란 신통방통 묘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 앞선 남편이 끌고 가는 트렁크 바퀴에만 정신을 쏟다가는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소를 보고 허걱,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인디언들은, 떡 버티고 가로 막은 소의 엉덩이를 철썩 때려가며 길을 터주기도 했다.

어두컴컴한 호텔 입구에서는 냄새나는 쓰레기를 염소들이 뒤적거리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의 첫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눈을 감으면 더러운 골목 풍경이 어른거렸고, 코끝에서는 아직도 오물 냄새가 맴돌았다.

왜 인도를 모든 여행자들의 마지막 여행지라고 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보다 더한 곳이 또 어디 있으랴. 바라나시를 경험한 여행자들은 세상 어디든 적응 못할 곳이 없으리라.

호텔만이라도 옮기고 싶었다. 갠지스 강변으로 나갈 때 통과하는 골목은 그렇다 쳐도, 휴식을 위해 드나드는 호텔 입구만이라도 쾌적하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강변의 가트(강가에 이르는 계단)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한층 깨끗한 호텔을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더러운 골목길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놓칠세라 당장에 예약을 해놓고 묵고 있던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그 지긋지긋한 골목길을 지나서.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더러운 골목길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경험을 통해 단련된 내 몸속의 여행 촉수는 아우성치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진면목은 바로 이 똥골목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이곳이 가장 그리운 추억이 될 거라고.


끼니마다 이 골목 어디에선가 밥을 사 먹었고, 이 골목 어느 귀퉁이에 앉아 라씨 한 종지를 떠먹으면서 시체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았었다. 이 골목에서 황금사원으로 향하는 맨발의 여인들을 만났고, 골목을 따라 가면 갠지스 강에 닿을 수 있었고, 골목이 끝나는 가트에서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하루종일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호텔을 옮기지 않기로 했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골목길을 헤집고 쏘다니다 배설물이라도 밟을라치면 돌 귀퉁이에 썩썩 문질러 닦아버리면 그저 그만이었다.

바라나시에서 똥골목은 숙명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예감했었다.
집이 가장 그리웠던 곳이 가장 그리워질 거라는 걸.
덧붙이는 글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사르나트→바라나시→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이 인색하다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많은 사진 중에 딱 하나만 골라낸 사진이고, 사진이 더해지면 또다시 수다스런 여행기가 될까봐 경계했습니다.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가볍게, 부담 없이 받아들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썼습니다.
#인도 #바라나시 #바라나시 골목 #인도여행 #인도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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