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진찰 없는 원격진료, 환자 아픔 공감할까

[공중보건의, 원격의료를 말하다①] 교도소 공중보건의가 보는 원격진료

등록 2014.03.03 18:35수정 2014.03.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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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정부가 환자-의사 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대한의사협회는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마침내 3월 의사파업이 현실화 된 지금까지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은 상반됩니다. 보건복지부는 도서, 벽지에 사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형 병원과 IT 기업들의 돈벌이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과연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전국 산간벽지·오지, 낙도 특수지 등지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들의 생생한 현장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가는 릴레이 기고입니다. [편집자말]
저는 교도소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지난해 4월,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발령받던 그 때가 요즘도 가끔 기억납니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부임하는 전문의가 아니라, 졸업하고 바로 환자를 보게 되는 일반의였기 때문에 첫 출근에 앞서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그대로 환자에게 적용하는 일이 가능할까?'

또 하나의 고민은 바로 교도소라는 특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수용자들 중에 험악한 사람도 많다던데 별탈 없이 근무를 할 수 있을까, 혹시나 해코지 당하지는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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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주 동안 환자를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신체진찰이 환자와의 좋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 sxc


의사-환자 좋은 관계 형성에 중요한 것, 신체진찰

다행히 출근하고 첫 일주일은 일을 하지 않고 교도소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진료를 참관만 했습니다. 의료과장님과 의무관님의 진료를 옆에서 지켜보며 대부분이 경한 환자들이고 심각하게 감별진단 해야 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안심하였습니다.

둘째 주부터는 마침내 혼자서 진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막히고 작은 실수들도 하였지만 2~3주쯤 지나니 대강의 요령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한 질병은 증상이 심할 때만 약을 복용하며 적절히 휴식을 취해주면 저절로 몸이 치유됩니다. 따라서 중한 질병만을 걸러내고 남은 경증은 사실 약보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였습니다.


그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좋은 환자-의사 관계였습니다. 환자-의사 관계가 좋은 경우에는 환자가 조급하게 생각지 않고 의사를 믿고 기다리면 무사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작정 더 강한 약을 요구하거나 의사의 지시를 적절히 따르지 않아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 환자를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신체진찰이 환자와의 좋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경험이 부족한 일반의라서 신체진찰을 정확하게 실시하는 일도 쉽지 않고,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어디인지 직접 들여다보고 눌러보고 들어보는 일은 관계 형성에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설령 신체진찰을 해서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체진찰을 하는 것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원격진료를 하게 되면 이런 신체진찰을 할 수 없습니다. 진단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환자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교도소에서는 지금도 화상진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피부과 환자들이 의사의 이야기를 잘못 알아듣고 약을 엉뚱한 데다 바르는 경우도 많고, 통신기술적인 문제인지 몰라도 진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의료진이 진료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좋아하는 측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환자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도소에 원격진료가 활성화되기보다는 일차의료의 경험이 많은 의사선생님이 더 오셔서 환자들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수용자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컴퓨터 스크린이 아니라 아픈 곳을 어루만져줄 따스한 손길이니까요.
#원격의료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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