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만 좇다가 이렇게..." 민주당 소멸 흑역사

[기획] 14년 동안 12번 당명 바꿔..."당내 질서 파괴된 결과"

등록 2014.03.12 18:00수정 2014.03.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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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은 150년, 민주당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공고한 미국식 양당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기반이다. 영국 보수당은 180년, 노동당은 100년이 넘었다. 반면 우리 정당사에서는 신생정당이 거듭 태어나고 있다.

민주당의 상황은 더 안 좋다. 보수정당보다 더 짧은 수명을 이어가고 있다. 짧게는 1년, 길어도 3~4년을 넘기지 못했다. 21세기에 접어든 2000년 이후에도 민주당은 숱하게 이름을 바꿨고, 숱하게 창당했으며, 숱하게 합당했다. 지난 14년 동안 민주당 계열에서 분당을 결정해 새 당을 만들거나, 당 내부에서 이름을 바꾸거나, 다른 당과 합당해서 새 간판을 달아 당명을 달리한 것만 무려 12번에 달한다.

12번의 과정 동안 '모로 가도' 민주당으로 회귀했다. 새천년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통합민주당에서 다시 민주당으로, 민주통합당에서 또 민주당으로 도돌이표 역사를 반복했던 민주당은 안철수 새정치연합 측과 합당해 또 당명을 바꿀 상황에 놓였다. 새 당명으로는 '새정치통합신당' 등이 거론되고 있다. 2000년 이후 13번째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12번의 역사만큼 든든한 뿌리로 지탱해온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아닌 바람 불면 흔들리는, 혹은 뿌리채 뽑혀버리고 마는 기반이 허약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왔던 것이다. 이를 두고 "선거 때만 되면 대박을 좇던 민주당의 단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 이합집산을 거듭한 결과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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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새정치연합 첫 지도부연석회의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선거' 때문에 분당하고, '선거' 때문에 합당

민주당이 집권해 권력을 가졌을 때에는 계파에 따라 당을 달리했다.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하며 '새정치 구현과 지역구도 타파'를 목표로 출범한 새천년민주당(2005년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은 출범 3년여 만인 2003년 분당 사태를 맞았다. 신당 문제를 둘러싼 신주류와 구주류 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에서 빠져 나온 신주류 세력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우리당은 친노 세력이 중심이 된 개혁국민정당(2002년 창당),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세력, 한나라당 일부 세력의 합류로 2003년 11월 창당대회를 열었다.

당시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장은 "깨끗한 정치 실현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며 "지역주의 타파를 지향한다, 선거제도 등 제도개혁을 통해 지역주의가 힘을 쓸래야 쓸 수 없는 환경을 기필코 만들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개혁을 명분으로 뛰쳐나온 우리당은 그러나 대선자금 문제 등에서 친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바꾸기로 신뢰를 깎아 먹었다. 부패혐의에 연루된 정치인과 철새 정치인까지 당에 참여시키며 기반부터 흔들렸다. 그곳에 '새정치'의 믿음이 생길 수 없었다.

이 같은 허약한 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3년 여의 시간 동안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짐에 따라 당의 운명도 함께 추락했다.

'실용 대 개혁'이라는 실체 없는 정체성 논란과 '108 번뇌'로 불린 108명 여당 초선 의원의 리더십 불인정 행보는 혼선을 가중시켰다. 4대 악법 폐지는 한나라당에 막혀 좌절되며 개혁 동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당청갈등도 끝없이 이어졌다. 당을 해체하자는 통합신당파와 친노 계열의 당사수파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합당을 주장하는 통합파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고 우리당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됐다. '백년정당'이 되겠다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3년 3개월 여만에 분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몰의 수순을 밟았다. 권력의 단물이 빠져나간 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탈당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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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1일 오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 지도부가 창당선언문을 읽으며 선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합치면 이긴다"는 명분, 모든 불만은 잠재워졌다

우리당을 탈당했던 의원들은 2007년 5월 김한길 의원을 중심으로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 대표로 추대된 김 의원은 "창당으로 제3지대에 대통합의 전진기지를 마련했으며, 정치권 안팎의 중도개혁 세력을 하나로 담아내는 대통합의 큰 그릇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민주당(기존 새천년민주당)과 합당했고 중도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후 또 하나의 정당이 창당됐다. 2007년 8월 열린우리당 탈당파 80명과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중도개혁세력을 표방한 '대통합민주신당'이 탄생했다. 직후 열린우리당을 흡수 합당했다.

대선 패배 후인 2008년 2월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서로와 함께 할 수 없다며 조각났던 두 세력이 "헤어져서 마음앓이 하다 50년 정통 정당으로 하나가 됐다"며 총선을 앞두고 다시 마음을 합쳤다.

합당 합의문에서 양측은 "대선 이후 한나라당이 대통령권력과 지방정부권력을 장악했고 이번 4월 총선에서 개헌선 넘는 국회의석까지 장악할 경우 복수정당제도가 유명무실해져 한국민주주의의 위기가 오고 권력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없고 소외계층 보호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며 하나됨을 선언했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사분오열됐던 민주당 계열은 또 다시 선거를 앞두고 하나로 뭉친 셈이다.

통합민주당은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 2011년 12월 이해찬·문성근·문재인 등 친노인사와 시민사회계열이 주축이 된 '시민통합당'과 합당하는 과정을 거친다. 당명도 민주통합당으로 바꿨다. 통합 로드맵을 두고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합치면 이긴다"는 명분 아래 모든 불만은 잠재워졌다. 이 역시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둔 합체였다.

2013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꾼 지 1년여 만에 민주당은 또 당명을 변경하게 됐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새정치연합과 손잡은 민주당은 통합신당 창당을 목전에 두고 있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을 기폭제로 삼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는 방침이다. 야권의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매번 힘을 합치고 피를 바꿔도 왜 야당은 갈수록 약해지나"

이에 대해 정당정치 전문가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다가오는 선거 때문에 거대 야당이 생겨나는 것으로, 민주당 내 질서가 파괴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이번 민주당을 만들 때 분명히 당은 안 꺤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더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합치면 무조건 좋은 건가, 여론을 동원해 투표를 압박하는 행태를 또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꾸준히 한 당을 이어가면서 당의 성과대로 유권자의 평가를 받으며 커간다면 당도 튼튼해질 수 있다"며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정치마저 대박을 좇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결정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일본의 정치를 보면 민주당의 거듭된 패배가 아베 정권을 독주하게 만들고 있는데, 우리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무너질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보수정당의 독주체제가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당 합당 흐름에서 '마이웨이'를 선언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의 고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10일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정치사는 통합과 합당, 수혈과 영입을 통한 신당창당의 역사"라며 "통합이나 합당 관련해서 해 볼 건 다 해 봤지만 밑빠진 독처럼 선거 때 되면 또 통합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합당수혈보다는 매번 힘을 합치고 피를 바꿔도 왜 야당은 갈수록 약해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어지러운 정당사는 우리 정치의 허약한 현주소이자, 이제는 '답'을 내야 하는 당면과제다. 그러나 '통합'의 거대한 명분에 휩싸인 민주당 내에서 이 같은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13번째 새로운 민주당의 탄생을 앞두고 우려가 앞서는 이유다.
#민주당 #소멸사 #열린우리당 #안철수 #통합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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