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생겨서 득본 곳 어딨나... 갯벌 살해는 범죄"

[인터뷰] 충남 가로림만 조력발전 사업 반대 외치는 이순·이순의씨

등록 2014.03.12 15:32수정 2014.03.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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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예정지 ⓒ 고정미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2006년 예산 1조22억 원을 들여 길이 2020m의 조력댐을 갯벌 위에 짓는다는 가로림만 조력 발전 계획을 내놨다. 사업 대상 구역은 태안군 이원면 내리와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사이다.

한국서부발전은 설비용량 520MW, 연간 950GWh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07년 한국서부발전(지분율 49%)과 포스코건설(32.1%), 대우건설(13.8%), 롯데건설(5.1%) 등이 출자해 가로림조력발전을 설립했다. 이들은 2018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두 자매가 충남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로림만은 그녀들의 고향이자 안식처다.

충남 서산·태안 지역의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 반대주민들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정부세종청사까지 도보행진을 하면서 조력발전 백지화·가로림만 갯벌 보존 등을 촉구하고 있다(관련기사 : 가로림만 어민들 2년만에 다시 거리로 나선 이유).

도보행진 시작지점부터 정부세종청사까지 거리는 300리(약 120km). 두 자매는 하루 평균 20km씩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성인 평균 보폭을 73cm라고 계산해봤을 때 16만4000여 걸음을 걷는 셈이다.

지난 10일 오후 1시께, 세종시 조치원읍의 한 식당 앞에서 도보행진에 나선 두 자매, 이순(52)·이순의(51)씨를 만나봤다.

봄볕에 그을린 얼굴과 거칠어진 피부, 수척해 보이는 몰골이 기나긴 여정의 고단함을 가늠케 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 두 자매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를 통해 두 자매의 거침없는 입담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두 자매와의 일문일답.

"조력댐 만들어 갯벌 파괴?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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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지킴이 두 자매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 반대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길을 나선 이순(54), 이순의(51) 두 자매. 그녀들은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기나긴 여정에 동참했다. ⓒ 정대희


- 도보 행진단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이순(아래 순) : "가로림만의 갯벌을 지키는 일은 내가 먹고사는 문제다. 가로림만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해야 한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런 생명들에게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으면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굉장한 일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보통 사람의 생명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이름 모를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갯가에서 자라는 것들은 먹거리로만 생각하지 않나."

이순의(아래 의) : "가로림만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흔히들 환경을 보호하자고 하는데, 사실 자연 생태계가 인간을 보호하고 있다. 가로림만을 지키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무언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옛날부터 만(灣) 지역에는 사람이 모여 살았다. 쌀은 아니지만 바다에서 쌀에 버금가는 먹거리들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력댐을 건설해 만을 파괴하는 것은 인류의 범죄다. 가로림만은 우리의 밥줄이자 우리를 지켜주는 곳이다."

- 걸으면서 어려웠던 일은 없었나?
: "도보행진은 이번이 두 번째다. 1차 도보행진(2012년 2월)에 한 번 참여해 봐서 그런지 조금 수월하다. 다리가 부르트고, 당기고, 붓기도 하지만 견딜 만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 "작년에 다리 수술을 해 걷는 게 많이 불편하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옆 사람에 의지해 걷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들 걱정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가로림만을 지키는 일은 생명을 바쳐서라도 막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모차 끌고 도보행진에 참여한 부부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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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신발 도보행진 참가자들의 신발은 300리(120km) 길을 걸으며, 발을 보호하고, 16만 4000여 고단함을 함께 할 동반자이다. ⓒ 정대희


- 도보행진 참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나.
: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하고 당당하다. 조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백지화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도보행진을 하면서 그동안 얼굴만 알고 지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좋다. 도보행진 참여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같이 하는 일이어서 즐겁고, 함께여서 기쁨도 배가 된다. 내가 이 일을 함게 하고 있어서 좋다."

: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격려를 해준다. 주민들이 도보행진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서 그런지 행정기관에서도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염원하는 일이 실현되면 좋겠다."

- 도보행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
: "지난 9일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도보행진에 참여한 부모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친환경농업을 한다는 농부도 아들 딸을 데리고 와서 함께 걷기도 했다."

: "서산 지역의 목사님이 3일 동안 도보행진단의 여정을 사진으로 담으며 지원해 줬다. 특히 그 목사님은 얼마 전에 산 새 차를 기꺼이 도보행진 지원차량으로 사용했다. 한 번은 지저분한 상태로 그의 차에 오른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고 하니 목사님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그 목사님은 '저는 복 받은 사람이에요, 좋은 아내와 자식들이 있고 목회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새 차를 사서 처음으로 의미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진심이 느껴져 감동했다."

"조력발전소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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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선 어민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어민과 시민사회단체가 갯벌 보전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도보행진을 나선 가운데 지난 10일 세종시 조치원읍의 한 국도를 걷고 있는 도보행진 참가자들 ⓒ 정대희


- 조력발전소 건설 예정지 인근이 주거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업이 시행되면 최대수혜자가 되는 것 아닌가.
: "나는 도시 생활을 접고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리 고향집으로 귀농했다. 인근에 부모님이 물려준 부동산이 있는데, 조력발전소 건설 예정지와 아주 가깝다. 물론 사업이 시행되면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는다. 갯벌도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처럼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 귀농했다. 돈이 많고 적음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내게 조력발전소가 건설돼 댐이 생기는 것은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위협일 뿐이다."

: "2009년, 언니(이순씨)와 오빠가 살고 있는 고향집(충남 태안 이원면 내리)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가로림만 조력발전소에 대해 알게 됐다. 이것 저것 언니에게 물어보니 다들 조력발전소 건설에 찬성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

나는 스물다섯까지 고향집에서 살았다. 직장 문제로 도시에 살게 됐지만, 삶이 괴롭고 마음의 위로가 필요하면 어김없이 고향집을 찾았다. 가로림만 바다는 고향집과 가까워 내가 자주 찾던 곳이다. 그곳은 위로가 필요할 때 나를 품어준 '안식처'였다. 그런데 그런 곳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설 계획이라니…."

-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 "태안화력(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이 가로림만 인근에 건설되면서 갯벌이 망가지고 사라졌다. 발전소가 들어서 땅 값이 떨어지고 부동산 거래도 줄었다. 석탄을 땐 연기가 온종일 굴뚝에서 뿜어져 나와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봄에 고사리 캐고 겨울에 굴 따서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조력댐 건설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요즘은 지역주민을 제외하곤 바다 출입이 쉽지 않다. 가로림만이 사라진다면 다른 지역 바다에 가야 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몰래 죄짓는 기분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가로림만은 내가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먹고사는 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 "시공사는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금까지 발전소 관련해 밝은 미래를 맞은 지역이 얼마나 있나. 결국 주민들은 후회하고 가진 자만 배불리는 꼴이 될 것이다."

"갯벌을 지키는 일, 당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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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댐 건설 반대 한다”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 반대’ 구회를 외치는 도보행진 참가자. 이들은 지난 6일 서산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하루 평균 20km씩 도보로 이동했다. ⓒ 정대희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도보행진단에 참가한 분들이 모두 답답해하고 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문제에 한국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막는 일은 단순히 어민들만의 문제가 아닌데, 언론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일에 지나지 않아 가슴이 먹먹하다. 사회적 관심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달라."

: "다시 말하지만,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문제는 지역 어민들만이 연결된 문제가 아니다. 바다는 식량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또 가로림만 갯벌은 인간이 내뱉은 불순물을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갯벌을 지키는 문제는 바로 내 문제고, 당신의 문제다. 무관심하면 안 된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점심 식탁에 올랐던 주꾸미가 떠올랐다. 점심 식사를 할 때 박정섭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투쟁위원장은 "가로림만서 잡은 것"이라며 삶은 주꾸미를 반찬으로 내놨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한 마디 던졌다.

"쭈끼미(주꾸미) 맛있주? 이게 다 가로림만서 잡은 거유. 조력댐 세워봐유. 바다 막으면 이런 거 못 먹어유. 그러니 반대해야겠지유?"

박 위원장의 재치있는 입담에 한바탕 웃음이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이런 대화 내용이 실제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조력댐 #가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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