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를 보도하는 영국 BBC뉴스 갈무리.
BBC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이 러시아로의 병합을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16일(현지시각) 치러진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는 방송 연설에서 "우리가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며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선택을 하자"고 투표를 독려했다.
이어 "러시아, 독립국가연합(구소련 모임), 국제기구, 그리고 전 세계 언론이 이번 투표를 지켜보고 있다"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투표가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모든 주민투표를 금지하는 법령을 새로 만들었고, 따라서 크림 자치공화국이 주민투표를 하더라도 투표 자체가 불법이므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크림 자치공화국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쿠데타가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의 과도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 없는 주민투표... 크림반도는 러시아로?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 용지에는 '러시아와의 합병'과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이라는 두 가지 항목만 있고, 지금처럼 우크라이나에 남는다는 선택은 아예 없다. 크림반도 주민의 약 60%가 러시아계로 사실상 주민투표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악쇼노프 총리는 이미 "주민투표가 끝나면 크림 자치공화국의 법을 러시아 법과 통합하고, 화폐도 우크라이나 흐리브냐에서 러시아 루블로 바꾸겠다"며 "언어도 러시아어와 타타르어 공용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이미 러시아와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투표를 앞둔 크림반도는 조용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복면과 무장을 한 친러 성향의 자경단과 국민의용대 대원들이 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의 주요 시설을 경비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접경지대 경기를 강화하며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찾으며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금 인출이 계속되자 은행은 하루에 인출할 수 있는 한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크림반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와 반러 세력이 대규모 유혈 충돌을 일으키며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1명에 사망했고, 인근 하리코프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는 등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5만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비난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추진을 반대했다.
크림반도의 소수민족 타타르족도 중요한 변수다. 구소련 시절 인종청소를 당했던 경험 때문에 반러 성향이 뿌리 깊은 타타르족은 이번 주민투표에 불참을 선언했다. 일부 타타르족은 벌써 크림반도를 떠나 망명을 시도하고 있다.
크림반도에서 타타르족 인구는 약 12%에 불과해 투표 결과를 바꾸기는 힘들지만 결집력이 강해 러시아와 합병 시 무장 테러의 가능성도 있다. 크림 자치공화국이 러시아어와 타타르어 공용 정책을 약속하고, 내각에도 타타르족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강조하며 '끌어안기'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서방, 전방위 압박... '주민투표는 국제법 위반'미국을 앞세운 서방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손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14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영국 런던에서 6시간에 걸친 '끝장 토론'을 벌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케리 장관은 "크림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끝내 크림 자치공화국과 합병한다면 미국과 유럽은 중대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놓고 러시아와 미국은 공통된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며 러시아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할 것이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를 무효화하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도 무산시켰다. 전날 미국이 주도해 안보리 15개 이사국 전체회의를 열어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유엔의 5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이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한 제재를 예고한 미국은 지난 1990년 걸프전 이후 24년 만에 전략비축유(SPR) 500만 배럴을 '깜짝' 방출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교란이 벌어져도 미국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며 러시아에 경고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유럽의회도 지난 13일 러시아가 크림 자치공화국에서의 군사 개입 철회를 거부하자 무기금수와 자산 동결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면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07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가입 논의를 중단했다.
서방의 전방위 압박을 가하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와 맞닿은 로스토프스카야주, 벨고로드스카야주, 쿠르스카야주에서 비상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밝혔으나 사실상 미국과 유럽을 향한 '무력시위'로 풀이되고 있어 크림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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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합병' 크림 주민투표 '디데이'... 크림반도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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