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을 위한 약을 정성들여 짓고 환자의 마음까지 위무하고 싶다는 약국장님의 말에 감동 받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사진은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한 장면.
KBS2 제공
이젠 웃어도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웃는 방법을 연습해야 할 것 같았다. 화사한 화장술도 필요한 것 같았다. 밝고 환한 내 모습을 증명해야 했다. 이른 아침 약국 문을 열고 약국장님께 출근보고 전화를 할 때부터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경쾌한 울림을 주려고 애썼다.
"저 출근했습니다아! 이따 뵐게요오!"병원 진료가 시작되는 시간에 출근하는 약국장님의 모습이 약국 유리 건너로 보이면 얼굴 표정에 유의하며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고 인사했다. "약 나왔습니다. 돈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도 환자분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목청을 돋웠다.
동네 약국이라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랜 단골이어서 귀가 어두운 분들이 많았다. 약사님의 복약지도가 소리 지르듯이 끝나면 나도 덩달아 소리를 높여 약을 쥐어 주고 돈을 건네받았다.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렇게 두 달을 지냈다. 아침마다 들어 올리는 약국 셔터가 갈수록 무거워졌다. 환자가 없을 때엔 약 쪼개기 같은 잡일 한다는 핑계로 조제실 뒤로 숨었다. 눈을 멍하게 내버려 두고 입꼬리를 내려도 되는 장소에 숨어야 좀 쉬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선 거실에 널브러진 애들 물건을 툭툭 차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졌고, 그때 내 표정은 결코 부드럽게 펴지지 않았다.
"소리 지른 거 미안해. 엄마가 좀 피곤하다."주섬주섬 물건을 정리하는 아이들에게 사과하면서도 아이들을 껴안아 주진 못했다. 겨우 저녁 준비할 수 있을 만한 힘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쳐가는 중이었지만, 전업주부 생활이 너무 길어서, 혹은 예민하고 불안한 내면을 감출 수 없어서 라거나 사명감이 약해서 등등의 이유를 혼자 묻고 대답해가며 나를 다그치는 데 더 힘을 쏟았다. 거기까지였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안 될까요?" 기어이 약국장님은 이 말을 건넸고, 내 귀에 땡! 종소리가 들렸다. 끝이로구나.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생활비에 보탬이 될 만큼이었고 가련한 경력 단절 여성의 일자리를 알아봐 준 나의 지인에게 미안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었다.
경쾌한 감정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3개월 만에 끝났다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 싶었고 약국장님은 분명 철학이 있는 분이었으므로 그분 말대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경쾌한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렸는데도 목표치엔 모자랐고, 이젠 감정을 위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진 할 수 없었다. 면전에서 아직 덜 급한 거지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별수 없을 것이었다.
나의 직장생활은 3개월을 겨우 채우고 끝났다. 슬펐다. 나이 먹었고, 웃어도 밝지 않고, 목소리도 작고, 근성도 부족한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의 바닥을 수시로 경험하고 많이 겸손해졌다고 여겼지만, 약국 일은 내 바닥 치가 더 낮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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