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올 봄에는 송정댁이 나의 스승이 되셨다. "있어보쑈. 올해는 심는 것부터 갈쳐줄팅게."아직 겨울이 끝나기 전인 마을회관 시절 송정댁이 한마디 하셨다. 나의 농사 실력을 알아채신 것이다.작년, 재작년 송정댁이 나누어주신 부추씨를 심었는데 풀속에서 자라다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작년에 심은 감자는 싹이 늦게 올라오더니 누렇게 되어 감자가 전혀 달리지를 않았다. 한 줄 심은 토란은 아예 싹이 안 나왔고. 손바닥만한 도라지밭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런 농사 이력으로도 남들이 무얼 심으면 나도 심고 싶어진다. 2월 중순 마을 회관에 씨감자 박스가 도착했다. 모두들 활기를 띠고 한 박스 두 박스 혹은 반 박스... 하며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은근히 부러웠다. 하지만 올해는 감자를 한 줄만 심을 작정이어서 가당찮게 한 박스씩 주문할 수도 없고 누구와 나누어도 벅차서 그저 구경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한 바가지만 있으면 되는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내 사정을 눈치 챈 송정댁이 "감자 심을 때 되면 내가 주께 걱정마쇼" 하셨다. 날이 풀리자 2월 말부터 사람들은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비닐을 씌우니 보온이 되어 감자 심는 시기가 빨라진 것이다. 작년 같으면 나도 덩달아 감자를 심어야 하나 아직 말아야 하나 허둥거릴 텐데 그것도 이력이라고 올해는 배짱이 생겼다. 나는 비닐을 안 씌울 테니 3월 중순에 심어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로타리 쳐서 비닐 씌우라는 하동댁의 강한 압력을 슬쩍 제끼고 미련스럽게 호미로 흙을 파올려 이랑을 만들어 놓고 나자 송정댁이 감자 한 바가지 가져오셨다. "언제 심을라요? 심을 때 기별하쑈. 내가 와서 봐주께." 나에게는 든든하기 그지 없는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작년에는 언제 심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혼자 엎드려서 감자를 심노라고 심었다. 그리고 풀나지 말라고 왕겨까지 정성스레 덮었다. 그런데 웬 조홧속인지 감자 싹이 노래지며 별로 크지를 않고 그만 꽝이었다. 감자가 들지 않은 것이다.'역시 나 혼자는 안돼'.올해는 꼭 농사 박사님을 모셔와서 지시하는 대로 심으리라 했다. "오늘 감자 심을란디 이따 좀 봐주셔요.""그래 조까 이따 따땃해지면 가꺼인게 걱정마쑈." "감자 짤라노까요?""그까짓거 얼마 안됭게 내가 가서 해도 되야..."'조까 이따' 라는 말에 못다먹은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있는데 창밖에 송정댁이 나타나셨다. 나는 후다닥 감자, 칼, 재, 호미를 챙겨서 밭으로 내려갔다. "요것이 다 눈이요. 감자를 요렇게 나누씨요."기역 니은부터 가르치신다. 눈이 나온 대로 감자를 나누니 감자 하나 가지고도 여러 조각이 난다. 즉, 감자 하나에서 씨가 여러 개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쬐끄만 씨를 심어서 잘만 하면 복슬복슬한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 것을 생각하니 정말 이런 이치로 된다면 농사란 참으로 수지맞는 장사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이 감자씨는 멋도 모르고 땅속에서 부지런히 제 새끼를 만들 것이다. 그것을 사람이 고스란히 차지하는 거다. 이제 보니 사람이란 아주 영악한 짐승이다. "요만큼씩 심으쑈. 아니 요만큼."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간격인데 아니라고 하신다. 딱 맞는 간격이 있다. 가까워도 안 되지만 '요만큼'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땅이 아까운 까닭이다. 큰사진보기 ▲요것이 다 눈이요. 감자를 요렇게 나누씨요. 김영희 큰사진보기 ▲요만큼씩 심으쑈. 김영희 감자를 심고나자 욕심이 생겼다. 토란도 몇 개 심어 보고 싶다. 상추 씨도 뿌려야 하고... 또 송정댁으로 쫓아갔다."토란씨 있으면 저좀 몇 개만 주셔요.""우리집 것은 옛날 토란이요. 이짝은 요새 것이고. 어느 것 할라요?" "옛날 것 주셔요. 담배상치(상추) 씨도 있으셔요?"나는 염치도 좋다. 송정댁이 오래된 바가지 속에서 씨앗을 꺼내신다. 이른바 토종씨를 얻게 생겼다. 큰사진보기 ▲씨앗을 담아놓은 바가지가 예술작품이다. 돌아가신 영감님 솜씨다. 김영희 "상치씨는 지금 뿌려도 되것지요? ""응. 지금 뿌리먼 되야." "호박은 언제 심을까요?""호박은 안즉 있어야 해. 옛말에 감나무 잎사귀 나고 참새가 앉아서 안 보일 때쯤 심으라고 했어."한마디라도 더 스승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근디 (농협) 퇴비는 신청했어요? 저는 올해 신청 안 했드만 아쉽당게요." "우리집은 퇴비 그런 것 안허요. 뒷간에서 거름 내다씅게." 파는 퇴비가 아니라 요새는 보기 힘든 뒷간 거름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송정댁은 진정으로 농사 스승님 중의 스승님이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귀촌 #섬진강변 추천10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김영희 (kumbi) 내방 구독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마을 공사가 끝나면 이전 마을이 아닐 것이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김태열 "이준석 행사 참석 대가, 명태균이 다 썼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뒷간 거름으로 농사... 대단한 스승님 '송정댁'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국감 골프' 민형배 의원 고발당해…"청탁금지법 위반"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이준석의 폭로 "윤 대통령, 특정 시장 후보 공천 요구"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