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 거름으로 농사... 대단한 스승님 '송정댁'

섬진강변 두계마을 이야기

등록 2014.03.21 09:36수정 2014.03.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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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는 송정댁이 나의 스승이 되셨다.


"있어보쑈. 올해는 심는 것부터 갈쳐줄팅게."

아직 겨울이 끝나기 전인 마을회관 시절 송정댁이 한마디 하셨다.  나의 농사 실력을 알아채신 것이다.

작년, 재작년 송정댁이 나누어주신 부추씨를 심었는데 풀속에서 자라다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작년에 심은 감자는 싹이 늦게 올라오더니 누렇게 되어 감자가 전혀 달리지를 않았다. 한 줄 심은 토란은 아예 싹이 안 나왔고. 손바닥만한 도라지밭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런 농사 이력으로도 남들이 무얼 심으면 나도 심고 싶어진다. 2월 중순 마을 회관에 씨감자 박스가 도착했다. 모두들 활기를 띠고 한 박스 두 박스 혹은 반 박스... 하며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은근히 부러웠다. 하지만 올해는 감자를 한 줄만 심을 작정이어서 가당찮게 한 박스씩 주문할 수도 없고 누구와 나누어도 벅차서 그저 구경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바가지만 있으면 되는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내 사정을 눈치 챈 송정댁이 "감자 심을 때 되면 내가 주께 걱정마쇼" 하셨다.  

날이 풀리자 2월 말부터 사람들은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비닐을 씌우니 보온이 되어 감자 심는 시기가 빨라진 것이다. 작년 같으면 나도 덩달아 감자를 심어야 하나 아직 말아야 하나 허둥거릴 텐데 그것도 이력이라고 올해는 배짱이 생겼다. 나는 비닐을 안 씌울 테니 3월 중순에 심어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로타리 쳐서 비닐 씌우라는 하동댁의 강한 압력을 슬쩍 제끼고 미련스럽게 호미로 흙을 파올려 이랑을 만들어 놓고 나자 송정댁이 감자 한 바가지 가져오셨다.


"언제 심을라요? 심을 때 기별하쑈.  내가 와서 봐주께."

나에게는 든든하기 그지 없는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작년에는 언제 심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혼자 엎드려서 감자를 심노라고 심었다. 그리고 풀나지 말라고 왕겨까지 정성스레 덮었다. 그런데 웬 조홧속인지 감자 싹이 노래지며 별로 크지를 않고 그만 꽝이었다. 감자가 들지 않은 것이다.

'역시 나 혼자는 안돼'.

올해는 꼭 농사 박사님을 모셔와서 지시하는 대로 심으리라 했다.  

"오늘 감자 심을란디 이따 좀 봐주셔요."
"그래 조까 이따 따땃해지면 가꺼인게 걱정마쑈." 
"감자 짤라노까요?"
"그까짓거 얼마 안됭게 내가 가서 해도 되야..."

'조까 이따' 라는 말에 못다먹은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있는데 창밖에 송정댁이 나타나셨다. 나는 후다닥  감자, 칼, 재, 호미를 챙겨서 밭으로 내려갔다.

"요것이 다 눈이요. 감자를 요렇게 나누씨요."

기역 니은부터 가르치신다. 눈이 나온 대로 감자를 나누니 감자 하나 가지고도 여러 조각이 난다. 즉, 감자 하나에서 씨가 여러 개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쬐끄만 씨를 심어서 잘만 하면 복슬복슬한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 것을 생각하니 정말 이런 이치로 된다면 농사란 참으로 수지맞는 장사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이 감자씨는 멋도 모르고 땅속에서 부지런히 제 새끼를 만들 것이다. 그것을 사람이 고스란히 차지하는 거다. 이제 보니 사람이란  아주 영악한 짐승이다.

"요만큼씩 심으쑈. 아니 요만큼."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간격인데 아니라고 하신다. 딱 맞는 간격이 있다. 가까워도 안 되지만 '요만큼'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땅이 아까운 까닭이다.    

 요것이 다 눈이요. 감자를 요렇게 나누씨요.
요것이 다 눈이요. 감자를 요렇게 나누씨요. 김영희

 요만큼씩 심으쑈.
요만큼씩 심으쑈. 김영희

감자를 심고나자 욕심이 생겼다. 토란도 몇 개 심어 보고 싶다. 상추 씨도 뿌려야 하고... 또 송정댁으로 쫓아갔다.

"토란씨 있으면 저좀 몇 개만 주셔요."
"우리집 것은 옛날 토란이요. 이짝은 요새 것이고. 어느 것 할라요?"
"옛날 것 주셔요. 담배상치(상추) 씨도 있으셔요?"

나는 염치도 좋다. 송정댁이 오래된 바가지 속에서 씨앗을 꺼내신다. 이른바 토종씨를 얻게 생겼다. 

 씨앗을 담아놓은 바가지가 예술작품이다. 돌아가신 영감님 솜씨다.
씨앗을 담아놓은 바가지가 예술작품이다. 돌아가신 영감님 솜씨다. 김영희

"상치씨는 지금 뿌려도 되것지요? "
"응. 지금 뿌리먼 되야."
"호박은 언제 심을까요?"
"호박은 안즉 있어야 해. 옛말에 감나무 잎사귀 나고 참새가 앉아서 안 보일 때쯤 심으라고 했어."

한마디라도 더 스승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근디 (농협) 퇴비는 신청했어요?  저는 올해 신청 안 했드만 아쉽당게요."
"우리집은 퇴비 그런 것 안허요. 뒷간에서 거름 내다씅게." 

파는 퇴비가 아니라 요새는 보기 힘든 뒷간 거름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송정댁은 진정으로 농사 스승님 중의 스승님이시다.
#귀촌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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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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