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강준일(오른쪽)과 지휘자 조장훈(왼쪽)이 관객들의 박수세례에 답례하고 있다.
박순영
다음으로 국악관현악과 해금,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협주곡 <소리그림자 No.2>(초연 2004)였다. 현악오케스트라 반주로 작은홀에서 예전에 들었을 때보다 국악관현악 반주에 국립극장의 큰 홀에서 들으니 훨씬 더 어렵고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강준일의 작품을 연주해 온 두 연주자인 바이올린의 이보연(아리앙상블 대표)과 해금의 정수년(한국해금앙상블 대표)은 이날 연주에서 특히 서로 누가 서양악기고 국악기인지 모를 정도로 구슬픈 음색이 닮아 있었는데, 제목 그대로 서로의 빛과 그림자가 되면서 붉은 황혼 같은 오케스트라의 반주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사물놀이와 피아노를 위한 <열두거리>(초연 1983)는 사물놀이 그룹 '푸리(PURI)'의 원년멤버와 젊은 피아니스트 이기준(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의 열정에 빛나는 호연이 돋보인 수작이었다.
경기도당굿 가락을 기초로 천지의 순환을 뜻하는 십간십이지를 따라서 열두가지의 각각 다른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만든 모음곡이다. 국악관현악단의 반주 없이 사물놀이와 피아노의 이중협주 만으로 서로를 위한 반주자가 되었다가 또 협연자가 되는 형식이 재미있었다.
피아노는 저음의 강렬함으로 시작해 고음의 우수어린 아르페지오와 부점 리듬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이기준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부드러운 페달링으로 어떻게 젊은 피아니스트가 강준일 특유의 리듬과 피아니즘을 저렇게 잘 표현하나 싶을 정도로 집중어린 연주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위해 모인 푸리의 원년멤버들(원일(꽹과리), 김웅식(북), 민영치(장구), 장재효(징)) 역시 신명나는 연주를 펼쳤는데, 한편 피아노 부분에서는 피아노를 소리를 경청하며 엄숙하게 앉아 있는 모습 또한 재미있었다.
각 장단별로 피아노와 사물놀이는 처음에는 서로 번갈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점차 본격적으로 협주하기 시작하는데 피아노는 음량이 큰 사물 네 개의 악기와 함께 하는데도 구별되는 화음과 선율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지막 카덴차에서 사물놀이의 신나는 두드림이 아주 격렬하더니 피아노도 망치로 두드리듯 피아노의 전 음역대를 오르내리며 주먹으로 힘껏 두드리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났다.
국악관현악을 위한 관현악 소묘 <내 나라, 금수강산>(위촉초연) 작곡가 말년의 감정과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깊고 크고 위풍당당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세심하고 선율이 잘 흘러간다. 태평성대 중에도 백성을 위해 늘 고심하는 왕의 모습이랄까. 국악관현악단에 콘트라베이스 두 대의 깊은 저음을 더해주니 어떠한 음들간의 충돌도 다 잡아줄 듯하다.
국악기들간의 화합과 소통이 서양현악기인 콘트라베이스 두 대로 질서가 잡힌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서양악기와 국악기의 구분보다는 각각의 특질을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작곡가 강준일의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수용)론적 작품세계, 즉 서양음악의 장점을 수용하고 동아시아 철학을 음악 속에 녹여내어 하나의 큰 뜻을 향하는 자연스러운 화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작품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커튼콜과 앵콜 세례에 따라 작곡가 강준일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과 국악관현악단, 지휘자에게 인사했다. 지휘자 조장훈은 "관현악단 연주회에 참 보기 드문 광경이죠. 그런데 저희가 3일 공연에 15곡을 연습해야 했어요. 앵콜은 아쉽게도 준비 못했습니다(웃음)"라며 연주회를 마무리 지었다.
강준일 역시 객석에 돌아와서도 앉지 않고 무대를 향해 계속 박수치고 있었다. 그래도 국악이, 아니 우리의 음악이 이 만큼이나 풍성하게 발전해왔다는 기쁨과 고마움의 마음이리라.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14 상반기 공연으로 대만 국립차이나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대만의 소리>가 4월 25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전통음악을 보는 새로운 시선 <리컴포즈>는 6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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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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