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충격적인 '영상' 보고 고기 끊었습니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⑩] 고기, 어떻게 끊을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등록 2014.03.31 11:58수정 2014.03.3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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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는 풀만 뜯는다고요? ⓒ 위키미디어 커먼스


"조 과장~ 고기 먹고 싶지 않아? 풀만 뜯어도 괜찮아?"

직장에서 회식을 할 때 상사들은 내게 이렇게 묻곤 한다. 물론 나는 '풀만 뜯지' 않으며,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이렇게 묻는 이유는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왠지 낯설고 부담스럽기 때문일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신기함을 그들 나름대로 가볍게 표현한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서 고기는 '필수'로 간주된다. 회식 메뉴는 거의 예외 없이 고기이며,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만찬에 고기가 없으면 '서운하다' '음식 준비에 성의가 없다'는 말을 듣기 쉽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는 배고픔에 대한 보상으로, 젊은 세대는 늘 먹어왔기 때문에 고기 먹기를 당연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채식주의자는 '별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채식주의자는 정말로 '풀만 뜯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육식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니, 얼마나 기이한가.

고기의 추억

과거에 나는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고기!"를 외쳤던 '고기 킬러'였다. 호기심에 개고기도 먹어봤고, 일부 여성들이 꺼리는 선지해장국도 좋아했던 '골수 육식주의자'였다.

선지해장국을 꺼리는 여성들이 있다는 건 회사 야유회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1박 2일로 갔던 야유회 둘째 날, 이른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이 해장국집뿐이었다. 음식을 주문하는데 "선지해장국으로 메뉴를 통일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여직원들이 "그건 못 먹는다"며 다른 메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선지해장국을 '못 먹을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그 광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선지해장국을 주문할 것인지 말 것인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결국 선지해장국을 택했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뭔가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런 내가 채식주의자를 먹는 낙을 포기한 '불쌍한 종족'으로 여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생을 사서 하는 '아둔한 종족'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주위에 채식주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스님을 제외하고 내게 채식주의자는 소설에나 아주 가끔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스스로 '불쌍한 종족'이 되어 "풀만 뜯어도 괜찮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그러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괜찮아요.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아니거든요."

고기 킬러, 채식을 결심하다

A4 종이 한 장보다 작은 공간에서 온몸이 구겨진 채로 견뎌야 하는 비참한 삶. 이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는 없다. 동물사랑실천협회와 한국동물보호연합은 지난 1월부터 시작된 AI(조류독감)와 관련하여 세종시 부강면에서 일어난 닭 생매장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가축 살처분 방지 및 제도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러한 방식이 동물의 고통 없는 안락사에 관한 동물보호법 제10조, 가축전염병예방법, AI긴급행동지침 등을 위반한 불법 행위임을 지적하고 규탄했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가축 살처분 방지 및 제도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AI 살처분 방지 및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가졌다. ⓒ 조세형


내가 채식을 결심한 이유는 지난 연재기사에서 밝혔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동물의 고통을 '내 한 몫이라도' 줄여보고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나를 이런 결심으로 이끈 최초의 계기는 내게 동물권과 채식주의에 관심을 갖게 해준 반려고양이 '애기'다.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공장식 축산의 무자비한 실상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지구생명체>다(관련기사 : 산 채로 목 자르고...그걸 맛있게 먹다니!).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윤리적 소비'의 원칙이 오로지 먹는 것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동물의 털가죽으로 만든 의류·가방,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도 구입하지 않는다. 이런 실천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무수한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식은 조금 어렵다. '하루 세 번의 선택'을 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로서는) 우리 사회에서 잡식이 주류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채식은 잡식보다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똑같이 잡식이 주류인 사회라 해도 서구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세계 최대 육류 소비국인 미국에서도 채식주의는 생소한 문화가 아니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채식주의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왔다. 채식주의야말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가장 많은 동물을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인지 몰라도 미국에는 채식 제품·식당을 비롯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미국에서 살다온 어느 채식주의자는 그곳에서 채식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동물보호 활동가인 게리 유로프스키도 채식주의자가 된다고 해서 "아무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과잉 육식의 병폐를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겪었기 때문일까. 미국에서는 채식, 심지어 일체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알리는 운동이 활발하다. 수많은 영양전문가·의료인들이 연구·저술·대중강연 등을 통해 채식을 알리고, "식탁에서 고기를 치우라"고 권고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미국 유명인 중에서 채식주의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심장수술 후 건강상의 이유로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작년 후반 완전 채식을 선언했다. 열성적인 환경운동가인 고어는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책임 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회(PCRM) 미국의 비영리 의료단체인 '책임 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회'는 건강개선 및 질병치료를 위한 채식의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미국사회에 채식을 보급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주소: http://www.pcrm.org ⓒ 책임 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회(PCRM)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사월의책)에서 최훈 교수는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본인의 건강은 채식을 하는 무수한 이유 중 가장 '하찮은'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나는 최훈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채식이 아무리 건강에 유익하다해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많은 영양·의료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채식주의를 권장하는 미국의 분위기는 솔직히 부럽다.

채식, 어떻게 할 것인가

4년 전, 채식을 결심한 내게 두 가지 과제가 생겼다. 하나는 고기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였다.

만약 내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채식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정반대였다. 임순례 영화감독은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릴 정도로 몸부림치는 국거리용 바지락조개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는 이런 섬세한 감수성마저 없었다. 나는 고기를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했기에 (정신건강에는 해로운) 과격한 방법을 동원했다. 

고기를 먹고 싶을 때마다 나는 동물보호단체들이 공개한 공장식 축산의 가장 충격적이고 잔인한 영상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고기를 '먹을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서 고기에 대한 정을 뗐다. 그리고 "혀끝의 순간적인 즐거움이 동물이 평생 겪는 고통보다 중요하냐"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여럿이 식사를 할 때면 고기 반찬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나도 모르게 고기를 입에 넣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에 앞에서 언급한 다큐 <지구생명체>의 포스터를 깔아두었다. 하루 10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내게 이 방법은 결심을 상기시키고 마음을 다잡는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니 어느덧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히려 고기를 먹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습관의 힘은 이토록 대단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밥·반찬·국·찌개로 이뤄진 한국의 가정식이 바로 채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불고기·갈비·설렁탕·삼계탕 등을 제외하면 한식의 주재료는 식물성이다. 한국의 전통 밥상에서 불필요한 동물성 재료를 제외하거나 식물성으로 대체하면 채식이 된다.    

그런데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요리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나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나이가 적지 않은 지금까지도 나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있다. 스스로 식사를 준비할 능력도, 정성도 없었던 내게 완전 채식은 무리였다. 

결국 어패류는 먹기로 했다. 채식주의를 분류하는 기준에 따르면 '페스코 채식'쯤 되겠다. 물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원재료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미량의 동물성 성분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완벽에 대한 강박은 빠른 시일 내에 채식을 포기할 핑계거리만 늘리는 셈이었다. 이건 결코 동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차차 실천의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시계 방향으로) 비빔밥, 샐러드뷔페, 야채 스파게티, 채식빵 우리 주변에 채식은 의외로 흔하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상에서 동물의 고통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 조세형


의외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외식을 할 때도 삼계탕이나 설렁탕만 파는 식당이 아니라면 어디를 가든 먹을 것은 있었다. 고깃집은 차라리 편했다.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을 동안 나는 쌈 채소와 밥, 된장찌개를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커밍아웃'도 했다. 담배를 끊을 때도 주변에 먼저 알리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관계가 지극히 좁은 내게 커밍아웃의 대상은 가족과 절친한 친구 몇 명이 전부였다.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커밍아웃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회식을 통해 자연히 알려지게 되었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나의 결심을 존중해 주었다.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면서 "둘 다 먹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사람은 적어도 없었다. 가족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족 중 고기를 가장 좋아했고 가장 많이 먹었던 내가 채식을 선언하니 "얼마나 하겠냐"는 반응이었다. 이렇게 나는 어설프게나마 채식주의자로서 한 걸음을 떼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고기 킬러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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