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기숙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다.
김종성
의금부에서 호된 경험을 치른 조광조는 세상을 뒤엎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상을 고치는 개혁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얼마 안 있어 그는 과거시험 준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역모사건 3년 뒤인 스물아홉 살 때 그는 과거시험 소과(小科)인 진사시험에서 장원급제했다. '9급 공무원시험'에 수석 합격한 셈이다.
진사시험을 통과한 진사나 생원시험을 통과한 생원 중에서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국립대학인 성균관 입학 기회를 받았다. 성균관에 들어간 진사·생원은 거기서 대과(大科) 시험을 준비했다. 진사 조광조도 성균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는 다른 유생들처럼 대과시험에 매진하지 않고, 입학하자마자 성균관 개혁 캠페인에 착수했다.
조광조가 벌인 캠페인 중 하나는 요즘 말로 하면 '바른 자세 운동'이었다. 성균관 유생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평소에도 도포와 관을 벗지 않으며 혼자 방에 있을 때에도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강의실에서든 기숙사에서든 다리를 뻗거나 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균관에 갓 들어간 신입생이 이런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신입생 조광조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학교 분위기부터 바꾸려 하자, 성균관에서는 징계를 준비했다. 3년 전에 혁명을 모의했다가 훈방 받은 사람이 성균관에 들어와서 선배들의 휴식을 '훼방'하니 성균관 사람들도 꽤 황당했을 것이다. 이때 어찌나 시끄러웠던지, 조정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을 정도다.
하지만 조광조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덕분에 유생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낮에도 가끔씩 낮잠을 자던 유생들은 조광조를 무척이나 원망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광조에 대한 징계 움직임이 철회되고, 유생들은 물론이고 교원들도 조광조의 팬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그의 명성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운동권 청년조광조의 열혈 팬이 된 성균관 교원들은 조광조를 조정에 추천했다. 성균관의 추천을 받은 유생은 대과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간부급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조광조가 입학한 지 3년 뒤에 성균관은 그를 군수급인 종6품 조지서 사지에 추천했다. 조지서 사지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의 수장이었다.
조광조는 특채를 통해 관직을 받는 게 기분 나빴다. 정식으로 대과시험에 급제해서 당당하게 공직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지서 사지에 임명된 것을 무시하고 그냥 대과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조지서 사지에 특채된 게 자극제가 됐는지, 특채된 지 2개월 만에 조광조는 대과시험에 급제했다. 이때가 1515년, 그의 나이 서른네 살 때였다. 혁명을 모의했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난 운동권 청년이 8년 만에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대과에 급제하고 처음 몇 달 동안 조광조의 관직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3개월 만에 임명된 자리가 정6품 사간원 정언이다. 사간원은 지금의 감사원 같은 기구이고, 사간원 정언은 왕에게 국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리였다. 조광조는 말을 잘했다. 그래서 사간원 정언은 그에게 딱 맞는 자리였다.
사간원 정언이 되자, 조광조는 곧바로 개혁운동에 착수했다. 어떤 조직이든지 간에 초장에 자기식으로 분위기를 바꿔놔야 직성이 풀렸던 모양이다. 사간원 신입 관료가 된 조광조는 보수파에 대한 정치공세에 착수했다.
조광조는 사간원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중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사간원과 사헌부(검찰청과 유사)의 벼슬아치 전원을 해임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조광조 본인은 빼고 나머지 전원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신입 공무원이 자기 부서의 상관들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의 공무원들까지 전원 숙청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사간원·사헌부는 물론이고 조정 전체가 술렁였다. 상소를 받은 중종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입 공무원인 조광조가 그런 상소를 올린 이유는 무엇인지, 이에 대해 중종은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제3부에서 계속 설명하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3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