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귀농 교육을 받았습니다

열흘간의 농업 교육을 마치며... 농민을 위한 농업정책은 아직 멀다

등록 2014.03.30 12:02수정 2014.03.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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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에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강의를 받은 적은 많았다. 또 '연수' 혹은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직원들과 함께 여행했던 적도 많았다. 대부분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참여라기보다 마지못해 출석한 경우가 많았고 시간도 하루는커녕 반나절을 채운 적이 거의 없었다. 교육 혹은 연수 내용이 상급 기관의 전달 사항이었거나, 자체 연수도 현실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라기보다 연간 계획에 의한 추진 실적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중에 귀농학교라는 곳도 있고 더러는 지역에서 귀농을 위한 설명회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 들으면서도 일단 그 내용에 의구심을 가졌다. 이미 어느 정도 농사 경험을 쌓은 터라 특별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전라남도 농업기술원이나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귀농인을 위한 교육이 있으며 그런 교육을 일정시간 받으면 농업인으로 인정받아 농지 구입 자금이나 농가주택 신축자금 등 지원을 받는데 유리한 자료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무상이 아닌 바에는 자리 융자금도 어차피 빚이라는 생각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손자에게 배운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래도 누군가의 피교육자가 된다는 사실이 쑥스러운 나이가 아니냐는 망설임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자발적으로 지난 17일부터 28일까지 2주일에 걸쳐 열흘간의 교육을 받았다.

3월 17일과 18일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의 홍보자료를 만들기 위한 사진 촬영 교육, 19일부터 21일까지는 촬영한 사진을 가공하여 직접 홍보자료를 만드는 포토샵 교육, 그리고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은 약용작물 재배에 관한 교육을 받았는데 의외로 내용이 좋아 유익한 시간이었다.

거기에 비슷한 연배도 많아 걱정하지 않았던 점도 다행이었다. 물론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오후 5시에 끝나는 '교육'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굳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허리가 편치 못한 터라 몸이 고달팠다. 거기에 오후 강의 시간에는 강사에게 미안할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예전 같지 않은 변화였다.

그리고 금방 듣고도 잊는 망각증세는 괴로운 일이었다. 특히 포토샵 분야는 외래어가 많아 초보자에게는 버거운 행진이었다. 아마 노력에 비해 머리에 남은 것이 가장 적은 교육이었지 않나 싶다.


처음부터 기대가 컸던 교육은 아니었다. 그저 농사를 짓다 보니 필요할 것 같은 내용들이다 싶어 신청했는데 정작 교육을 받는 동안 텃밭의 일상에서 의문을 품었던 관심사에 대한 많은 답을 구할 수 있었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를 다루는 상식을 넓힌 점이나 포토샵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후반기 5일 동안 약용작물 재배와 판로 등에 관한 교육은 앞으로 농사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심히 보 넘겼던 이름 모를 풀의 이름을 확인한 점도 그렇고 그 풀들이 약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발견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도라지와 더덕 등 몇 작물을 기르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약용작물을 재배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a 알로에 농장       고흥군 소재 귀농인의 알로에 농장 일부 모습.
겨울 난방비가 많이 들고 수확하기가지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애로를 말하는 표정이 밝지만 않았다.

알로에 농장 고흥군 소재 귀농인의 알로에 농장 일부 모습. 겨울 난방비가 많이 들고 수확하기가지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애로를 말하는 표정이 밝지만 않았다. ⓒ 홍광석


27일의 현장학습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전남 고흥에서 알로에를 재배하는 농가와 석류를 재배하는 농가를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성공한 귀농인의 모습, 농촌의 현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우선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농촌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며 연간 실소득도 도시 봉급자의 수준을 넘는다는 말이 대견하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도 버거운 현실에서 판로까지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충을 들으면서 안타까웠다.

농사만 잘 한다고 좋은 농부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렇지만 6차 산업 운운하며 생산에서 판매까지 귀농인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현실은 귀농인의 입장에서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치하는 인간들이 농민의 소득향상을 내세워 농민의 책임을 강조하고 정부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귀농인들의 실패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개척을 못한 점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이에 중간 업자들의 끼어들어 농간을 부리는 바람에 순진한 귀농들인이 손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귀농인들도 작목 선택을 잘해야겠지만 정부나 자치단체 또 농협 등은 귀농인들의 생산물에 대한 안정적인 판로 구축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귀농을 권장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귀농인들을 '자영업자'라고 하면서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강사도 있었다. 자영업자? 맞는 말일 수 있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나라에서 농민들이라고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어서 안 된다는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이 무슨 일을 우선 하는 사람들인지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대표"라거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농민을 기만하는 수사요, 추겨주면서 등짝 때리는 수법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듣기 좋은 호칭이 중요하지 않다. 실질적으로 농민을 위한 농촌을 만들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a 숙지원의 수선화         예고된 봄이라고 하지만 봄을 상징하는 수선화가 반갑다. 
숙지원은 지금 매화지고 수선화와 살구꽃 자두꽃이 길을 밝힌다.

숙지원의 수선화 예고된 봄이라고 하지만 봄을 상징하는 수선화가 반갑다. 숙지원은 지금 매화지고 수선화와 살구꽃 자두꽃이 길을 밝힌다. ⓒ 홍광석


28일, 2주간의 교육은 끝났다. 농업 기술원의 교육프로그램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농사 경험을 가진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수강생 모두가 전남의 각지에서 모인 귀농인 혹은 예정자들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비록 텃밭 농사지만 앞으로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교육 기간 내내 불편 없이 도와준 전남 농업기술원의 교육 담당자들 그리고 열과 성의로 강의를 해주신 강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농부의 자격을 인정 자격 연수도 아니었고 한 분야의 면허를 인정해 주는 교육도 아니었으나 얼치기 농부를 면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덧붙인다. 다음 기회에는 과수 분야와 농기계 분야의 교육에도 참여할 작정이다.

오늘은 토요일, 모처럼 비 내리는 숙지원을 돌아보니 매화는 이미 시들고 그렇잖아도 키 작은 노란 수선화는 비에 젖은 몸을 더 낮추고 있다. 회색 빛이 가득했던 잔디밭은 햇볕이 많은 닿는 곳부터 연두색으로 물들고 있다. 자두꽃 향기는 짙어진다. 깊어가는 봄, 어느덧 화려한 4월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블로그 등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농교육 #알로에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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