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강동구 강일동 강동공영차고지에서 만난 염씨의 동료들은 경찰의 수사 발표를 믿지 못했다. 죽은 사람에게 사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급발진에 대한 정밀 검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민수
31일 오후, 서울 강동구 강일동 강동공영차고지에서 만난 염씨의 동료들에게도 의문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경찰의 말을 믿지 못했다. 경찰이 염씨에게 사고 책임을 미루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1시 40분이 되자 오후반 버스기사 7~8명이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송파상운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기사들은 도착하자마자, 알코올 측정기에 빨대를 대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삐'소리와 함께 수치는 'O'이 찍혔다. 그리고 운전을 해도 된다는 점검표가 나왔다. 한 기사는 "휴게실 들어올 때마다 자동"이라며 "0.00001도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들은 이날 북한의 서해상 포격 소식을 전하는 TV를 보고 있었다.
휴게실 유리창에는 'Smile 웃으면서, Safe 안전하고, Slow 천천히, Smart 모범되게, 4S를 실천합시다'고 적혀 있었다. 게시판에는 '3월 21일'자로 사장 이름의 알림 문서가 걸려 있었다. 몸에 이상이 감지되면 언제든지 회사에 알리고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사고가 난 3318번을 비롯해 송파상운 소속 370번, 3321번 등 3개 노선, 버스 20대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20명씩 2개조, 40명의 기사들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운행한다. 지난 19일, 사고 당시 오전반이던 염씨는 모친 병간호를 이유로 대체근무를 부탁했던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두탕'을 뛰었다. 그날 사고로 자신을 포함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죽었다고 책임 몰고가면 안 돼, 사고차량 정밀 조사해야"
기사들은 2차 추돌의 원인이 급발진에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졸음 운전을 했다고 해도 사고가 나면서 잠을 깨고 핸들을 바로 잡기 시작했다"며 "운전 경력이 한두 해도 아닌데,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착각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이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B씨도 "다른 버스 기사들에게 물어봐라, 급발진이 아니면 사고가 설명 안 된다"며 "마라톤 풀코스 완주할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한 사람인데, 가속페달을 밟을 수가 있냐"고 말했다.
또 사고 차량에 대한 정밀 검사를 당부했다. 자신의 버스도 급발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고 버스는 현대자동차가 만든 '뉴슈퍼에어로시티 초저상SE'버스로 지난 21일, 인천에서 일어난 연쇄 추돌 사고의 버스도 같은 기종이다. 연이은 버스 사고로 이 차종에 대한 정밀 검사 요구가 높은 상황이다.
C씨는 "사고 뒤 휴게실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며 "사고 소식을 듣고 급발진이라 생각됐고 언제라도 나에게 닥칠 수 있어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천 버스 연쇄 추돌 사고도 급발진으로 추정되는데 사고 재발을 위해서는 정밀 조사가 먼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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