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자살기도, 삼엄한 통제'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이 자살을 기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지난 달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중환자실 앞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유성호
국정원이 간첩 증거를 조작하다가 들통이 나자, 연루된 직원은 자살소동을 벌였다. 그는 최근 의식을 회복했으나, "뇌의 최근 기억력을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돼 앞으로 지각 능력에 장애가 나타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3월 28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정원의 증거 조작사건을 대선개입 혐의와 관련지어 보도했다. 대선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의 존재이유를 의심받게 되자, 무리하게 간첩사건을 밀어붙여 증거조작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들통 난 조작 사건을 덮기 위해 꾸민 조작 사건이 다시 들통 난 셈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 검사 2명을 증거위조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작된 문서들을 정식 외교경로로 받은 것처럼 속였다는 이유다. 이들은 중국 당국에 자료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안국으로부터 받았다'며 거짓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었다.
물론 그 검사들은 '(국정원의 활동에 관해)기밀이 필요했을 뿐 속이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는 얼마 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한 주옥같은 말이 떠오른다.
"선진국이 안 된 국가들에서는 (...)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김 의원은 이후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이 오히려 당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행자가 '정보당국에서 몰랐다면 무능하고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맞다'고 답한다. 우리는 '부도덕해도 유능한 게 낫다'며 현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스스로 인정하듯, 이들은 무능하다.
어찌 그리 뻔뻔한가...3월 24일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위장전입과 농지법 위반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고 구구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에 대해서도 "적절성 여부에 대한 지적을 부인하지는 않겠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가장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다가온 것은, 주민등록법을 주관하는 부처의 장관 후보가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는 사실도, 공직자 윤리를 확립할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의 수장 후보가 공금 수천만 원을 지인들 경조사비로 썼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구구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장관만은 하겠다며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가장 경이로웠다.
그러나 더 부조리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당 의원이 공정한 선거관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법과 원칙에 따라서 나름대로 선거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앞으로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장관 자리는 이제까지 잘못해 온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과정인 모양이다.
권력이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추상같은 게 법이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한국 역대의 정권을 봐도 알 수 있다. 정통성 없고 부도덕한 권력일수록 '법', '정의', '윤리'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한국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말하자면,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한국신문협회는 지난 달 25일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에 '한국 신문상'을 주기로 하면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론이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인 용기를 잘 보여주었다." 언론학자로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권력자의 탈선"을 드러내기는커녕, '선거부정'이라는 권력의 추악한 탈선을 은폐하는 보도였기 때문이다. 권력을 등에 업은 채 권력의 치부를 숨기는데 동원된 언론에 무슨 "용기"가 필요한가.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부조리한 현실,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