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호칭 받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학교를 탈바꿈시킨 청소 도우미 선생님... 조용하지만 빛나는 존재감

등록 2014.04.01 11:49수정 2014.04.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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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도우미 선생님의 환한 얼굴 교무실 청소를 하시다가 잠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음.
청소 도우미 선생님의 환한 얼굴교무실 청소를 하시다가 잠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음.박영숙
"좀 쉬시면서 하세요. 너무 열심히 하시다가 병 나시면 안 돼요."
"우리 학교 아이들이 얼마나 착한지요. 담배꽁초 하나 없어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엔 청소를 담당하시는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학생들은 이 분을 봉사 담당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복도나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신다. 불과 칠팔 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학교의 모든 청소를 도맡았지만 최근에는 학교마다 미화 담당자가 있는 추세다. ​

요즘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청소 실력이 형편없다. 빗자루질도 해보지 않은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청소기를 돌려 보거나 걸레질을 해보지 않은 학생도 제법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부모들이 다 알아서 하는 세태이므로 자연히 학교에서도 청소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교사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청소 지도일 정도로 학생들의 청소 실력은 형편없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새로 지어진 이전 학교에 비해 대도시 근교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어두컴컴한 복도에 출입문조차 덜컹거렸다. 교실도 어두워서 혹시 전등을 켜놓지 않은 줄 알고, 수업을 하다가 몇 번씩이나 스위치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복도 곳곳엔 학생들이 뱉어 놓은 침이 얼룩져 있었고 버려놓은 휴지는 낙엽처럼 뒹굴었다. 나를 찾아온 외판원이 "그 좋은 학교에 있다가 왜 이런 곳에 왔어요?"라고 의아해하며 묻기도 했을 정도였다.

내가 부임한 첫해의 2학기에 이 분이 우리 학교에 오셨다. 한 눈에도 성실하게 보이는 분이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3년 반의 세월, 학교는 나날이 달라졌다. '그때 그 학교가 맞나?'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정도였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학교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같은 곳에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면 익숙해지면서 다소 타성에 젖게 된다.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 건강을 해치게 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특히 육체적 노동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30여 평 되는 집의 청소도 실컷 해놓고 돌아서고 나면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는데 그 백배가 넘는 학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본관, 후관에 6개나 되는 화장실은 물론이고 교무실과 복도, 그 모든 곳을 60대의 아주머니 한 분이 모두 청소하신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 분은 한 번도 학생들 험담을 하시는 법이 없다. 아이들이 장점만이 보이시는 모양이다. 이런 긍정적인 시각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전 학교에 근무할 때 두 분의 청소 미화원이 있었다. 당시 학생부를 맡고 있던 나를 만날 때마다 제발 학생들 껌과 휴지 안 뱉게 단속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통에 나중에는 그 분들이 복도 끝에 보이면 다른 쪽으로 돌아서 가기도 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온종일 생활하는데 휴지나 껌을 버리지 않기가 어찌 쉽겠는가?

휴지 없는 학교, 이 분 덕택입니다

 논공중학교 진입로의 가지런한 모습
논공중학교 진입로의 가지런한 모습박영숙

 교사 뒤편의 깨끗한 모습
교사 뒤편의 깨끗한 모습배준영

그러나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달라져 갔다. 저희들이 쓰는 교실은 모르겠지만, 복도나 건물 밖에서는 휴지가 현저히 줄어갔다. 그리하여 처음 부임할 때 내가 근무했던 학교 중에 시설이나 청결도가 거의 최하급이었던 이 학교는 지금 내가 근무했던 학교 중 가장 깨끗한 학교가 되었다.

<사막에 숲이 있다>는 책이 있다.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설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이 곳에 사는 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막에 풀씨를 뿌리기 시작해서 비옥한 옥토로 바꾼 이야기다. 감탄과 감동을 하며 읽은 책이다. 비행기를 타고 그 곳에 가서 자원 봉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에도 작은 기적이 미화원 아주머니를 통해서 일어났다. 낡은 학교가 낡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학교로 변모한 점이다. 작은 기적은 학생들을 변화 시켰다. 학생들이 붐비는 복도와 운동장이 시내의 어느 학교보다 학생들이 휴지를 버리지 않고, 침을 뱉지 않는 신성한 공간이 된 것이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이 말씀하신다.

"이 학교는 정말 깨끗해요."


그 변화를 지켜본 나로서는 깨끗한 학교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분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지 아니할 수가 없다. 교실에서 수업하다가 보면 문 밖에서 교실문 주변까지 청소하시느라 달그닥 소리가 자그맣게 날 때가 있다.  창문에는 그 분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시는 분이 있어요. 우리가 공부하고 있을 때도 문 밖에서 여러분들이 청소해야 할 복도를 열심히 닦고 계시는 분이세요. 왔다갔다 하다가 청소하시는 그 분과 마주치면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립니다. 학교의 모든 화장실과 복도, 교무실까지 매일 청소를 하셔요. 꼭 그렇게 다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닌데도..."

아이들도 진심으로 감탄의 표정을 드러낸다. 저희들은 '교실 한 칸 청소하는 것도 힘든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 많은 곳을 다 청소하실 수 있나?' 하는 얼굴빛이다.


"저렇게 정성스레 곳곳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시는데, 여러분들 더 깨끗이 써야겠죠?"

조용하지만 빛나는 존재감을 학생들도 안다. 일의 고됨에 비해 그분이 받는 적은 봉급을 생각하면 괜시리 내가 미안해진다. 가히 '선생님'이란 호칭을 받을 만한 분이시다.
덧붙이는 글 적은 봉급과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일해주시는 청소 미화원에 대한 감사와 칭송의 글이다. 대학교 청소 미화원분들의 고군분투 이야기가 사회 여론화 된 적도 있는데, 교사의 입장에서 그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써보았습니다.
#교육 #학교 #논공중학교 #환경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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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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