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그대로인데 관객이 변했다

[리뷰] 연극 <날 보러와요>... 이젠 추억이 된 화성연쇄살인 사건

등록 2014.04.01 14:57수정 2014.04.0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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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와요~날 보러와요~"

가수 방미의 히트곡인 '날 보러 와요'. 귀에 익은 이 멜로디는 원래 보니 엠의 '원 웨이 티켓'을 방미가 개사해 부른 것이다. 연극 내에도 삽입된 이 노래 가사 중 '날 보러와요'라는 구절은 노래 가사 그대로, 이성을 유혹하는 추파로도 들릴 수 있고, 혹은 연극 내에서 범인이 자신의 정체를 보러오라는 의미로, 혹은 이 연극의 제작진이 공연을 직접 보고 사건의 진상을 목도하라는 의미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a  사실적인 무대. 관객은 실제 사건 수사에 동참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실적인 무대. 관객은 실제 사건 수사에 동참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 SPS엔터테인먼트


연극 <날 보러와요>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10건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대다수 관객들에겐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초연돼 그 해 서울 연극제 작품상 및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공연을 봉준호 감독이 영화한 것이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그동안 수차례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으로 권해효, 김뢰하, 송새벽 등 수많은 배우들이 거쳐가며 화제와 흥행 열풍을 이어갔다. 이번 공연은 김광림 연출이 아닌 변정주 감독의 연출로 아트센터 K 세모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서울에서 온 김 형사와 화성의 터주대감 박 형사, 그리고 무술 9단의 조 형사. 새로 부임한 김 반장과 박 기자, 미스 김 등이 등장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유력한 용의자들은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 파면 팔수록 깊어지는 구덩이처럼 이 무시무시한 살인사건의 중심에 선 형사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전출, 은퇴, 심지어 정신착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목격한 박 기자는 언젠가 범인이 잡힌다면 이 사건을 책으로 써 내겠다고 한다.

연극 <필로우맨>,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변정주 감독은 2009년 <날 보러와요> 연출 이후 5년 만에 다시 연출을 맡아 새롭게 공연을 올렸다. 기존 공연에서도 연기한 송종학, 김준원, 이현철 등도 다시 참여했다. 최근 <변호인> 등 영화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송영창,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인기를 얻고 있는 최유하 등이 새롭게 참여했다.

이 연극 <날 보러와요>는 굉장히 사실적인 작품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실제 사건 현장의 옆에서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적인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 덕에 쉽게 몰입할 수가 있고 때로는 웃을 수 있는 장면도 나오지만, 사건 자체가 갖는 잔인함과 무게에 왠지 모를 오싹함이 느껴질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로데스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연극에서 벌어진 사건 자체의 잔혹함과 그것이 사실은 실제 사건이라는 인식 때문이리라.


a  배우들의 열연은 박수받을 만하나 앙상블이 아쉽다.

배우들의 열연은 박수받을 만하나 앙상블이 아쉽다. ⓒ SPS엔터테인먼트


유력한 용의자가 3명 등장하는 초연 때부터 한 명의 배우가 맡아 1인 3역을 연기하였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정신병자 이영철, 알코올 중독 변태 성욕자 남현태,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자 비오는 날마다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신청하는 정인규. 초연 때 용의자 역을 맡았던 류태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 변태 아저씨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현철과 김철진이 용의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초연 때와 변한 것은 없다. 대본도 크게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고, 몇몇 배우들은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다시 출연했다. 기본적인 설정과 연극의 성격도 그대로고 무대 활용이나 조명, 음악 등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 그러나 예전 작품들과 달리 힘이 떨어지고, 산만해 보이는 것은 배우들의 앙상블 부족이 아닐까 싶다.


두 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던 전작과 달리 연극이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오브제로 사용된 거울조차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음향이나 배우들의 성량 역시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어찌 보면 이 연극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세상이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2006년 4월 2일에 이미 이 연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끝이 났다. 유영철, 강호순 등 수많은 연쇄살인마와 살인사건에 익숙해진 우리는 더 이상 화성연쇄살인 사건에 관심이 없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제목처럼 이제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화가 주는 충격과 사실성이 약화되어 이 연극에 대한 흥미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a  공연 포스터 및 캐스팅

공연 포스터 및 캐스팅 ⓒ SPS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날 보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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