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 씨
권미경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 그 미국에서도 최고의 MBA로 꼽히는 곳이 와튼스쿨이다. 그 세계 최고 MBA 와튼스쿨에서 13년 연속 최고로 인기를 끈 강의가 국내에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적이 있다.
바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필수불가결한 덕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글쓰기 강연을 하면서 '책을 쓰고 싶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수많은 수강생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원고 대부분은 책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책 제작비를 대는 자비출판이 아니라면, 결국 원고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측은 책 제작비를 부담하는 출판사다. 그런 이유로 출판사가 어떤 원고를 원하는지 아는 것, 즉 역지사지가 책 출간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 저자를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엇나간다.
"요즘 제일 많이 들어오는 투고 원고가 뭐냐면 '나는 이렇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다, 내가 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 주겠다' 이런 류의 것이에요. 일종의 처세술 자기계발서인데요. 예전에는 직장이 안정돼 있었잖아요. 회사를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을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요. '나는 회사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를 갔다' 이런 원고도 많이 들어와요. 이런 원고 대부분은 책이 되지 못해요. 내용이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그런 쪽으로는 이미 출간된 책들도 많고요.이렇게 비슷비슷한 원고를 주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뭐냐면, 별로 자기 점검을 안 하세요. '이 책은 나니까 쓸 수 있는 거야, 이런 책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시는데, 조금만 도서 검색을 해보면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과 반응도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잘 모르시고 '이 원고는 정말 놀라운 책이 될 거다, 파란을 일으킬 거다,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못하는 거죠."그 수많은 투고 원고들이 다들 자기 얘기 하기에 바쁘지만, 정작 책을 내줄 출판사가 원고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묻지 마' 투고 원고일수록 필자 소개, 목차, 원고 및 콘셉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부실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험 있는 편집자들의 경우 원고를 어느 정도만 읽어도 필자의 전문성 및 글 솜씨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고를 끝까지 다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내가 보낸 투고 원고가 거의 읽히지 않고 휴지통에 직행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투고 원고가 그나마 책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
"자기 메시지가 확실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원고의 기획이나 콘셉트가 진부하면 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 출판사에서 20권 가까이 책을 작업했는데 그 중에 단 두 권만이 원고를 투고한 신인 저자였어요. 굉장히 적죠. 그중 한 신인 저자분이 쓴 책 제목이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입니다. 덕(德) 윤리에 관한 책이에요.약간 인문 쪽 느낌도 나는데, 덕을 자기계발화 시켜서 '진짜 착한 것이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뤘어요. 기존의 자기계발서에는 없는 시도거든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관한 책들은 있었어요. 주로 착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당당해져야 하는지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주장의 결론은 내가 이기적이 돼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거든요.
반면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에서는 덕 윤리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것이 선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진짜 착한 것이란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여러 가지 사례와 인용으로 풀어냈어요. 기존에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 없었기 때문에 원고가 출간될 수 있었죠. 한창 안철수씨가 뜨던 상황이었는데 마침 '착한 성공'이라는 책의 콘셉트가 당시의 분위기와 잘 맞기도 했습니다.""투고로 뽑힐 확률보다 편집자의 검색으로 눈에 띌 확률이 더..."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한 권미경씨는 여름방학 과제였던 단편소설을 마감 임박해서 허겁지겁 제출했는데, 이것이 교수님의 눈에 들어 '제2의 양귀자'가 될 재목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런 이유로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교수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더욱 고무됐다. 4학년 때 이 교수님의 추천서를 들고 살림출판사 심만수 대표를 찾아가게 됐는데, 추천서에는 심만수 대표의 아내인 소설가 양귀자의 문하생으로 권미경씨를 추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심 대표에게서 '네가 글을 쓰고 싶거나 편집자를 하고 싶다면 문하생을 하지 말라'는 예상치 못한 조언을 듣게 된다. 많은 경험을 하고, 다른 직업도 가져 보고, 돈도 벌어본 후에 글을 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권씨는 구성작가·카피라이터 등의 일도 하고, 글과는 관련 없는 평범한 회사를 다녀보기도 하고 기획 일도 하다가 우연히 글 다듬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게 되면서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한빛비즈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이들에 비해 편집자로서 시작은 늦었지만 다양한 인생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됐는지, 출판사 입사해 처음으로 편집한 주식 관련 책이 무려 6만여 부나 나가는 대박을 쳤다. 주식과 경제에 문외한인 자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하고 편집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입사 이후에는 주로 출판사에 쌓여 있는 원고를 편집하는 일을 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처음으로 자신이 스스로 기획해서 저자까지 직접 찾아내 섭외한 책을 편집하게 된다. 그 첫 책이 바로 2012년 1월에 출간된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수만 권이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출판 트렌드는 출판사에서 단행본 기획을 먼저 잡고 해당 내용을 잘 쓸 수 있는 저자를 직접 물색하는 방식의 '기획출판'이 대세다. 때문에 편집자에게 더 많은 기획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