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지하철 역
최현정
다음 날 아침,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체크했다. LA 서쪽 지역이니 오늘은 게티 뮤지엄, UCLA 그리고 비벌리힐스를 들르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곳 모두를 버스로 다녀야 한다는 것. 직원에게 게티 뮤지엄과 오늘 밤 숙소인 할리우드 가는 길을 물어봤다. 유스호스텔 특성상 매우 자주 듣는 질문인 듯, 직원은 이미 인쇄된 게티 뮤지엄까지의 약도와 할리우드쪽 숙소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컴퓨터에서 프린트해 내민다. 뮤지엄까진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갈 수 있겠다.
약도에 적혀 있는 대로 1.5달러를 내고 '환승'을 외치니 기사가 길쭉한 종이를 건네준다. 이 종이면 시간제한 없이 다른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런데 몇 번 버스를 갈아타다 한 아줌마에게 LA에는 5달러짜리 1일 패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운전 기사에게 카드를 사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건네 내준다. 초기 카드 값 1달러까지 합해서 6달러만 내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도시를 떠나는 날까지 나흘 동안 20달러 안쪽의 교통비로 LA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다운타운 안에선 깨끗하게 정비된 지하철까지 이용할 수 있어 빠르게 움직일 땐 제격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익숙한 지명이나 낯익은 풍경이 나오면 내려서 구경하고 부담 없이 다른 버스를 타는 식의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다. LA 한인타운은 그 유명한 할리우드 간판이 보이는 역에서 지하철로 20분 정도만 가면 된다. 차량 렌트비나 주차 공간, 기름값 같은 걱정은 접어놓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저렴한 대중교통, 부담 없는 여행 저렴하게 LA 구석구석을 다니는 즐거움에 한참 익숙해 질만하니, 두 번째 목적지 산호세로 이동할 날짜가 되었다. 3주 전, LA 중앙역에서 오후 2시 반에 출발하는 볼트버스(Bolt Bus)를 예약해 놓았던 참이다. 몇 년 전 앰트렉(Amtrak) 철도를 이용해 뉴욕서 시카고, 시애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왕복 종주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처음엔 철도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시간이며 비용, 편리성을 따져보니 이 구간은 버스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약 7시간, 거리로는 480km 정도 되는 LA에서 산호세까지의 버스 요금은 단돈 13달러. 이 장거리 버스는 메가 버스(Mega Bus)와 더불어 예약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싸지는 가격 정책으로 미 전역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도시간 교통 수단이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보며 달린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의 햇빛을 만끽하며 난 저녁 늦게 산호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산호세 숙소를 나서며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LA만 같아라~" 어떤 이들에겐 이 비교가 불쾌할 수 있겠지만, 저렴하고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했던 LA의 여운이 강했던 탓이다. 그렇게 기원하며 숙소 앞에 있는 바트(Bart) 정류장으로 씩씩하게 향했다. 바트는 우리의 전차 같은 북 캘리포니아만의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정류장에서 난 출근 바트를 기다리는 아가씨에 질문을 건넸다. 지역 교통을 빤히 꿰고 있는 건 역시 젊은 직장인이겠다 싶어서다.
"난 어젯밤 여기 도착한 여행객이야. 앞으로 며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여기 산호세에 하루 패스같은 게 있을까?" 짙은 눈매의 그 여성은 요금 자판기로 나를 데려 가더니 싱글 패스 버튼을 가리킨다. 1일 패스란에 6달러라고 써있다. '아싸~'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신용카드를 찾고 있으니, 그녀는 자기 지갑에서 노란 토큰 하나를 꺼내 1일 패스를 뽑아 나에게 내민다. 아니... 그냥 정보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경우, 나도 내 동네에서 꼭 그렇게 하리라 다짐하며 감사를 표시하면 된다고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