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봄외할아버지의 찬란한 유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
정가람
화려한 꽃잎 대신 오래된 나무의 기억을 담으니 마음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나이 든 마음으로 다시 보는 풍경은 그저 오래된 풍경만이 아니다. 지나간 시절의 긴 이야기와 앞으로 만들어갈 더 긴 이야기가 보이고 들려오는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려보다 집으로 돌아온 세 아이들을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구나, 데일 것 같은 뜨거운 열정은 없지만 익숙한 편안함이 참 좋구나 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꽃잎이 져도 괜찮아나무가 나이가 들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꽃을, 봄을 피워냈다는 것이고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건 내가 낳아 키우는 아이들이 그만큼 자랐다는 것이다.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다섯이 되어 바라보는 봄은 젊은 날 나 혼자 보던 봄과는 당연히 다르다. 육아와 살림을 하느라 내려놓고 있었던 내 일과 꿈이 생각나면서 괜히 울적해지고 더 힘이 들었던 겨울 같은 날이 많았는데, 봄도 나이가 들고 있음을 깨닫고 나를 돌아보니 육아와 살림이라는 새로운 일을 쌓아 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아이들이 잠든 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 엉엉 울었던 힘든 날들을 버텨낸 덕분에 아이들이 자랐고, 나도 엄마로 자라나며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갈 꿈도 꾸게 되었다.
이웃 동네 30년 된 아파트의 아름드리 벚꽃나무에 감탄하다 우리 동네 4년 된 아파트의 키 작은 벚꽃나무를 보니 내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어린 벚꽃나무가 넓은 꽃그늘을 드리우게 되는 날, 그 아래 나보다 더 커진 젊은 아이들이 할머니가 된 내 손을 잡고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날에 되돌아보는 오늘이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평온하고도 부지런히 봄의 한가운데로 걸어가 본다. 일찍 온 봄이 더 일찍 가버리기 전에, 내 손짓 하나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세 아이들이 훌쩍 자라 내 품을 떠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