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거리의 삶에서 홈리스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과 매순간 대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김종훈
A씨는 고아로 힘든 유년기를 보내고 남대문 근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식당에 야채를 납품하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 둘을 낳았다. 남편도 고아로 힘든 삶을 살아왔기에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했고 비록 반지하 월세방으로 시작했지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지 않게 해주겠다며, 매일 새벽 야채와 과일을 떼어 와 시장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워낙 부지런했던 부부는 잠도 줄여가며 매일 20시간씩 일을 했고, 노점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과일가게도 얻고 작지만 어엿한 자기집도 생겼다. 그 찰나같은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A씨는 말했다.
이들 부부에게 불행이 시작된 것은 가게가 있던 시장이 재개발로 헐리면서 부터다. 설상가상으로 그 시점에 남편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어렵게 일궈온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고액의 병원비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남편을 살려보려고 암에 좋다는 것은 비싸도 모두 사들였던 A씨는 평생을 모아 장만한 집을 팔고 전세에서 월세로, 결국은 병원 앞 여관에서 남편을 간호하며 살게 됐다. 일년 후 남편은 사망했고 남겨진 것은 시설에 맡겨진 어린 두 딸과 빚.
A씨는 모든 걸 잃고 살 길이 막막했지만 어린 두 딸을 데려오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노점을 시작했다. 그러나 노점 단속으로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고 돈을 내지 못하니 여관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노숙이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여러 번 자살 기도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이젠 성인이 되어 만나도 알아볼 수 없겠지만 두 딸을 생각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오랜 노숙 생활로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였다. 몇 번이나 길에서 쓰러졌지만 무료진료소 말고는 진료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나 죽을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돈이 없으니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골치만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는 A씨. 남편을 간병하며 병원비로 재산을 날린 터라 아파도 병원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A씨는 현재 어디가 아픈 건지, 거리에서 생활하다 어떤 위협에 노출되어 사고로 죽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하지만 그저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서울시 홈리스들, 매년 10분의 1 사망... 왜?
이렇듯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의 심각한 건강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망률이다. 2009년 사망통계를 보면 모두 357명의 홈리스들이 사망했다. 파악된 서울시 홈리스 수가 3000명 정도이니 매년 10분의 1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노숙인 건강분석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남자 홈리스들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결과 손상·중독·외인성 질환이 23.34%로 가장 많았다. 비노숙인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사망원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홈리스들 10명 중 1명이 노숙 생활을 시작한 지 5~6년 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숙을 하면 다쳐서 죽는 사례가 그만큼 빈번하다는 것이다.
홈리스는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고단한 거리의 삶에서 홈리스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과 매순간 대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홈리스에게 죽음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일상과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홈리스 같은 늘 긴급상황에 처해있는 경우라면 일상적인 케어와 의료서비스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2012년 6월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홈리스 의료급여가 신설되어 조건에 충족되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긴급상황에 처해있는 홈리스들 모두가 '노숙인 의료급여 1종'으로 등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자활시설에서 3개월 이상의 노숙 생활이 확인되어야 하며,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연체나 체납이 확인되어야 한다. 또 소득이 최저 생계비 기준 이하인 사람이어야 하는 등 신청절차와 구비서류가 매우 까다롭다.
현재 서울시에 294명(2013년 2월 기준)만이 노숙인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서울지역 거리와 시설 홈리스의 6.5% 정도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시설을 이용하지 않거나 노숙인 자활근로를 하고 있는 이, 시설 입소자가 아닌 쪽방 등에서 생활하는 주거취약계층은 노숙인 의료급여를 제도적으로 신청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결국 홈리스를 위한 의료급여가 만들어졌지만 여러 문제들로 인해 넓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 의료급여 제도 있지만, 사각지대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