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유신의 추억'... 하지만 후배들이 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여정남 문화제' 경북대에서 열려...

등록 2014.04.13 14:19수정 2014.04.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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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4.9 통일열사 여정남정신계승문화제'를 관람하게 되었다는 강윤희(42)씨와 딸 조희주(8)양. 희주양에게 '오늘 공연 보니 어때요?'라고 물으니 "슬펐어요"라고 대답했다. ⓒ 구민수


'죄송합니다! 선배님.'

평소엔 그를 잊고 지낸다. 강의실을 가기 위해 매일 지나치는 곳. 그곳에 그를 위한 작은 공원이 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때가 태반이다. 매년 이맘 때가 되어야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4월에 피는 꽃' 여정남(경북대 정치외교학과 64학번).

지난 12일은 오후 3시부터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에 자리잡은 여정남공원에서 '4.9 통일열사 여정남정신계승문화제'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날씨가 말썽이다. 대구엔 새벽 내 비가 내렸다. 비로 젖은 교정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이가 있다.

여정남 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오택진(전자공학부 91학번)씨다. 그는 매년 행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4·9 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는 9일, 오전 11시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현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문화제는 많은 사람의 참석과 후배들을 위해 주말 경북대 교정에서 한다.

다행히 서서히 날씨가 개었고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준비 중에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날씨가 제일 어려웠고 나머지는 후배들이 도와줘서 쉬웠어요"라고 말하곤 허허 웃는다. 그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일까.

"3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는 더디게 발전하는 것 같아요. 현재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때문에 시끄럽잖아요? 국가권력의 부당성은 한 개인과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오늘 학생들이 선배의 정신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이잖아요."

오후 3시가 되자 유족과 시민단체, 경북대 학생회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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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YMCA 사무총장 이상점(61)씨가 여정남공원건립비를 유심히 보고 있다. 여정남 선배와의 인연을 물으니 '민청학련 선배'라고 답했다. 건립비에는 "아! 여정남 열사와 그 동지들의 불꽃 같은 삶. 민주 민족통일을 위한 빛나는 투쟁은 청상에 길이 전해질 우리의 자랑이어라. 2010년 4월 9일 여정남 공원 건립위원회"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공원 건립위원의 이름이 적혀있다. ⓒ 구민수


1975년 4월 9일, 인혁당 재건위(아래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 8명이 숨진 날이다. 벌써 39년이 지났다. 사형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만에 집행된 초유의 '사법 살인'이었다. 1974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은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1964년에 1차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10년 뒤 그들  중 일부가 인혁당을 재건한 뒤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하여 국가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씌운 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여정남 선배는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이의 연결고리로 설정되었다. 피고인 22명 가운데 도예종·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우홍선·송상진 7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민청학련 사건에서는 유일하게 여정남 선배만이 사형을 면치 못했다.

이후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 사건으로 규정했고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심을 통해 이미 형이 집행된 피고인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정남 선배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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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남기념사업회 회장 이현세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날 사회는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회장 지홍구(25) 씨가 맡았다. ⓒ 구민수


여정남기념사업회 이현세 회장(수학교육 68학번)은 인사말에서 "아침에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정남 형님께서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문화제를 지내며 한 번도 날씨가 궂은 적이 없었거든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유신독재세력이 산업화 세력으로 미화되고 있는 현실을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만, 반성과 사과가 먼저입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과거 선배를 추모하는 행사 중에 학생들이 주관하는 행사는 거의 없습니다. 다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주관하죠.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여러분, 1등만을 위한 경쟁, 취업과 스펙, 나를 더 비싸게 팔기 위한 이 세태… 선배로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정남 선배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봐 주세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그가 답을 해줄 것입니다."

곧이어 민중가수 박성운씨와 바람꽃의 문화공연으로 이어졌다. 바람꽃은 노래 시작 전 "4월이 되었지만, 아직 봄이 온 것 같지 않아요. 밀양, 삼성 반도체공장, 이곳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바람꽃'이 봄을 노래하러 왔습니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우리 삼촌 참 복 많은 분 같아요"

이어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헌화가 시작됐다. 저마다 국화 한 송이를 두고 그의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다. 유족대표 여상화(55)씨는 "슬픈 날이지만 우리 삼촌 참 복 많은 분 같아요. 이런 추모문화가 잘 없잖아요. 선배의 정신을 후배들이 기리는 모습이 아주 아름다워요"라고 말했다. 한편, 통합진보당 대구시장 송영우 예비후보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4월을 보내는 게 많이 아쉽습니다. 독재에 맞선 대선배들의 투쟁이 오늘날 젊은 청춘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후배들 보니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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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남 선배의 조카, 여상화씨(가운데 왼쪽)와 여정남 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오택진씨(오른쪽)가 정치외교학과 신입생들과 담소를 놔두고 있다. 여상화씨는 오늘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했다. ⓒ 구민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10학번 정일우(24) 학생은 자기를 새누리당 당원이라고 밝혔다. "당파성을 떠나서 여정남 선배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여정남 선배처럼 자기 소신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배님을 목숨까지 내놓으셨지만, 저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며 그의 꿈은 정치인이라고 밝혔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신입생인 14학번 이경준(20) 학생은 여정남 선배에 대해 "학교 입학하고 선배들이 많이 알려줘서 알게 됐다"며 "인혁당사건에 관해 교과서에서 많이 봤지만 그다지 와 닿지 않았어요. 민주주의? 큰 관심이 없었고요. 하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깊게 생각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정치외교학과에 들어온 이유를 물었다.

"뉴스 보는 걸 좋아해요. 꿈이 정치부 기잔데, 지식이 없으면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 해서 정치외교학과로 왔어요. 오늘은 여정남 선배가 큰 가르침을 주신 것 같아요."

신입생 김유리(21) 학생도 비슷한 생각이다.

"정치외교학도로서 책임감을 느꼈어요. 앞으로 대외경제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그 책임감을 기억할 거예요. 또 말로만 그쳐선 안 되고 실천을 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선배는 어린 나이에 갖기 힘든 신념을 지니고 계셨잖아요. 저희는 표현의 자유가 더 보장되어도 그렇게 못하고 있어서 반성했어요."

학생들 대부분은 그동안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해서 뉴스나 책으로 어렴풋이 느껴왔지만, 오늘을 계기로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가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나와 가까운 학교 선배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했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했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면 늘 고민하는 문제다. 오늘 그가 대신 대답해주는 것 같다. 여정남 선배는 살아있는 정치학 교과서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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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재문, 이재형, 여정남 선배.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54학번인 이재문 선배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1981년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고 58학번인 이재형 선배는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8년 동안 복역했다. 2004년 12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4학번인 여정남 선배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5년 사형 당한 사법살인의 피해자다. ⓒ 구민수


인혁당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국정원(원장 남재준)이 인혁당 사건 생존자와 가족 등 약 80명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민사소송으로 받은 배상금이 '너무 많다'는 게 이유다. 국정원으로부터 날아온 소장을 본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39년이 지났지만 유신의 '추억'은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자세한 이야기는 박소희 기자의 '인혁당 사법살인 39주년 - 가해자에서 채권자로 돌변한 국가' 기획기사 참조 http://omn.kr/7qme
#인혁당 #유신 #여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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