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회장님, 야구 좀 편하게 보게 해주세요

[주장] 내가 10구단 'KT 위즈'를 응원할 수 없는 까닭

등록 2014.04.14 17:20수정 2014.04.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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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게 반했어 강민호!"
"상수야~ 안타를 날려주세요~ 상수야~ 신나게 달려주세요!"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박정권! 와이번스 해결사 천하무적 박정권!"

TV에서 신 나는 응원가가 흘러나온다. 덩달아 신 나 나도 응원가를 흥얼거린다. TV 중계로 프로야구를 '본방사수' 하지만 분위기가 영 살지 않는다. 당장 야구장으로 달려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 드디어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자칭 '10년 묵은 야구팬'인 나는 응원하는 선수의 팬카페에 가입해 '단관(단체관람)'이란 것도 해봤으며, 연고지 대구는 물론 부산 사직야구장, 잠실 종합경기장까지 '진출'한 적도 있었다. 나의 야구사랑은 '나라사랑'에 맞먹는 수준이다. 때문에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도 구입해 야구장에 갈 때마다 입고 다닌다. 팬카페에서 주문제작한 응원수건도 있다. 심지어는 직접 플래카드도 만들어봤고 간식, 편지 등으로 선수에게 '조공'까지 해본 이력도 있다.

빅, 또리 KT위즈의 공식 마스코트 빅과 또리.
빅, 또리KT위즈의 공식 마스코트 빅과 또리.KT위즈

9개 구단은 올해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다짐했다. 2011년부터 3회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가 올해도 과연 우승할 수 있을지, 1992년 이후 우승에 목마른 롯데 자이언츠가 '반란'을 일으킬지, 아니면 KBO의 막둥이 NC 다이노스가 '이변'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올해 그리고 내년까지 나를 비롯한 야구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한 가지가 또 있다. NC 다이노스를 이은 새로운 막둥이 구단 'KT 위즈'. 지난해 창단한 KT 위즈는 2007년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수원에 자리 잡았다(현대 유니콘스는 1996년~1999년까지는 인천에 연고지를 둠).

'위즈'라는 이름에서 어렴풋이 알 수 있듯 이 팀의 마스코트는 마법사다. 북슬북슬한 털옷을 입은 마법사 빅(vic)과 또리(ddory). 합쳐서는 빅또리라고 부른다. '승리'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마스코트다. 올해 2군 퓨처스리그에 참가한 KT 위즈는 내년부터 1군 무대에 합류하게 된다.

KT의 정리해고 소식... 프로야구 팬은 난감합니다


그런데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KT 위즈를 마음 편히 응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기업 KT의 '정리해고, 명예퇴직'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사상 첫 영업이익 적자, 대규모 고객개인정보 유출이 회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KT 사측이 노동자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다. 특히 이번 정리해고는 다른 사기업의 노조탄압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우려된다.

KT는 지난해 매출 23조8106억 원, 영업이익 8393억 원, 당기순손실 603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2012년)에 비해 영업이익은 30.6%p 줄고 당기순이익은 적자 전환해 창사 이래 최초의 영업적자로 기록됐다. 게다가 황창규 회장이 지난 1월 취임한 직후 자회사 KT ENS가 대출사기에 연루된 데 이어 고객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되고 불법 보조금에 따른 사업정지가 내려지면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KT의 새 주인이 된 황창규 회장은 지난 1월 27일 취임사에서 "경영진 모두가 책임을 통감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선결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현재의 위기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고 지원부서를 축소해 임원 수도 대폭 줄이고, 각 부서장에게는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되 행사한 권한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칼바람을 예고했다. 실제로 황창규 회장은 취임 직후 대규모 조직 개편을 통해, 130명에 이르던 임원 숫자를 90명 수준으로 줄였다.

황창규 회장이 취임한 지 채 두 달도 안 된 3월 초, KT 노사는 직원 명예퇴직을 누고 논의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 8일 KT는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천 명 자른 회사 야구팀을 어떻게 응원할 수 있을까

 2011년 7월 9일 오후 희망버스에 참가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2011년 7월 9일 오후 희망버스에 참가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또한 사측은 노조와 합의해 5월부터 현장 영업, 개통, A/S 및 플라자 업무(지사 영업창구 업무)를 KT M&S, KTIS, KTCS 및 ITS 7개 법인 등의 계열사에 위탁하기로 했다. '강제전출'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5년 1월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 폐지하겠다며 복지 축소도 결정했다.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등 국내 크고 작은 기업들이 적자 등 회사가 떠안은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로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평생 몸 바쳐 일한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라는 말은 마치 지옥 낭떠러지로 등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희망퇴직'라는 말은 언뜻 듣기엔 좋아 보여도 "좋은 말로 할 때 제 발로 걸어나가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모기업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잘려나갈 판국인데 회사의 또 다른 이익창출을 위해 창단된 야구단을 어찌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겠나. KT 위즈가 야구판에 몰고 올 돌풍이 기대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애꿎은 돌멩이에 맞아 죽어가는 KT 노동자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고는 살인이다.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KT가 '살인집단'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지금의 이 칼부림을 당장 그쳐야 한다.

야구팬의 한 사람이 간곡히 부탁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KT 위즈를 응원할 수 있길, 그것을 위해 KT가 앞장서서 '인간적인 공기업'의 바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KT위즈 #황창규 #문상철 #박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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