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백기완 선생의 시 ‘묏 비나리’에서 차용해 쓰여진 임을 위한 행진곡 초고로 얼려진 그림이다.
정덕수
선생의 모습은 80년대 민중의 역사와 함께였다. 정치인으로 도드라진 활동을 하시지도 않았으면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올곧은 소리로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모습 그대로 이 시 '묏 비나리'는 '선생께서 선동을 목적에 두었을 이유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날 것을, 그리고 맨 처음 한 발을 띨 때 무게의 중심을 바로 잡으라는 요구가 처연함은 부인 할 수 없다. 먼저 백기완 선생께서 지으셨던 묏 비나리를 보자.
묏 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맨 첫발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없는 춤꾼이라고 해도중심이 안 잡히나니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젊은 춤꾼이여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맴돌라함이 아닐세 그려하늘과 땅을 맷돌처럼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한사위로 제끼고돌고 돌다 죽엄의 살이 맺혀오면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꽃상여가 어디 있고마주재비도 못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질지니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소리도자네를 떠난다네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쩡, 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그 소리는 천상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주인놈의 모진 매질소리라천추에 맺힌 원한이여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그렇지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벗이여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이슬처럼 맺히고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세월은 흘러가도구비치는 강물은 안다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일어나라 일어나라소리치는 피맺힌 함성앞서서 나가니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다시 폭풍은 몰아쳐오라를 뿌리치면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그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 줄 아나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매와 같은 춤꾼이여이때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자네의 맨 밑두리엔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어느덧 민중의 넋이유격병처럼 파고들어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춤꾼은 원래가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그렇지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벗이여저 비록 이름 없는 병사들이지만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거대한 도리깨처럼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승리의 세계지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승리의 절정 맘판과의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 벅,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언 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대지의 새싹 나네처럼젊은 춤꾼이여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우리의 현대사가 진정한 애국자들에 의해 완성되어지지 못했기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과거사문제가 거론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시 좌우로 나뉜 상황에서 생존력 자체에 목적이 더 컸던 세력들에 의해 장악된 역사 탓이 크다.
공산주의를 우러러 본 적 없고, 공산주의자를 두둔한 적도 없지만 정권에 대해 반대의사만 표시해도 종북으로 몰리고, 빨갱이로 몰리는 암울한 역사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지 않은가.
의문을 아예 마음에 담지 말라는 정부와 정권에 기댄 자들의 요구가 만들어놓은 실로 어이없는 편가르기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이 나왔고 다시 이곳 강원도에서는 '잃어버린 4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실정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잃어버리면 어떤 역사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하는 후안무치 아니고 무엇인가.
여전히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는 이 현실에 보내는 질타가 추상(秋霜)같다. 들풀같은 민중에게 보내는 된서리 아닌, 때를 잊고 설치는 무뢰배들에 대해 보내는 질타다. 그러하기에 지금 5·18기념식에서 불려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요구를 국가보훈처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역사 앞에 설 수 있다면 반대할 까닭이 없다. 간담이 서늘하기 때문에 막는 것이고, 모골이 송연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뱉으면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쓴다고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생명을 가져야 말이 되고 글이 된다. 빨갱이를 종북으로 대치시키고, 서북청년단을 어버이연합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 여전히 권력의 입맛에 맞춰 세상을 멋대로 주무르려는 행동이 말려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로부터 시도된다.
백기완 선생께서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시고 강연을 위해 대구로 이동하시던 중 쓰셔서 <한겨레>에 보내셨다는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를 소개한다.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 백기완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부드러운네 몸사위를 볼 적마다춤꾼은 원래 자기 장단을타고난다는 말이퍼뜩퍼뜩 들곤 했었는데으뜸을 잃어버리고도웃는 너는 썼구나예술은 등급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구……오늘의 이 썩어문드러진 문명을강타해버린 너 연아야……얼음보다 더 미끄러운 이 현실에서마냥 으뜸 겨루기에 내몰리는 우리들은이제야 너의 그 미학에서한바탕 커단 울음을 배우는구나절박함이 시를 낳고, 안타까움과 연민이 시를 낳는다. 선생께서 지으셨던 시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가 그러하듯, '묏 비나리' 또한 민중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시를 탄생하게 했다.
묏 비나리는 '산신제(山神祭)'를 이르는 고유의 우리말이다. 간절하게 산에 기원을 올리던 염원 그대로 오늘도다시 맞이하는 5월의 함성이 울릴 무등 자락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당하게 불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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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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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에서 불리워야 할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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