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취소... 아이들아 미안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제주도 수학여행 바람직하지 않아

등록 2014.04.19 11:18수정 2014.04.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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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해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한다. 같은 무게의 고통을 느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숨 죽여 생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계획했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취소하기를 바랐던 까닭도 마찬가지다. 아파하는 이들이 있는데 차마 내 자식들에게 남의 일이니 상관없다고 가르칠 수는 없어서다. 어찌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이 원하는,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보내주고 싶지 않겠는가. 꿈을 키워주고 보다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해 완곡하게 "다음 기회로 미루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물론 아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여 내 손으로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요구한 자필 기록과 서명을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학교에서는 아니더라도 관할 교육청이나 도교육청은 방침이 별도로 정해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고,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을 한 시간에도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출발하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지독한 감기몸살을 앓으면서 썼던 글을 올렸다. 교육청의 누군가 보고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평소라면 저장된 상태를 확인한 수나 나올 시간에 23번 조회가 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수학여행도 학사일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학교장 재량권'이 보장되어 있으나 학교에서 학사일정을 구성할 때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전체적인 일정을 조율한다. 이곳과 같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한 두 명의 불참자만 있어도 시행이 어렵다. 지난 해 백두산 수학여행 안건도 그런 이유로 부결시켰다.

사실 백두산 수학여행을 부결시키게 된 부분은 경비에도 문제가 있었다. 교육재정으로 일정 부분 부담을 해준다지만 산촌의 살림에서 몇 십만 원의 목돈을 선뜻 낼 수 있는 부모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부모도 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자녀만 학교에 보내는 부모라면 부담이 덜한데 두 명이나 세 명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는 입장이 정말 난처하다. 모든 가정의 형편을 이해하는 입장에 있었고, 학교 운영위원장이란 권한을 지니고 있을 때라 이번과는 다르게 적극 개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 전화기를 확인했다. 문자 메시지가 몇 개 들어와 있었다. 17일 하루만 선거운동을 멈춘다고 했던 이들의 문자 메시지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양군은 동해안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강원도지사나 교육감도 아닌, 춘천시장 후보와 춘천시의원 후보자가 보내는 문자메시지가 왜 이곳 양양군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도 오느냐는 거다.


수학여행 취소 알림 제주도로 잡혔던 수학여행을 전면 취소하겠다는 문자메시지. 교과부와 도교육청에서 공문으로 시달되어 알린다고 한다.
수학여행 취소 알림제주도로 잡혔던 수학여행을 전면 취소하겠다는 문자메시지. 교과부와 도교육청에서 공문으로 시달되어 알린다고 한다.정덕수

그 중 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알려드립니다. 제주도 현장학습이 취소되었습니다. 교과부 도교육청으로부터 각종체험학습 모두 취소하라는 공문이 시달되었습니다. 양해바라며 단원고 학생과 희생자 모두에게 애도의 마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도교육청에서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각종체험학습'이라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장거리 수학여행이라면 모르되, 모든 체험학습이 취소되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수학여행을 취소하든, 말 그대로 각종체험학습을 전면 취소하든 공문을 금요일 저녁 7시에야 보냈다는 건 이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청으로부터 행정실장에게 직접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겠다. 그런 경우라면 '공문시달'이 아니라 '협조요청'이나 '지침하달'이 맞다.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는 않겠다.

동의나물 아이들이 올망졸망 봄볕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지는 설악산의 동의나물 군락이다.
동의나물아이들이 올망졸망 봄볕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지는 설악산의 동의나물 군락이다.정덕수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6학년인 딸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다. 이번에 취소된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을에 간다면 원래 계획되었던 가을 일정인 백두산 수학여행은 갈 수 없으니, 이것저것 두루 살펴 남의 이목을 집중시킬 행동 하지 않으려는 아빠를 둔 탓이니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나 백두산만 아이들 꿈을 키워주는 체험학습장은 아니다. 이곳 설악산의 모든 조건이 어디 뒤질 이유 있다던가. 날 좋은 하루 곰배령을 다녀와도 되고, 등선대나 대청봉을 다녀와도 충분하다.

아이들의 부푼 꿈을 접게 만들어 미안하다. 하지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잠시 내 즐거움을 뒤로 미룰 줄 아는 미덕을 이번에 배웠기를 바란다. 진도 해역의 세월호 침몰사고로 비통에 잠긴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안부를 전한다. 아직도 소식을 알 길 없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또 다른 가족들 모두 살아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 동시 기재됩니다.
#수학여행 #세월호 침몰사고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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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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