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쓰여진 서예 작품, 나름 운치있어요

'청주서예가의 길' 만든 그, 자랑하고 싶은 그 사람

등록 2014.04.28 18:52수정 2014.04.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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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서 계속 비가 온다. 비가 오는 주말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중략 - 대학교 담 옆으로 크게 서 있는 참나무에서 꽃 부스러기가 옹벽에 떨어져 비에 의해 담이 염색되어 버렸습니다. 세척제를 뿌리고 닦아 보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비가 올때마다 깔끔하게 페인트 칠한 담에 꽃빛깔이 염색이 될터인데 걱정이 태산입니다만 가을에 보수하기로 하고 계속 작업을 해나가겠습니다.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나는 오늘 오전 강의를 마치고 일부러 그 옹벽이 있는 도로를 딸과 함께 지나와 보았다. 간간이 자주색 꽃 빛깔의 줄이 세로로 흘렀지만, 작품 전체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운치도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화선지의 원본을 수십 배로 확대해서 돌벽에 글자를 만들어 간 그가 고맙고 대견하기 그지 없었다.

 충북대 옹벽의 청주 서예가의 길 중에서 근원 이영미씨 작품.
충북대 옹벽의 청주 서예가의 길 중에서 근원 이영미씨 작품.이영미

직접 한 자 한 자 벽에 작가들의 글자를 만들어 간 그는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다. 돈을 받고 작품을 받아간 사람들이 주물을 하거나 또는 나무나 돌에 새겨도 결과만 공유할 뿐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경향이 많은데, 과정을 상세하고 공유하고 양해도 얻는 그의 낮은 자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그 사람을 19년 전인 36세 때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사람과 대면하여 나란히 상에 앉아 보기는 6개월 전이 처음이다. 그러니 그를 19여 년 전에 알았지만, 그 사람을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 셈이다. 작품으로 작가 활동이야 부지런하게 하지만, 몸을 세상에 자주 드러내지 않는 내 탓일 수도 있다. 또, 전통과 유학에 깊이 파묻힌 그의 고지식한 탓일 수도 있다.

생애 단 한 번 만난 그 사람이지만, 작년 송년에 내게 작품을 청해왔다. 그 대신 작품료는 한 푼도 못 드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동봉한 편지의 진정성과 순수한 예술혼에 나는 감탄하여 작품을 보내주었다.


그가 편지에 보낸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 충북대 수백 미터의 옹벽을 지역의 작가들의 글자로 채워서 '청주서예가의 길'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담벼락에 다양한 컬러아트적인 그림을 그려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있는 수암골이란 동네도 있고, 전국 곳곳에도 그러한 그림들 또는 칼라타일이 있는 담이 많다. 하지만 서예로만 수백 미터 담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들을 정부 지원이나 민간단체 지원 없이 해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음 알았을 때는 서울에서 개최된 규모의 공모전에서 바로 나와 함께 나란히 대상 후보에 올랐다가 그가 나와 아슬아슬한 점수 차이로 차석에 머물렀고, 나는  그 글씨의 강건함과 나와 동갑이라서 무척 인상이 깊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고 활동하는 터전도 달라서 잊고 있었다. 그러나 오 년 또는 십 년 단위로 간간이 지역에서 그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먼 발치나마 때떄로 박수를 쳤다. 그러다가 작년에 연합초대전에 우연히 만나 처음으로 악수도 하고 같이 잔도 나누며 나는 그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몇 년 전에 생애 첫 개인전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했다. 요즘 전시장을 가보면 아주 작은 전시회라도 지인의 축하화환 속에 파묻히는 전시인데 그는 지인들에게 축하의 뜻으로 꽃다발과 화화을 보내지 말고 쌀을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전시회를 통해 작품도 판매하여 모은 쌀 1400kg를 그는 지역의 동사무소에 전달해서 가난한 독거노인에게 전달하였다는 소식을 훗날에 알게 되어 무척 감명 깊었다.

그는 자기가 소장한 작품 중에서 이전에 아마추어 습작기 또는 프로였더라도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들, 또는 창고에 파묻혀 있던 작품 수백 점을 불태운 적도 있었다. 사후에 자기 작품에 단돈 몇 천 원 몇 만 원데 떠돌아다니기 보다는 자기 손으로 거두는게 마땅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말이다.

십 년 전 또는 이 십 년전에 쓴 나의 글씨를 보면 나는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때는 더 많이 부족함이 드러나서 많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처럼 내 지난날의 습작품들을 감히 불태우지 못한다.

소심해서인지 잔정이 많아서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두고 두고 거울로 삼아 정진하고자 함인지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본적도 없고 그냥 가만히 둘 뿐이다. 단지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내 손으로 모두 정리해 놓고는 가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만 또는 거주지를 옮겨서 무언가 정리를 해야 하는 계기가 생긴다면... 하고 미룰 뿐이다.

너도 나도 문화관광부의 공공아트 재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요즘에 그는 농약은커녕 거름도 안쓰는 유기농 중에서도 유기농 농법과 같은 '청주 서예가의 길'을 기획했다. 지역의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무보수로 받아서 본인과 본인의 아내와 대학서예과를 전공한 자녀들의 정성만으로 우직하게 서예가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싶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작가의 글을 담벼락에 만들어가려면 하루 종일, 또는 이틀이 걸린다. 그렇게 만들기까지 수백 미터의 담벼락에 페인트 칠을 하고 그 옹벽을 사용하기 위해 문턱놓은 국립대학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또 얼마나 발품을 팔고 마음품도 애달프게 팔았을까?

'연재 장학진'

나는 생애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그 사람을 널리 널리 자랑하고 싶다. 물질 만능과 빠름의 세상에서 이렇게 느린 호흡으로 진솔한 땀을 흘리면서 지역을 위해서 그리고 주변과 더불어 가난하지만 나누어도 줄지 않는 부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세상과 넓게 공유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청주서예가의 길 #근원 이영미 #서예가 이영미 #호연재 장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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