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케이몬슈리성을 나서는 마지막 성문으로 주로 여인들이 사용하던 성문이다.
노시경
큐케이몬 성벽 아래의 작고 아기자기한 수로에는 남국의 맑은 샘물이 졸졸졸 흘러나오고 있다. 이 순가히쟈(寒水川樋川, すんが-ひ-じゃ-) 바로 옆 즈이센몬(瑞泉門)의 류히(龍樋)와 함께 슈리성 내의 또 하나의 수원으로서, 생활용수 외에도 슈리성 안에 화재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불을 끄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넘치는 물은 큐케이몬 바깥쪽 땅 속 좌우 배수관을 통해 슈리성 북쪽 아래의 엔칸치(円鑑池) 쪽으로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엔칸치라는 연못에 물이 가득 차면 이 물은 그 아래에 있는 류우탄(龍潭, りゅうたん) 연못에 자연스레 흘러들었다. 왕궁 건물도 위압적이지 않고, 왕궁을 지으면서도 물길을 자연 그대로 살려 놓았으니 참으로 자연친화적인 왕궁이다.
높다란 성벽을 따라 큐케이몬을 나섬으로써 우리는 류큐의 왕이 살던 슈리성의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산책로는 성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었고 산책로를 따라 우리는 성의 북쪽으로 쭉 내려왔다. 류큐 왕국의 왕릉인 타마우돈(玉陵), 그리고 넓은 슈리성 구역을 모두 도는 답사 때문에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꽤 다리가 아파 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살짝 본 후 수목이 우거진 숲이 참 아름답다며 앞서서 발길을 이어갔다. 내가 가는 이 산책로의 끝에 작은 연못으로 둘러싸인 절경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류큐 왕국과 조선 왕국의 훌륭한 문화 교류의 역사도 남아 있다.
엔칸치를 찾아가다보니 큐케이몬 맞은편에 눈을 다시 돌려서 보지 않을 수 없는 거대 나무가 우뚝 서 있다. 아카키(赤木)라는 이 큰 나무는 전쟁 전에는 직경이 1m나 되는 몸통에 잎이 풍성한 나무였었다. 그러나 아카키는 오키나와 전투 중에 폭탄의 피해를 입어 잔가지들만 남게 되었고, 태평양에서 올라온 태풍에 말 그대로 몸통만 남아 있었다.
나무로 기능을 못하게 된 큰 나무 몸통에 뽕나무과의 식물이 기생하게 되면서 지금의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열대 나무의 거대한 크기도 놀랍지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들의 끈질긴 생명력도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