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영어 헛고생> 책 표지
김무엽
대한민국의 교육은 두 가지 과목으로 나뉠 수 있다. 영어와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 대한민국에서 영어교육이란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영어교육이 시작된다. 말문이 트이기 전부터 영어와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고, 아이가 말문이 트이면 조기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영어교육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어유치원이라는 유치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영어유치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성황이다.
영어유치원의 다음 단계는 해외캠프나 조기유학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부모는 국제중이나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영어 전문 학원에 아이를 들이민다.
영어교육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토익, 토플, 텝스 등 각종 영어 인증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학원을 들락거린다. 영어 인증 시험에서 일정량의 점수를 받지 못하면 취업조차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영어는 인생의 전반을 옭아매는 족쇄이자 굴레다.
대한민국의 영어에 대한 강박은 기실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저 남들이 한다고 하니까, 내 아이는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는 심정에 무작정 시키고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한민국 사회에 떠돌고 있는 영어교육에 대한 여러 풍문을 모아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책이 세상에 나왔다. 바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제작한 <아깝다! 영어 헛고생>이란 책이다.
영어 조기교육에 관하여 <아깝다! 영어 헛고생>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질문 열두 가지와 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돼 있다. 열두 가지 질문 중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어 조기교육에 관련된 것이다. 예컨대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게 대세이지 않느냐, 우리말 배우듯 유아 시기에 하루 30분 정도 영어는 필수라고 하던데 맞느냐 등의 질문이다.
책에서 일관되게 이야기 하고 있는 바는 영어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조기교육으로 아이가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이며, 영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습득한 영어를 다 잊어 버리고 모국어로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지적한다.
"뇌 발달 단계를 무시한 영어 교육은 과잉학습장애를 비롯한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과잉학습장애란 스트레스증후군, 소아정신장애 질환, 주의력결핍장애 등을 말합니다. 요즘은 초등학생의 10~20% 정도가 과잉 행동을 하는 ADHD 증상을 보일 정도이며 소아자폐증 역시 크게 늘었습니다. 영유아 시기에는 그 시기에 적합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억지로 지식을 주입한 결과 뇌에 나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 (57쪽) 더불어 영어 조기교육의 장밋빛 환상에 가려진 폐해를 설명한다. 영어 조기교육을 통한 이중 언어의 사용은 아이의 모국어 발달을 저해하고, 아이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해 뇌 발달을 막는다는 것이다. 언어를 관장하는 뇌인 측두엽은 만 6세부터 집중적으로 발달하는데, 영유아 때부터 언어를 교육한다는 것은 이도 없이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 것과 같다.
조기보다 적기, 발음보다 어휘조기 교육 또는 선행 학습이란 신화는 '남들보다 빨리 배우면 더 나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지식이나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 분명히 '개인차'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언어 능력이 발달해 언어 습득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논리적 사고가 발달해 수학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도 있다.
이런 개인차를 무시하고, 남들보다 빨리 배우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조기 교육이나 선행 학습을 아이에게 시키다 보면 반드시 앞서 언급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기'가 아니라 아이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적기'를 찾는 것이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을 때 아이는 가장 효율적으로 영어를 습득할 수 있고,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스트레스도 적게 받을 것이다.
또 대한민국 부모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영어 발음이 좋다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부모는 영어 발음에 최적화 시킨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혀를 수술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발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상황에 알맞은 표현을 하고, 수준 높은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다.
상황에 알맞은 표현과 수준 높은 어휘를 구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국어 실력이다.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한다는 것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받아들이고, 한국어를 다시 영어로 재번역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모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면 그 번역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고, 구사하는 영어의 수준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낱 발음보다 중요한 것이 수준 높은 어휘이고, 고급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영어 헛고생 하지 말자아무리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강제적으로 배운 것일 뿐이다. 영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영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어떠한 수단도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보다 좋은 효율을 내지 못한다. 아무리 영어 교육에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그것은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란 핑계로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아서 영어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은 도리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영어 헛고생을 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깝다! 영어 헛고생>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지음,
우리학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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