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를 '괴물'로 만드는 진짜 괴물, 여기 있다

[너희가 중2를 아느냐 ⑪] 평범한 중2를 괴물로 만드는 세상... 분노한다

등록 2014.05.12 13:39수정 2014.05.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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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27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처참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 된 듯합니다. 침묵에 빠져 우울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저런 행사에서는 박수도 치지 않는다지요.

얼마 전, 아이들과 글쓰기 활동을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충격에 빠져 있을 단원고 재학생들과 학부모, 이미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위한 편지쓰기였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간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선뜻 볼펜을 굴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책상에 엎드린 채 굵은 눈물만 흘렸습니다. 볼펜을 쥐고, 멍한 표정으로 교실 천장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평소 왁자지껄했던 교실에 연필 서걱이는 소리만 울려 퍼졌습니다.

글 한 편 한 편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많은 아이가 세월호 사건이 남긴 충격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느꼈을 절망과 공포를 애써 잊으려고 일상에 빠져 무심하게 지낸 자신들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은 그 범위가 넓었습니다. 철없는 10대 중반의 아이들이 썼다고는 보기 어려운 깊이 있는 의젓함이 묻어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세월호 사건을 만들어낸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전 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정치가 좋게 되지 않고 있다는 것만 압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선장의 어이없는 방송 내용과 1호 생존자로 나온 승무원들도 문제였지만, 나라의 태도가 더 탑승자들을 죽이는 것 같았습니다." - 2학년 최형은(가명)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2학년 어느 교실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을 외치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어른들에 대한 조롱이었겠지요. 그때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연합니다. 형은이가 한 말은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겠지요.


한심한 '나라의 태도'를 꼬집긴 했으나, 그렇다고 형은이가 세상 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냉소주의자도 아닙니다.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아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형은이는 조금만 재미 있는 이야기에도 헤벌쭉 잘 웃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사람들은 세월호 선장을 욕합니다. 구조자가 더 많을 수 있었는데, 선장 때문에 많지 않게 됐다고요. 그렇지만 선장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겠죠. 혼자 먼저 탈출한 것도 정말 무서워서 그런 것이겠죠. 선장이 고의적으로 꾸민 일이 아니니까 하늘에 가서도 원망을 하지 마세요. 사람을 원망하는 데 쓰는 시간이 아깝잖아요.


저도 남들을 따라 욕을 하려고 했는데, 기사랑 뉴스를 보니까 선장도 살리고 싶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을 수도 있고, 위기 순간에 남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선장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니 선장은 처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히 교도소에서 보낼 수도 있겠네요. 정말 모두 안타깝네요." - 2학년 김경식(가명)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천만 번 잘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죽을 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며 목울대를 울립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니다. 그의 죽음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요. 희생자 가족들은 또 어떨까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선장을 원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경식이가 어른처럼 다가왔습니다. 공공연히 사형을 이야기하면서 벌건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부 철없는 어른들 때문에 말이지요.

제게 속 깊은 어른처럼 다가온 경식이는 키도 웬만한 어른 키만 합니다. 수업 시간에 차분한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듣는 녀석을 보면 정말 속 깊고 의젓한 대학생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식이의 어른스러운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경식이는 우리 학교에서 이른바 '일진'으로 대접받는 아이입니다. 싸움 잘 하는 평범한(?) 일진이 아닙니다. 힘이 유난히 세고 운동을 잘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일종의 '명예 일진'으로 봐야 할까요.

그런 명예 일진답게 경식이는 장난을 잘합니다. 매점에 갔다가 교실에 늦게 들어와서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수업 시간에 몰래 종이 쪽지를 던지며 노는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입니다. 덩치만 큰 철부지일 뿐입니다. 경식이의 속 깊은 글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겠지요.

세월호 사건 이후 대다수 학교 행사는 '올 스톱'됐습니다.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등 야외활동은 취소되거나 2학기로 미뤄졌습니다. 아이들은 이게 뭐냐며 앞다퉈 볼멘소리를 내놨습니다. 솔직히 세월호 사건과 학교 체육대회가 무슨 상관이 있냐면서요.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혀를 찼습니다. 세상이 이런데 무슨 철없는 짓들이냐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마냥 철이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소풍과 체육대회 취소 소식에 시무룩해하고 화를 내던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가슴속 한켠에는 끝 모를 슬픔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교내가 얼마나 한산할지 상상이 가네요. 복도엔 아무도 없구요. 교실엔 두세 명밖에 없네요. 수업은 시작을 하지 않겠죠. 지각생은 한 명도 없는데 결석자는 수백 명이네요. 선생님은 출석부를 찾지 않으시고요. 전 국민이 소리치며 기도하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대답이 없네요. 자책하지 마세요. 형님들(단원고 재학생들)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세요. 그저 친구들 대신 열심히 살아주세요." - 2학년 정연식(가명)

연식이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입니다. 그런 책읽기의 힘일까요. 연식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생각이 너무 깊은 나머지 졸음이나 잠에 빠질 때도 많지만 말입니다. 연식이는 졸면서도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질풍노도기를 사는 중2 특유의 모습을 연식이에게서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괴물'에 비유합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특별한 언행을 부풀린 말이겠지요.

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괴상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더군다나 괴물이라는 중2 대다수는 가만히 보면 평범하기만 합니다. 연식이처럼 말입니다. 그런 평범한 연식이가 이토록 생생한 공감력을 보여 주었다는 게 얼마나 기꺼운지 모릅니다. 글을 읽으면서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고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중2를 괴물이라는 말로 부르는 일이 얼마나 부당한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비유로라도 결코 괴물로 불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실상 진짜 무서운 괴물은 따로 있습니다. 고철덩어리 세월호를 바다에 띄우게 한 이 나라 대한민국과, 그 대한민국을 만든 어른들이 아닐는지요. 세상이야 어찌 되든 말든 자기 자식, 자기 학생 앞날만 걱정하는 부모와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나라에서 돌풍을 일으킨 게 3년 전입니다. 온 나라가 정의 열풍에 휩싸였지요. 이 책을 읽고 있는, 지하철 객차 안의 낯모르는 승객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들은 마치 정의 혁명의 전사와도 같았습니다. 제 눈에는 정의로운 세상이 곧 눈앞에 펼쳐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제가 바라는 정의와는 먼 곳으로 굴러갔습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 전후로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온 나라가 '불법·부정 선거' 시비로 얼룩졌습니다. 궁지에 몰린 집권당은 전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듯 불러내 모욕했습니다. 이 모든 게 권력을 잡은 그들의 정의이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의가 저에게 불의로 다가온 이유입니다. 불의함은 깨뜨려야 합니다. 정의로운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 속 글자와 입으로 말하는 정의는 그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정의는, 그것을 외치며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쟁취하는 열매입니다.

한 아이가 썼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셨으니, '다녀왔습니다'라는 말도 하셔야죠"라고요. 부모들은 이런 말을 들으며 자식 키우는 재미와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들에게서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는 그분들의 속이 어떻겠습니까.

'다녀왔습니다'라는 귀가 인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아이들이 어디를 오가더라도 불의의 사고나 사건을 걱정하지 않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10대 중반의 이른바 철없는 아이들조차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위한 행동은 누가 대신 해 주지 않습니다. 간절히 정의를 원하는 모든 이가 주체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중 2 #괴물 #세월호 사건 #공감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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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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