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산나물 자연 밥상 받으세요"

하인이 마련한 건강한 산나물과 밥상, 힐링됩니다

등록 2014.05.16 12:11수정 2014.05.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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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원 촌장 김규환이 백아산에서 도시인에게 가장 건강한 먹을거리를 마련하여 드리기 위해 제멋대로 써본 글입니다. 쌀, 보리 등 주식부터 콩, 고추뿐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원칙, 더하여 산나물이 여럿 나옵니다. 사투리도 자주 나오고 모르는 말도 더러 있습니다. 평소 농사지을 때 하인이라 생각했기에 감히 스스로 하인으로 했으니 자기비하라 여기지 마십시오. 찬찬히 읽으면 제 뜻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궁금한 점은 여쭤주세요.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 글쓴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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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취 곰취가 제철이다. 곰취와 곤달비는 쉽게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차이점은 아주 많다. ⓒ 김규환


나는 하인이다. 이월초하루 하드렛날 한 상 걸게 받아도 되는 하인이다. 호미 씻을 틈 없는 하인이다. 주인 맛난 것 드시도록 뼈 빠지게 일하는 하인이다. 주인 제철에 이 것 저 것 맛보시라고 궁리하는 하인이다. 주인 건강하시라고 농약, 비료 한 방울 안 치는 무능한 하인이다. 주인 행여 아플까 미리 먹어보는 기미상궁이다.

나는 하인이다. 그 좋다던 서울 마다하고 식솔 데리고 내려온 못난 하인이다. 하여 하인이 할 짓이란 농사 못 되게 하는 것, 농사 안 되게 하는 것, 여러 주인 모시지 않는 것, 못된 주인 말쌈 듣지 않는 것 더하여 하인은 제 멋대로 하여 하인이다.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하인 밑에 하인 없고 하인 위에 하인 없어. 허나 하인 그래 나 나에겐 언제나 주인이 있다. 주인이 두 눈 부릅뜨고 있어. 그래 하인은 도망질 못 하고 헛짓거리 못 하고 안 하지. 왜? 뒤질까봐.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그대로 가을엔 또 마련하네. 겨울엔 어떤가. 수월치 않아. 사람들아 하인은 이리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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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고로쇠된장 된장 항아리 안에 산죽만 들어간 게 아니다. 고로쇠물도 곁들여진다. 싱거우면서도 부패하지 않고 뒤끝이 깔끔하다. ⓒ 김규환


자 보시게나. 쌀, 현미, 찹쌀, 보리쌀, 산죽고로쇠된장, 간장, 청국장, 고추장, 고춧가루, 풋고추, 호박, 오이, 상추, 배추, 무시, 시금치, 봄동, 냉이, 달래, 고들빼기, 씀바귀, 부추, 참깨, 들깨, 파,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 토란, 피마자……. 참 힘겹구만요. 어르신 드실 것 다 챙길라믄 한도 없소. 묵은지도 있소.

근디 이 뿐이 아니오. 산에는 말이오 벼라별 잡것을 다 싱궈서 가꾼당께라우. 진짜 하인 놈이 하는 짓거리를 한 번 들어보실라요.


취나물 요것이 한두 가지가 아녀. 참취, 곰취, 곤달비, 수리취, 떡취, 분취, 분대, 각시취, 미역취, 며느리취, 개미취, 벌개미취, 서덜취, 쑥부쟁이, 단풍취, 바위취, 병풍취, 섬취…. 워매 숨 넘어가네. 국화는 전부 향을 취할만 허지. 긍께 취여. 취! 취나물이란 마시. 코스모스 꽃도 화전 부쳐 먹지 우리 하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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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무 김장 무와 배추 심으면 벌레가 다 갉아먹는다. 이슬 있는 이른 아침에 재를 뿌려주면 감쪽같이 되살아난다. ⓒ 김규환


두릅 종자도 여러 가지여. 그냥 촌놈들이 먹는 게 두릅이잖어. 그게 두릅이지. 참두릅. 뒤끝이 째까 혓바닥을 감아불제. 요샌 또 못된 하인들이 따기 심들다고 까시를 없애부렀당께. 요것이 맛은 매한가지나 따는 재미는 별로제.

인자 칼을 한나 챙겨야쓰겄구만. 땅 속에 말여 뽈그족족한 두릅이 들어있어부러. 맨손으론 못 캔단마시. 시방 나왔겄구만 짤라와.

참말로 나 심들어 디지겄네. 주인어른 째까만 쉬었다 갑시다. 물 한 모금 마셔야제라우. 엇따 시원허다. 달고 맛있소. 내가 이 맛에 사요.

까시가 따닥따닥 아니 잡귀도 사람도 못 잡게 겁나게 크고 억센 가시가 붙은 것 말이요. 엄나무 말이요. 참 요것 싹도 볼만허제. 시푸런듯허다가 희부대대 엄지손가락 모냥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하인은 까시를 두려워하지 않아 분께 낫 없어도 그냥 잡아채불제. 얼굴만 안 깎이면 되는 거 아녀? 톡! 인자 하인 손에 들어왔겄다. 이슬이 겁나게 묻어있는 쌉싸레한 싱그러움 느끼오. 왜 윗전들은 요 맛난 걸 개두릅이라혀. 좋게 엄두릅 음두릅이라 허제 참말로 웃겨부러.

근디 이 하인이 생각컨디 '개' 자 붙은 것 괜찮아요. 왜 그냐믄 식물에 개복숭아, 개살구, 개똥쑥, 개똥참외 따위에서 보듯 이 글자 들어가면 다 약이 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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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곧 보리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보리 구경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죠. 꽁보리밥에 물 말아서 풋고추 된장에 찍어먹으면 밥 두 그릇은 금방이죠. 미숫가루도 만들어요 ⓒ 김규환


명이나물을 누가 울릉도에서만 먹는다 헙디까. 산마늘은 본디 백두대간 골골마다 개천(開天)전부터 있어왔지. 웅녀가 먹었다는 마늘은 산마늘 잎이었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이 잎을 쌈 싸먹고 장아찌 맹글어 묵잖녀.

털 많은 어수리 쌈으로 곁들이면 달달하지. 얼룩 투성이 얼레지 따서 말렸다가 무치면 참말이지 쫄깃함이 그만이라. 원추리 꽃도 볼만허지만 된장국 끓여봐. 보드랍게 넘어가지. 고사리 고비를 제삿날만 먹던가요.

참나물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 하인 아닌 사람도 대개 알고 있더만. 시장에 나온 연두빛 참나물을 우린 반디라고 하고 이걸 몇 잎 씹으면 그냥 정신이 팔딱 깰 지경으로 향이 좋다하여 파드득나물이라고 하요. 가짜 이름이 이리 많으면 맛이 허벌나게 좋다는 것 아니겄소. 개량종 참나물을 이리들 부른다는 것 알고 넘어갑시다래.

참나물 진짜로 참나물이 있소. 시골양반들이 산미나리라고 하는 것 말이오. 미나리아제비과라 자주빛이 선연한 이 건 아주 크고 넓은 응달에 가야 만나 보니 곰취 주변에 널려있다오. 곰취 한 장 참나물 서너 잎에 꽁보리밥에 된장 발라 입에 쏙 넣으면 이 맛 견줄 데 없이 훌륭하제. 단연 산愛진미 최고봉이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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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산 속 산나물 쌈 곰취부터 별게 다 있는 쌈 한 번 드시죠 ⓒ 김규환


도깨비부채 들고 집으로 오면 진향 모두 따라옵디다. 고수 향채(香菜)는 중국에서만 먹는 것 아니라오. 절집이든 냄새를 즐기는 분들 상엔 늘상 빠지지 않고 올라갑디다. 초피잎 풋김치 담글 때 넣으면 풋내 싹 없어지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지라우. 민물괴기 어죽이나 추어탕에 넣으면 비린내 완전히 사라지오. 늦가을 까만 산초 열매 모아 기름 짜서 두부나 지져먹으면 기분마저 공중으로 날아간당께라우.

잡풀이 무엇이고 들풀이 무어요. 소가 먹는 건 죄다 먹을 것이니 이 하인은 일소가 되어 주인 대신 맛을 보고 있으매 아직도 멀쩡허니 살아 있다니 신기하지 않소이까. 땅 바닥엔 질경이 질기게 퍼져있고 대밭엔 죽순 꺾는 소리 아침에 참 좋다오. 다 먹어볼라믄 까마득헝께 대충 마무리 지으려 하나 좋은 것 다 빠뜨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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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떡 수리취떡 수리취를 분대 분취 떡취라고 하는데 인절미를 만들고 있답니다 ⓒ 김규환


돌팍 아무데나 잘 산다고 돌나물, 오랑캐 북으로 올라갈 무렵 먹는다고 돛나물이니 이 매듭마다 나온 놈 뜯어와 티끌 골라내서 된장 고추장 섞어 둘둘 비비면 돈 많은 이 부럽지 않으니 돈나물이라 부를깝쇼. 머위도 지천이오.

풀이든 산나물과 약초를 뜯어서 하얀 뜨물이 나오면 별 탈이 없다오. 잔대가 그러니 친정엄니가 산후조리 때 푹 고아서 준 거지. 딱주가 더 정감이 가는데 달달합디다. 더덕이나 도라지도 가을 겨울엔 뿌리를 먹지만 봄 여름엔 줄기를 뜯어먹어야 본래 향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니와 쓰지 않고 먹을만 하제라우.

아따 먹을 것고 쌨네. 토당귀, 왜당귀, 백지, 누룩치 요 것들을 빼묵어야 쓰겄소. 나뭇잎도 알고 보면 먹지 못할 게 없지라우. 고춧잎나무, 홑잎, 다래순, 가죽잎 뭐 하나 쓰잘데 없는 게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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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 가득 마루에 앉아 비비고 싸고 막걸리도 한잔 곁들입니다. ⓒ 김규환


아이구나 만날 묵어도 허기가 말이 아니네. 주인님 오늘 저녁참에는 곤드레 넣고 가마솥밥이나 한 번 해먹읍시다. 고려엉겅퀴 뜯어와 살짝 데쳤다가 밑바닥에 안치고 강된장 끓여 둘둘 비벼서 때질러붑시다. 보드랍게 혀에 감기며 은근한 향기 주위를 감싸고 목구녕으로 술술 빨려들어갈 것이오. 배불리 먹어도 더부룩하지도 않으니 밤새 잠도 잘 올 것이구만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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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강원도에 없는 것 두가지 중 하나 죽순 또 한가지는 가죽나무(참중나무) ⓒ 김규환


백아산 산신령과 산채원 촌장 둘이서만 맛보는 진수성찬 아깝지 않소. 하여 하인은 주인과 나누기 위해 이 짓거리를 미쳤다는 소릴 들어가며 십수 년째 하고 있소.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이 어찌나 고달픈지 알 것이오. 도시에 사는 주인어른 주인마님 바쁘시더라도 직접 한 번 보고 가싰쇼. 얼굴은 희멀건하고 기름기만 흐른다고 건강하지 않응께라우. 뱃살도 이것 잡수면 쑤욱 빠지고 다음 날 화장실에 가시면 변색(便色)이 변색(變色)된다고도 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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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유기농콩으로 된장 간장 청국장을 직접 만듭니다. 여름철에도 별미랍니다. ⓒ 김규환


하인은 백중날 탁족(濯足)할 여유도 부려보지 못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과 동무가 되었다. 오로지 주인께 힐링해 드릴 참으로 맹세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산다.

하인이 먹어서 탈이 없는 것만 드린다. 까탈스런 하인 입맛에 맞지 않으면 폐기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담긴 뜨거운 음식은 이 또한 버린다. 밭농사도 비닐 하나 쓰지 않고 맨땅에 풀과 함께 자라게 한다. 바다 해초류 몇 가지 삶아서 그 물로 나물을 무친다. 이 게 헛된 일이냐.

대충대충 먹어도 그만이더라는 이 몰상식한 말을 무척 싫어하는 하인이다. 최고권력자나 대자본가보다 더 깔끔하고 건강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 여긴다. 황제식단! 하인이 늘 대령하고 있다. 한번 하인은 평생 하인! 주인 명령만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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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하여 말리고 있는 풍경. 콩은 하지 무렵에 심는 게 가장 좋습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산채원 카페(cafe.daum.net/sanchaewon)에도 실렸습니다.
#산나물 #백아산 산나물축제 #산채원 촌장 #산채원 김규환 #주말마다 산나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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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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