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사 안내판백제에 구원병을 보내기 위해 사이메이 왕이 후쿠오카로 건너왔으나 얼마 있어서 죽는 바람에 아들인 천지왕이 어머니의 명복을위해 이 절을 지었다는 안내판
이윤옥
관세음사를 찾은 것은 이곳에 고구려 담징스님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담징스님에 관한 일본 쪽 사료를 보면 <일본서기> 권22 스이코 18년(610) 봄 3월조에 "고구려왕이 승려 담징과 법정을 보냈다. 담징은 사서오경에 능통하고 채색(그림)을 잘했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물레방아와 맷돌을 최초로 전했다(高麗王貢上 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造 蓋造 始于是時歟)"라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1251년에 나온 <일본고승전요문초(日本高僧傳要文抄)>에 보면 '고구려 승 담징은 외학을 섭렵하고 오경에 밝았으며 610년 3월 법정스님과 함께 건너 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담징스님은 머나먼 고구려 땅에서 나라(奈良)지방으로 불법(佛法) 전수를 위해 건너왔다. 그리고 다시 나라의 법륭사에서 후쿠오카의 관세음사로 건너왔다. 법륭사에서 관세음사까지는 무려 650km나 되는 거리로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수 차례 차를 갈아타고 8시간이나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그렇게 먼 곳을 담징스님은 왜 이곳 관세음사로 건너 온 것일까? 담징스님이 후쿠오카 관세음사에 온 것은 단순히 맷돌을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선 담징스님의 가장 큰 흔적인 "맷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으니 그 이야기부터 하자. 맷돌이라고 하면 예전에 어머니들이 두부 따위를 만들 때 쓰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관세음사 대웅전 앞마당에 놓여 있는 맷돌은 크기만도 한국의 시골집에 있던 맷돌의 스무 배나 됨직한 커다란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