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를 통해 글을 쓴다는 것

독서 후 글쓰기의 중요성

등록 2014.05.21 15:07수정 2014.05.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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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원 과제하면서 의문이 일었다.

지정된 희곡을 읽고 분석하는 글쓰기를 해야 했는데, 다른 사람의 견해를 쓰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디까지가 나의 의견인지 알 수 없었다. 늘 그렇듯 그날은 해당 작품을 읽으며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러면서 극의 전개를 이끌고 있는 모티프 몇 개를 잡아, 적절한 문장들을 발췌해 나열했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로 이 작품이 들어있는 자료들을 모두 검색했다. 많은 상을 휩쓴 텍스트인 만큼 평론가들의 다양한 글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었다. 참고도서와 학술지를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써나가다 보니 어디까지가 나의 의견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타자의 글을 읽고 쓰는 이 일이 훗날 나의 다른 글쓰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쓰는 것의 출발은 읽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순간 모호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알고 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쓰고 내뱉었던 글과 말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쓰기는 읽기의 전 단계다. 과거에 글쓰기로 남아있던 기록이나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필요한 순간에 재구성되거나 인용되어 나온 결과이다.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글을 모방한다. 남들이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경험과 지식을 읽고서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사유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모방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의 진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서하면서 얻는 정보는 새로운 사고를 구성하는데 추가되고, 또 정보가 새롭게 줄줄이 추가되면서 우리의 글쓰기는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글쓰기의 최고 밑거름은 독서이다. 좋은 문장들을 익혀두면 글을 쓸 때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진다.

중국의 독서운동가 류솨이쥔은 "독서 후 글쓰기란, 책을 읽고 나서 뛰어난 문장이 머릿속에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을 때 그 내용과 유형을 모방하여 습작하는 것을 말한다"고 전한다. 그는 좋은 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읽기를 통한 글쓰기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우리에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독자들은 이를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거나 필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기도 하고, 한쪽 귀퉁이에 자신의 생각들을 메모해놓기도 한다. 좀 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는 언급된 부분들에 곁가지를 쳐서 자신의 감상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기가 독자들마다 다르게 존재하듯, 독서 후의 글쓰기 또한 각자의 필요와 불필요에 따라 정도를 달리 한다. 나는 여기서 독서 후에 그것을 토대로 조금이나마 글쓰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과제를 하면서 선택해 읽은 글은 아직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읽기에서 그친 게 아니라 쓰기로 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글 중에서 처음 내가 가졌던 생각과 맞닿는 언어들을 엮어 재사용하는 것, 그로 인해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고 글의 의미는 뚜렷해진다. 텍스트에서 어떤 부분을 배제하고 축출해 쓰는 일은, 쓰고자 하는 글에서 관련성을 회복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쓰기 위해 읽는다는 것은 보다 더 꼼꼼하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송숙희의 <최고의 글쓰기 연습법, 베껴쓰기>에는 이공계 대학생이 하루 한 번씩 읽고 옮겨 쓴 것으로 미국 정치재단에 인텁십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 학생이 저자에게 편지를 쓴 내용이다.

"선생님이 권유한 대로, 단지 읽고 베껴쓰기를 했을 뿐인데 지금 나는 미국에서 거물 정치인이 만든 재단의 인턴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지망생 등 인문학도들과 겨뤄 몇 안 되는 인턴십 자리를 따냈는데, 이공계 학생으로 내가 준비한 것은 신문칼럼 읽고 베껴 쓰기가 전부였습니다."

저자는 당시 카이스트에서 강의하며 학생들에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원문이 어떤 식으로 쓰여 졌는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철저하게 흉내 내기가 관건이라고 누차 말해 왔다고 한다.   

"내 소설은 과거의 소설을 반복하여 읽고 써본 덕분에 탄생했어요."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자신의 저서에서 "독자들은 대부분 재연을 보는 즐거움, 지금까지 즐겁다고 생각해왔던 것과 똑같은 것을 읽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고 강조한다.

글쓰기는 과거의 그것을 어떻게 재연하느냐 하는 문제 일뿐, 새로운 글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난의 행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것의 모방은 창조의 씨앗이 된다. 독서를 하면서 알게 된 생각과 지식과 어휘와 논리는 글의 재료이고, 이 재료들은 섞을 줄 아는 글쓰기 연습이 있어야 진짜 훌륭한 글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읽기를 통하여 지식이 더해지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에 새로운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시각과 방식, 심지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작가가 쓴 글을 집중력 있게 관찰하며 수없이 반복하면 어느 날 그대로 재연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또 다른 독자를 위한 텍스트로 활용될 수도 있으며, 자신의 다음 글쓰기를 위한 기억의 저장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텍스트를 읽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쓰는 것으로 완결되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독서 후 글쓰기는 미래의 창의적인 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독서 #글쓰기 #모방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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