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광버스 기사, 아마도 없을 겁니다

농촌도시 안성에서 관광버스 24년 '만능엔터테이너' 채관석씨가 사는 법

등록 2014.05.29 11:14수정 2014.05.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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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시절 군용버스를 운전한 게 인연이 되어 24년째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채관석씨. 지난 28일, 그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음악 DJ, 영화 VJ, 가수, 개그맨, 여행사, 여행가이드, 차량 정비사' 등의 역할을 소화해야 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무슨 말일까.


"관광버스 막춤 시대가 가고 있다"

24년 전과 요즘 관광버스의 풍속이 달라진 걸 묻자, 그는 당장 "'관광버스 하면 춤'이라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무슨 이야기냐고? "초창기엔 손님들이 초상집에 가는 게 아니라면 '관광버스 하면 100%가 춤'"이었지만, "요즘은 50~60%의 사람들이 TV 시청, 영화감상, 음악 감상 등 다양하게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 농촌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라 옛날 향수(?)를 못 잊어 '관광버스 춤'을 추기도 한단다. 하지만, 달라진 풍속도에 맞춰 관석씨도 달라졌다. CD와 DVD, 유료 다운로드 등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선정하여 차에 구비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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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관석기사 지난 28일, 안성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오늘 쉬는 날이라 등산을 마치고 왔다고 했다. 평소 앉아서 운전만 하기에 건강을 위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24년 관광버스를 운전하며 만능엔터테이너처럼 살아온 듯 했다. ⓒ 송상호


영화를 틀어줄 때도 아무렇게나 틀지 않는다. 손님들의 연령대와 취향을 고려한다. 30~40대는 주로 액션영화를 틀어준다. 중년 아줌마들에겐 한국영화 흥행작이나 멜로영화를 틀어준다. 간혹 포르노를 틀어달라는 손님에게는 '공공장소 상영금지'라며 정중하게 거절한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대부분 영화보기를 거절한다. 그들에겐 역시 가요다. 그것도 소위 '뽕짝' 음악. 거기에다가 흘러간 추억의 옛 노래와 조용한 무드음악도 그들에겐 먹힌다고 했다. 그런 조용한 음악이 나오면, 손님들도 담소를 나눈다. 차 속 분위기를 그가 잡아가는 셈이다.


장거리 여행 중엔 오후 1~3시가 제일 졸리고 지루한 시간이다. 이때는 영화도 신 나는 영화, 노래도 코믹한 노래를 튼다. 그 시간엔 관석씨도 졸리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차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 클래식 음악까지.

관광버스 분위기, 그가 조율해나간다


손님들의 연령대와 취향을 고려해 음악을 틀면 대부분 적중하지만, 약 30%가 적중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관석씨보다 젊은 30~40대 손님들일 경우다. 세대가 다르다 보니, 딴에는 맞춘다고 한 것이 빗나간다. 그럴 땐 어떻게 할까. 그렇다. 솔직하게 "차 안에 이런 음악, 저런 음악이 준비되어 있다. 어떤 취향을 원하느냐"고 묻고, 그가 선택해서 음악을 튼다.

"어떤 손님은 그 음악을 원하고, 다른 손님은 저 음악을 원하지 않느냐. 그럴 땐 어떡하느냐"고 묻자, "손님 모두가 만족하는 건 불가능하다. 50% 이상만 좋아해도 성공이다"라고 그가 말한다. 한마디로 대세를 따른다는 거다. 대세? 그건 현재 버스 속에서 흘러가는 분위기의 대세를 말한다. 현재 분위기가 차분하면 차분한 걸로, 흥이 한창이면 신 나는 걸로 한다는 거다.

간혹 술 취한 손님 중에서 생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현재 버스 속 대세는 신나는 분위기인데, 차분하거나 슬픈 음악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한마디로 찬물을 끼얹는 선곡이다. 이때는 거절한다. 그러고 나면 "왜 자기가 요구하는 걸 틀어주지 않느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야, 기사! 그따위로 할 거냐"며 막말과 욕설을 하기도 한단다.

이때,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마이크를 통해 "우리 인간적으로 기본예의는 지키자"라며 짧은 연설을 함으로써 정중하게 그 손님을 무안하게 만든단다. 그러고 나면 분위기가 잡힌단다.

관광버스다 보니 음주손님을 많이 상대하는 게 곤욕스럽다. 운전자의 머리에 술이 쏟아지고, 안주가 쏟아지기도 한다. 술에 취하면 괜히 운전자에게 시비를 건다. 이렇게 20년 넘게 겪다 보니 술 취한 사람을 다루는 데는 베테랑이 되었다. 그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사람 공부, 인생 공부를 한다"고 했다.

아하! 이래서 만능엔터테이너

때론 손님들이 그에게 노래를 시킨다. 그러면 두 곡 정도를 멋들어지게 불러 제친다. 반응이 좋다. 가수 역할을 한다. 때론 여행지를 설명할 땐, 개그맨처럼 유머러스하게 손님을 웃긴다. 손님들이 공감할만한 수준의 욕도 섞어가며 설명을 하면 어르신들은 배꼽을 잡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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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채관석 기사가 운전하는 관광버스 정면 사진이다. 그는 세월호 추모집회를 가는 시민들을 안성에서 청계천 광장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거라면 어디든 간다. 이 차는 2년 전에 뽑은 새차이며, 5년 주기로 새로운 차를 교체한다.1년에 10만 km, 5년이면 50만km를 달린다고 했다. ⓒ 송상호

1박 2일이나 2박 3일 여행인 경우 여행일정표를 그가 직접 짜주기도 한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그에게 부탁해온다. 여행지에 내리면 웬만한 여행가이드보다 더 정확하고 재밌게 가이드를 한다.

겨울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천여행도 간다. 가을여행 때 "겨울에 한번 날 잡으셔, 기름값만 받고 온천으로 모실 텐게"라고 말해놓은 결과다. 늘 "내가 밥 벌어 먹고사는 건 그들 덕분"이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웬만한 차량정비도 스스로 한다. 차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 난 지 알 정도다. 초창기 중고버스를 몰 때, 쉬는 날이면 차량부품을 사서 직접 수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단다.

이젠 '사람도 고생, 차도 고생'을 잘 알기에 5년마다 신차로 교체한다. 1년에 약 10만km를 주행하니 5년이면 50만km를 주행한 후 교체한다는 이야기다.

24년 관광버스를 운전하며 손님을 위해서 다방면에 만능이 되어버린 그. 관광버스는 정년이 없어 좋다며 70~80세가 되어도 계속 운전하겠다는 그야말로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닐까.
#관광버스 운전기사 #관광버스 #버스 #채관석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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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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