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이 오키나와를 찾게 하는 다섯 가지 전통

[일본 가는 길 123] 오키나와 나하시(那覇市) 전통공예관(傳統工藝館) 기행

등록 2014.05.30 11:07수정 2014.05.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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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沖繩) 나하시(那覇市)의 최대 번화가인 고쿠사이도리(國際通り)의 중심부를 걷다가 푸른 유리로 치장한 현대적인 한 건물을 만났다. '오키나와 덴부스 나하(てんぶす那覇)'라고 불리는 이 건물에는 나하시 전통공예관(傳統工藝館)이 있다. 2004년에 문을 연 이 공예관은 오키나와의 다양한 전통 공예품들 중에서 역사적인 걸작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오키나와 공예의 정수가 담겨 있다.

a 덴부스 나하 오키나와의 전통공예품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덴부스 나하 오키나와의 전통공예품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 노시경


오키나와 전통 공예의 역사는 류큐 왕국이 하나의 왕국으로서 번성했던 14세기 말부터 시작된다. 중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오키나와의 공예품들은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더욱 발전되어 왔다.


19세기 중반에 오키나와의 공예는 문화선진국들의 공예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토대 위에 오키나와의 고유문화, 독특한 자연환경이 어우러져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일본으로 오키나와가 통합된 이후 이 전통문화는 잠시 오키나와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져 갔으나, 현재는 류큐 왕국의 전통문화로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오키나와의 전통 공예품을 한 자리에 모은 나하시 전통공예관은 오키나와 덴부스 나하 건물의 2층에 있다. 나는 외부와 연결된 계단을 올라서 공예관으로 갔다. 비가 많이 내려서 계단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오키나와 전통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많지 않은 공예관이어서인지 안내자료와 입장권을 나눠주는 직원의 표정이 무척 친절하다.

전시실은 조명 아래 명품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오키나와 중요 무형문화재 슈리오리(首里織) 기술 보유자인 미야히라 하쓰코(宮平初子)씨의 작품 등 무형문화재 기술 보유자들의 작품들이 어둠 속에 화려하게 빛을 받고 있다. 전시물 옆의 모니터에서는 전통공예의 제작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꼼꼼하고 친절한 일본 박물관의 특성이 오키나와 공예의 역사를 말해주는 걸작품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오키나와 전통공예의 걸작품들은 다섯 가지 공예품으로 분류되어 여행자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a 빈가타 류큐 왕국에서 사용하던 전통 염색 공예품이다.

빈가타 류큐 왕국에서 사용하던 전통 염색 공예품이다. ⓒ 노시경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화려하고 밝은 오키나와 염색물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키나와 직물공예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류큐 전통문화 중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 류큐(琉球) 빈가타(紅型, びんがた)는 오키나와에서 생산되는 다채로운 무늬의 염색 천을 말한다. '빈(紅)'은 색채를 뜻하고, '가타(型)'는 문양을 의미한다. 다마나하 유코(玉那覇有公)의 빈가타 염색물이 전시관 안에 갇힌 채 화려한 색상이 빛나고 있었다. 현재 오키나와 각지에 남아있는 빈가타는 왕궁에 공납했던 제품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다. 

빈가타는 15세기부터 류큐 왕국 왕가의 지원 아래 중국의 형지(型紙), 일본 본토의 교유젠(京友禪), 인도와 자바의 사라사(更紗) 등 염색물 문화와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오키나와 독자의 남국 스타일 염색물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 빈가타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오키나와에만 있는 기법을 이용하게 되었고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염색공예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염색 재료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 값비싼 안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빈가타는 왕, 왕족과 귀족부인 등 귀족들의 의복과 궁중무용 의상으로 발달해 나갔다. 류큐 왕국의 상류층들은 국가의 행사나 중요한 예식의 예복으로 이 빈가타 의상을 즐겨 착용하였다.


a 빈가타 문양 빈가타를 만드는데 쓰이는 문양들이 세밀하게 전시되어 있다.

빈가타 문양 빈가타를 만드는데 쓰이는 문양들이 세밀하게 전시되어 있다. ⓒ 노시경


빈가타 직물로 만든 전통의복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어떤 의미들을 형상화한 것 같은 문양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 문양들은 오키나와의 바람, 태양 등을 상징하고 있다. 문양 중에서도 커다란 문양의 빈가타 의상은 귀족들이 입고, 신분이 낮은 귀족들의 빈가타 의복에는 작은 문양이 그려진 염색을 하였다. 옷감의 색상 또한 계층과 남녀, 연령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지금 전시관 안에 화려하게 걸려 있는 노란색의 빈가타가 당시에는 최상급의 빈가타 직물이었다. 크게 펼쳐져서 걸린 노란 빈가타의 거대함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일본 본토와의 병합 이후 오키나와에서 신분은 사라져갔지만 왕족과 귀족들이 착용하던 빈가타를 평민들이 바로 착용하지는 않았다. 빈카타의 색상이 너무나 밝고 선명해서 평민들 스스로가 빈가타를 멀리 했던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빈가타의 너무 밝고 선명한 색이 거리에 입고 다니기에는 너무 튄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밝은 색은 남국 오키나와의 자연을 너무나 잘 담고 있는 밝은 색이다. 이러한 빈가타의 예술적인 평가는 높아갔고, 전쟁 이후에 빈가타의 인기는 부흥하여 빈가타를 만드는 전통기법이 잘 보존되어 왔다.


오키나와의 자연과 역사에서 태어난 빈가타는 다른 염색물에는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어내고 있다. 빈가타는 오키나와의 쨍한 하늘과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남국의 바다를 그대로 담은 듯 선명하다. 남국의 정서가 넘치는 오키나와의 자연을 문양화하여 일본 본토의 기모노보다 훨씬 화려하다. 이 이국적인 빈가타는 현대에도 장식품과 시원스런 남국의 의상으로 재현되어 외국에서 방문한 여행자의 눈길을 확 잡아끌고 있다.

a 슈리오리 슈리오리의 직물과 문양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슈리오리 슈리오리의 직물과 문양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 노시경


팔을 크게 벌리고 사람들을 도도하게 내려보고 있는 슈리오리(首里織)는 오키나와의 전통의복이다. 슈리오리는 오키나와 전통 복식의 높은 기술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다. 남국의 나라답게 직물은 속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얇고 시원해 보인다. 슈리오리는 류큐 왕국 당시, 귀족이나 무사들 전용으로 쓰이던 고급직물이었다. 류큐 왕국의 수도였던 슈리에는 당시에 사용되던 슈리오리가 아직도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위풍당당하게 전시된 슈리오리의 문양과 색상을 보면서 예상치 못했던 세련미와 섬세함을 느끼고 있다.

a 슈리오리 짜기 동양 여러 나라의 직물 짜기 모습과 닮아있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슈리오리 짜기 동양 여러 나라의 직물 짜기 모습과 닮아있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 노시경


특히 전통공예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슈리오리 원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가이다. 이 직물로 옷 한 벌을 만드는 데에 기천만 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그 비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까지도 슈리오리를 짜는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오지만 현재는 인테리어 장식이나 허리띠 등의 소재로 오키나와 인들의 생활 속에서 이용되고 있다. 슈리오리 직물 옆의 모니터에서는 한 장인이 슈리오리를 만들기 위해 직조기의 페달을 번갈아 밟으며 실을 꿰매고 있다. 슈리오리 기술자는 양 손발을 모두 이용해서 바쁘게 슈리오리의 모양을 만드는데 묘하게 리듬을 타고 있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직공의 몸은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a 류큐 칠기 붉은 안료와 칠기의 조합이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류큐 칠기 붉은 안료와 칠기의 조합이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 노시경


오키나와는 과거부터 옻칠이 유명한 곳이었다. 류큐 칠기(琉球漆器)는 슈리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강렬한 주홍색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류큐 왕국 당시에 중국의 황제와 일본 막부의 쇼군(將軍)에게 진상품으로 올릴 정도였으니 류큐를 대표하는 공예품이다. 이 화려한 칠기는 류큐 내에서도 왕가에서만 사용하였다. 다양하게 발달된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그릇, 쟁반, 접시, 찻잔 받침 등 많은 칠기들이 화려함의 경연을 하고 있다.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일본 본토의 영향을 받아서 과자그릇, 개인접시들까지 따로 만들어졌다.

칠기 칼로 이토록 칠기 면을 얇게 펴냈으니 정말 예술의 경지이다. 붉은색 사이로 드러나는 채색 칠기의 색상들이 방금 칠한 듯이 선명하기만 하다. 오키나와 거리의 기념품 가게에서 보이는 옻칠로 만든 예쁜 젓가락과 젓가락 받침대들이 모두 오랜 역사의 오키나와 칠기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 이 전통공예관의 오키나와 공예품을 예습하고 오키나와 거리를 걸으면 여행 지식이 한층 풍부해질 것 같다.

a 류큐 도기 투박하고 거친 도기의 모습에서 소박한 멋이 느껴진다.

류큐 도기 투박하고 거친 도기의 모습에서 소박한 멋이 느껴진다. ⓒ 노시경


인간문화재인 긴조 지로(金城次郞)가 만든 쓰보야야키 도자기(壺屋燒)는 투박하고 힘찬 오키나와 도자기를 대표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야치문(ヤチムン)'이라고 불리는 도자기는 14세기 이후 중국, 조선 등의 도자기 영향을 받아 오키나와 스타일로 발전하였다. 소박한 멋이 한국의 도자기와도 많이 닮아 있다. 불길한 기운을 막기 위해 집의 지붕 위나 문 앞에 세워놓는 시사(シーサー)도 도자기로 빚어져 익살스럽게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시사 도기는 오키나와 문화를 특유의 독특한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키나와 자연의 흙과 불을 가지고 도자기를 굽는 도공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명품들이다.

a 류큐 유리 류큐 유리는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류큐 유리 류큐 유리는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 노시경


오키나와의 유리공예, 류큐 유리(琉球グラス)를 전시하는 곳에 발을 멈췄다. 푸른 유리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남국의 바다 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 오키나와의 유리공예는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중반 경부터 시작되어 100여 년 동안 생활필수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키나와 전투로 모든 유리 공장들이 잿더미로 사라지게 된 이후, 미군들이 사용하던 시설로부터 나온 콜라, 위스키 등의 빈병을 이용한 폐품 재활용으로 유리 만들기가 새롭게 일어났다. 그리고 현재는 류큐 유리가 이를 벗어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었다.

a 류큐 유리 류큐 유리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 되었다.

류큐 유리 류큐 유리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 되었다. ⓒ 노시경


현재 류큐 유리는 원료를 조합하고 착색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법을 응용하여 독특한 조형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리는 오키나와에서 생활 속의 신비로운 예술품이 되어 있다.

오키나와 덴부스 나하 2층의 전통공예관 판매장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왔다. 1층의 오키나와 특산품 가게에서는 전통을 기반으로 만든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나본다. 나는 오키나와 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공예 작가의 섬세하고 포근한 손길을 느껴본다. 식당과 유흥업소들로 가득한 고쿠사이도리 한 복판이기에 이 문화시설은 더욱 소중한 곳이다.

a 소공원 덴부스 나하 뒤에는 산책하기 좋은 도심 속의 공원이 있다.

소공원 덴부스 나하 뒤에는 산책하기 좋은 도심 속의 공원이 있다. ⓒ 노시경


덴부스 나하 뒤편을 보니 녹음이 우거진 작은 공원이 있다. 아직도 공원에는 비가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날, 나는 이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하려고 하였으나 세찬 비 때문에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포기하였다. 비는 여행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나는 여행 가방을 가지러 아내와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고쿠사이도리에는 꽤 많은 여행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비로 인해 나하 시내 답사 몇 곳을 포기하고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섰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덴부스 나하 #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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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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