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업, 세월호 희생자들이 준 마지막 기회"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24] 권오훈 KBS 새노조 위원장

등록 2014.06.02 18:55수정 2014.06.0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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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선 KBS 양대 노조 이광용 KBS 아나운서와 KBS 노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공동파업 출정식을 마친 뒤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거리로 나선 KBS 양대 노조이광용 KBS 아나운서와 KBS 노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공동파업 출정식을 마친 뒤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KBS 양대 노조가 5월 29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5월 30일 기자와 만난 권오훈 언론노조 KBS 본부(KBS 새노조) 위원장은 이번 파업에 대해 "KBS 양대 노조와 보직을 사퇴한 간부들이 함께 벌이는 파업"이라면서 "청와대의 보도개입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보도국에 관철시켜 온 길환영 사장을 퇴진 시키고 KBS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전 파업과 달리 KBS 구성원의 90%가 참여한 이유에 권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촉발된 청와대의 KBS 개입의 실상 자체가 너무 적나라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라면서 "청와대와 KBS와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KBS 스스로를 공영방송이라 칭할 수 없고, 공정방송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벼량 끝에 서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권 위원장은 독자들에게 "저희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다. 그러나 저희는 돌아갈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저희의 외침을 들어주시고 응원해 달라"며 "그러면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제대로 돌려놓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언론노조 KBS 본부(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과 나눈 일문 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KBS의 추악한 맨얼굴 드러나... 벼랑끝에 서 있다"

 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
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이영광

- 결국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2년 전 파업의 피로감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은데.  
"5월 29일자로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2010년 29일 동안 파업을 했고, 2012년 95일 동안 총파업을 했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이번에는 새노조만의 파업이 아니라 KBS 안에서 2600명이 가입한 KBS 노동조합(1노조)과 1250명이 가입한 전국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그리고 이미 보직을 사퇴한 330명 정도 되는 간부들이 함께 벌이는 총파업입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KBS 역사상 이렇게 많은 KBS 구성원들이 총파업에 직접 참여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청와대의 보도개입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보도국에 관철 시켜 온 길환영 사장을 퇴진 시키고 KBS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이번 파업의 의미를 잘 알려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번 파업은 KBS 구성원 90%가 참여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로부터 촉발된 청와대의 KBS 개입의 실상이 너무 적나라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를 통해서 확인된 내용들, 청와대는 수시로 KBS에 전화를 해서 '협조'를 가장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사장은 청와대의 지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직접 뉴스 큐시트를 받아서 일일이 체크해 가면서 그 내용을 관철시켜 왔던 거죠.


부끄럽지만 KBS의 추악한 맨얼굴이 드러난 셈이죠.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자괴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청와대와 KBS와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KBS 스스로를 공영방송이라 칭할 수 없고, 공정방송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에서 총파업에 나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부의 방송 장악은 2008년 정연주 전 사장이 쫒겨날 때부터 시작되었고 길환영 사장 임명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 방송 장악은 이명박 정권부터 아주 교묘한 행태로 이루어져 왔죠. 정권홍보 방송을 사이사이에 끼워넣고, 뉴스를 통해서도 정권홍보가 이루어졌어요. 또한 인사를 통해서도 정부 비판적인 내부 언론들을 현장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어요. 이에 대해 KBS 구성원들이 '청와대-KBS 관계가 뭔가 문제가 있다, 정상적이지 않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이번에 그 실상이 확인된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충격이 더 크고, KBS 구성원들 개개인들의 양심에 대한 울림은 훨씬 더 큰 게 사실이죠. '계속 노력해 왔지만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다. 이렇게까지 실상이 밝혀졌는데도 KBS 구성원들이 가만히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국민들로부터 어떻게 수신료를 걷고 어떻게 제대로 된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심각한 자각이 있었죠."

-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탄발언이 파업의 도화선이 되었어요. 이와 관련해 김 전 국장 역시 보도 개입에 책임이 있는데 폭탄발언으로 면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김시곤 국장이 1년 5개월 동안 보도국장을 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의 간섭이 있었고 사장으로부터 간섭이 있었다고 밝힌 내용을 보면 '왜 그때 바로잡지 않았나'라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늦었지만 김 국장의 양심고백은 존중되어야 하죠. 물론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건 개인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계속 고민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은 누구든지 겪을 수 있다고 봐요".

- 하지만 김 전 국장의 발언을 '양심고백'으로 보긴 어렵지 않나요?
"두 번의 폭로가 있었죠. 첫날 폭로는 사퇴를 밝히면서 길환영 사장도 같이 물러나라고 말했던 기자회견이 있었고, 그 다음 KBS 기자총회에서 구체적인 외압의 사례, 개입의 사례를 폭로하는 과정이 있었죠. 그 두 번의 폭로 과정이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특히 두 번째 폭로 과정은 나름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화가 난 상태에서 폭로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세세하고 구체적인 폭로를 한다는 것이 단지 감정적으로 그냥 욱하는 심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 두 번째 폭로 과정에서 기자들이 '왜 제대로 못했나'고 질타하는 과정에서 본인도 반성, 사죄의 표현들이 있었죠.

1986년에 보도지침 폭로사건이 있었잖아요. 어쩌면 그에 버금가는, 실제 우리가 진짜 알기 어려운 실상들, 권력과 언론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언론사에서 두 번째 사례라고 봅니다."

"'제2의 길환영'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
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이영광

-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안 표결이 선거 다음 날인 6월 5일로 연기되었어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선거를 앞두고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어서 연기했거나 다른 하나는 선거를 앞두고 부결 시키면 역풍이 클 것으로 판단해 연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 사장 스스로 사퇴하고 차기 사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관계를 재설정해 이 사태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했는데, 결국 길 사장이 버티기로 들어간 상태죠. 남은 방법은 이사회가 길 사장을 해임 제청하는 방법 밖에 없어요.

저희가 총파업을 미루면서까지 이사회에 길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 가결을 호소했는데 결국 연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총파업에 들어갔고, 이미 방송파행은 첫날부터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뉴스나 즐기던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파업을 통해서 반드시 보다 나은 프로그램을 뉴스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새로 만들겠다는 싸움이기 때문에 조금 참아주시라는 부탁을 드리는 거죠."

- 왜 연기했을까요?
"이사회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겠지만, 6·4지방선거라는 시점 이후로 연기 시점을 잡은 것에 시사점이 있다고 봐요. 하지만 단순히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부결 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과 내부 구성원, 그리고 청와대 등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사인'이 안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KBS 사태는 내부 문제가 아니라 총파업을 통해서 방송파행이 빚어지고 있어서 국민적 관심사가 돼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이 상황에 대해서 당연히 관심을 가질 거예요.

그러나 청와대가 사태 해결을 위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릴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칫 또다시 KBS 문제에 대해서 특히 사장의 거취와 관련해서 개입을 한 사실이 한 번 더 밝혀지면 정권의 진퇴가 걸릴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길 사장이 버티는 상황은 청와대의 지시나 지원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 2년 전 파업 때는 결방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이에 함철 새노조 부위원장은 '과거 어떤 파업보다 방송 차질이 광범위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어떻게 보세요?
"방송차질은 광범위하게 빚어지고 있고, 특히 뉴스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대거 파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나가지만 진행자가 바뀌었거나 진행자 없이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9>는 기자협회 제작거부로 원래 이현주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조차도 이창진 아나운서로 교체가 됐고, 교양 프로그램은 다른 아나운서가 투입됐거나 아예 MC가 없는 경우도 있어요. 드라마도 촬영 중단이 돼서 당장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추후 방송파행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새노조 PD들이 연출하던 예능은 지금 간부들이 대체연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5일 이사회 결과를 봐야겠지만 부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사측에서는 시용기자 등 대체인력의 투입할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
"파업이 또 장기화되서 KBS에 있는 수많은 양심적인 공영방송인들이 바깥으로 내쫓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잘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저희가 여론면에서 정당성면에서 총파업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 사장이 집행부 몇 명을 고소 고발하고 해임시킬 수는 있겠으나 조합원 전체를 배제 시킨다거나 시용기자로 대체하는 등 일방적으로 총파업을 힘으로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인사담당자로 있는 동료들과 어쩔 수 없이 길 사장 주변에 남아있는 KBS 구성원들조차 총파업에 합류하겠다는 의견을 전하고 있어서 그런 대응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 이번에 KBS 양대노조가 함께 파업에 돌입했어요, 이례적인 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만약 1노조가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을때 새노조 파업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 양대 노조가 따로 파업을 벌이긴 했지만 함께 공동의 목표로 파업을 벌인 것은 처음입니다. 조합원들도 고무되어 있어요. 계속 만나서 구체적인 투쟁계획, 조합원들에 대한 행동지침 등을 계속 협의하고 있습니다. 양대노조의 공조, 연대, 공동 투쟁은 아주 잘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노조만 마무리되고 이탈하는 그런 상황은 안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KBS의 문제는 길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2년전 MBC와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길 사장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KBS는 더 이상 공영방송으로 존립할 수 없다는 게 저희의 문제의식이에요. 그래서 길 사장은 반드시 물러나야 하고 KBS가 더 이상 청와대의 홍보기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사장 선임방식을 포함해서 KBS 지배구조에 대해서 법적·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설령 '제2의 길환영'이 내려온다 하더라도 거부할 수 있는 내적장치가 마련되도록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저희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길 사장의 퇴진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하고 난 이후에 KBS 내부구성원들이 방법을 찾고 국민들과 함께 관철 시켜 나갈 것입니다."

- 세월호 침몰이 한국언론에 끼친 영향은 큰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싸움의 출발점, 거슬러 올라가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를 저희가 제대로 못하면서 그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된 거고요. 막내기자들의 반성문 형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KBS가 제 역할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희생된 고등학생들이 없었을텐데 라는 안타까움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저희가 하고 있는 이 파업도 세월호 희생자들이 저희에게 준 마지막 기회. KBS가 제자리를 찾고, 국민의 입장에서 진실한 방송을 하라는 명령이라 생각하고 반드시 이번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지금 저희가 벌이는 싸움에 대해 못 미덥기도 하고, '이러다 마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많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시작한 싸움이 국민들의 많은 응원괴 지지 속에 진행되길 기대해요. 저희는 돌아갈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KBS의 양심적인 언론인들의 외침을 들어봐 주시고, 저희가 제대로 싸운다고 생각하시면 응원해주세요. 그러면 반드시 국민의 방송으로 제대로 돌려놓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권오훈 #KBS 새노조 #김시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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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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