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주책, 시원한 기타 선율에 눈물이 났다

[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10]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등록 2014.06.10 14:22수정 2014.06.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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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전망 좋다. 스페인 상류층을 겨냥하며 만들었던 전원주택지의 전망으로 손색이 없다. ⓒ 이성애


#1. 초조하지 않은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구엘 공원의 본관쯤 되는 건물 옥상에서 보면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한마디로 전망이 끝내준다는 뜻이다. 이처럼 전망이 좋다는 것은 주변 건물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음을 뜻한다.


높은 지대까지 지하철이 올라올 리 만무하다. 즉 저 아래 지하철역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7월 하순의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확실하게 모르는 곳을 찾기 위해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것이 6년 전, 첫 스페인 여행 중 구엘 공원에 대한 추억이었다.

더구나 그때 몹시 배가 고팠었다. 구엘 공원 근처 어느 길가에서 언니와 사이좋게 나눠 먹었던 빠에야와 주꾸미 볶음 같은 타파스의 모양새와 맛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정말 배가 고팠었거나 아니면 주꾸미가 헤엄친 그 국물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던 언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거나. 어려서부터 다복스럽게 먹는다는 칭찬을 가족과 일가친척은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받으며 자라온 언니의 '다복을 부르는 숟가락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몇 년이 흘러 가족과 다시 찾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또 구엘 공원이다. 어차피 캠핑장에서 시내로 나가야 어떤 교통수단이든 갈아탈 수 있으므로 일단 카탈루냐 광장(거기가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의 종점임)에 내려 택시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 종착지까지 간다. ⓒ 이성애


번잡스런 지하철 이용, 버스 노선 연구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스페인 택시는 비교적 저렴하여 이용하기 좋다'란 여행 책자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우린 처음 타는 택시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컸다. 택시를 탄 후 기본요금이 비교적 싼 것을 확인하고 미터기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자 남편은 일련의 이런 과정이 만족스러웠는지 표정이 한층 고무되어 보였다. 그 여세를 몰아 택시기사에게 대화를 건넸다.

남편 : (발영어로) "구엘 공원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기사 : (손스페인어로) "쏼라쏼라 몬테까를로 어쩌구저쩌구 포뮬라 원. 어쩌구저쩌구~"
남편 : (발스페인어) "아하, 포뮬라 원."


대화의 중심어인 포뮬라 원이 뭔지, 2개 국어와 몸동작으로 나누는 대화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나를 위해 남편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남편 : "아저씨 지금 자동차 대회 중계 라디오 듣고 계셔."
: "응. 그래."


#2. 저리 가! 고도비만 비둘기 녀석들 같으니라고

택시는 우릴 공원 남쪽 입구에 살포시 내려주었고, 우린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도마뱀 면상도 보지 않은 채 한적한 곳을 찾아 남동쪽 방향으로 내려갔다. 예전에도 그쪽에서 언니와 벤치에 누워 있었던 기억이 있다. 반갑네.

미어터지게 꾹꾹 담아 싸서 온 파스타 면발들은 표면에 싸인 올리브오일 덕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을 거였다. 이렇게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울 바엔 빨리 우리 뱃속에 넣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여하튼. 내가 식사를 위해 제안한 장소를 세 번 정도 퇴짜 놓으신 남편님께서 드디어 수락하신 장소는 놀이터의 놀이기구 앞, 그늘진 벤치였다. 비둘기들이 앞에서 뭔가를 콕콕 쪼아 먹고 돌아다니는 폼이 평화스러워 보이는 그런 곳.

'앞에 방금 마른 빵을 먹어치우고 물로 입을 헹구고 있는 외국인 커플은 분명 우리의 양념 자작자작한 파스타를 먹고 싶어 할 것이다'란 판단을 내리자 락앤락과 포크를 쥔 손의 힘줄에 자신감이 뻗친다. 최대한 그들을 위해, 대리만족시키기 위해 난 양념을 골고루 묻혀가며 큰 통에서 덜어 비벼 먹기를 3회 반복하였다. 삶은 달걀까지 까서 먹었다.

푸하하하하.

그래도 삶은 달걀 까는데 조금 궁색한 느낌이 들긴 하더라. 특히 평화스러움을 연출하던 비둘기 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지는 못하고 걸어 돌아다니자 보드라운 공원 바닥의 흙이 춤추며 날아올랐다. 공기의 질을 아주 중시하는 내게 미세먼지의 출현이 반갑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길들어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이 고도비만 비둘기들을 현이가 빵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유인했다. 성공이다. 쉬운 녀석들.

고도비만 비둘기녀석들 아이들이 빵으로 녀석들을 유인하고 있다. ⓒ 이성애


올라가며 잠깐 들었던 연주(생긴 것은 기타 같고 연주 스타일은 하프 같은)가 다시 듣고 싶어졌다. 배를 채우고 다시 돌아와 듣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가우디의 독창적 건축 방법에 의해 지어진, 채색하지 않은 황톳빛의 평범한 돌들을 평범하지 않게 얼기설기 쌓아 아치를 만든 곳으로 갔다. 

이 터에서 돌이 많이 나왔다더니. 바람이 지나다니기 좋게 아치형 터널을 만들었다. ⓒ 이성애


어멈, 람블라스 거리의 예술가처럼 이 공원의 연주자 또한 이것이 직업인지는 짐작했지만 이렇게 빨리 업주가 바뀔 줄 몰랐다. 그새 다른 공연자가 바닥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생김새가 우리와 흡사하다. '누굴까?'란 나의 궁금증을 중단시키며 현이는 벌써 저 사람의 팁 박스에 돈을 넣어주겠단다. "현, 저 사람은 예술가야. 자신의 연주를 다 들은 후 돈을 주는 게 좋아. 그러니까 먼저 집중해서 들어"라고 설득시킨 후 음악을 들었다. 정말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타류의 악기를 손으로 뜯는 그 소리에 환장하게 되었다. 가족 이외 그 어디에서도 소속이 없고 존재감 또한 희박하던 재수생 시절이었다. 아침나절 동네 골목에서 중고가전 가게의 종업원이 호스로 냉장고를 닦고 있었다. 가게 앞에 나와 있던 중고 CD가 10장의 모양새는 지금 생각해도 그날 그 골목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인연이다. 돈 없는 재수생이었지만 그래도 1000원짜리 기타연주 CD는 살 수 있었다. 약 20년 전 그렇게 이병우라는 기타리스트를 만났다. 그 후 이병우씨는 영화음악까지 장르를 넓히며 꾸준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난 내 손에 들어왔던 1998년에 구입한 '기타 생각 없는 기타'란 그의 앨범이 가장 훌륭한 것 같다. 그 후 난 기타 연주라면 이렇듯 환장을 한다.

연주가 끝났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스페인 유학을 택하기도 한다. 내가 세 다리를 건너 아는 사람도 기타리스트 중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는데 스페인으로 유학을 왔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나, 3등을 했다나…. 여하튼.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저 연주자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 비록 태국에서 3주 있다 온 우리보다도 훨씬 까맣고 꺼벙이 같은 도수 높은 안경을 여전히 끼고 있지만, 그래도 그가 기타 유학을 온 한국인일 것 같다.

바람처럼 사람들은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배경처럼 앉아 자신의 음악을 성실히 연주한다. ⓒ 이성애


연주가 끝났다. 미소를 건네며 가까이 다가가 물으니 그는 네팔인이다. 대학에서 기타를 배웠단다. 악기는 사왓이란 인도 악기였다. 그의 외모 때문인지 히말라야 밑 네팔이 마치 지리적으로 중국 청도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유럽에서 만나니 아시아인은 모두 식구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 이성애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눴고 웃음을 나눴다. 그리고 그의 팁 박스에 돈을 넣지 않았다. 대신 10유로짜리 그의 음반을 샀다. CD의 재킷 사진은 아마추어의 냄새가 많이 났다. 아마 그 CD도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음악은 비슷한 패턴이지만 몽환적이고 좋았다. 오묘했다. 포르투갈을 걸쳐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까지는 운전하며 가끔 들었던 것 같은데. 그 후엔 어디로 가버린 건지 모르겠다. 구슬프고도 애가 끓는 음색의 연주 음악을 배경으로 똥줄 타게 일을 할 때 능률이 100% 오르는 나에게 CD의 실종은 그저 아쉬울 뿐이다.

#3. 참 삐딱해서 유쾌한 가우디씨

옥상에 올랐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색색의 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건물, 짐승, 돌의자가 있다. 가우디를 처음 만났을 때 사실 난 남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독창적'이란 키워드만 읽어냈었다.

그런데 좀 더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독창의 독창', '변형의 변형', '해체의 해체'가 끝없이 시도되었단 느낌이 들었다. 건물 아래로 내려오니 이번엔 전통 클래식 기타 연주자다. 수십 개의 기둥이 옥상을 떠받치고 아래 공간은 그냥 빈 곳으로 뒀다. 그래서 연주자에겐 소리의 울림통, 청중에겐 시원한 그늘막이 되었다.

모두 귀에 익은 곡들이다. 대부분 첼로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곡들을 기타연주곡으로 편곡했다. 기타곡이 아닌 것을 기타로 연주할 때 기타리스트의 손은 더 성실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또 다른 음으로 간극을 메워야 하기에 그의 손은 한 줄이라도 더 튕겨야 한다.

여하튼 그의 성실하면서도 귀에 익은 편안한 기타 연주를 기둥에 기대어 들었다. 귀는 그의 기타 가까이 열어 두었고 얼굴은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를 보았다. 그때 눈을 돌려 옆을 보니 5개의 곧은 기둥이 있은 후 하나의 마지막 기둥이 삐딱하다. 기둥이란 개념이 재정의 되는 순간이다. 으이구! 이 재미있는 가우디 같으니! 웃음이 났다.

약 100년 전 스페인 상류층에게 분양을 하기 위해 돈 많은 구엘 백작과 합작하여 지금 이곳 터를 매입하여 멋진 전원 주택지를 만드는 꿈에 부풀었을 가우디의 모습이 그려진다. 비록 그의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4. 아줌마 주책. 흐힝~ 눈물 날 것 같다.

햇살 뜨거운 날, 혼자도 아닌 남편과 애를 둘씩이나 데리고 다녀야 하는 고단한 상황 속에서, 앞엔 다국적 여행자들은 도마뱀을 사진에 담겠다고 웅성웅성 소란스럽고 분주한데 순간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이건 영 어울리지 않잖아. 기타소리에 예민한 내 귀가 주책이다.

눈치 없게스리. 1분만 더 머물었다가는 음의 울림, 가우디의 아름다운 선과 색, 바르셀로나와 지중해의 전경에 취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건물 기둥 밑에서 잔잔하고 시원한 기타소리가 울린다. 사는 게 고단했나? 아니면 여행이 고단했나? 왜 눈물이 나려고 했는지.

무엇이었건 간에 제법 고단했던가 보다. 사는 게 다 그렇겠지만. ⓒ 이성애


내리막길은 좋다. 물론 이것이 인생의 내리막길이라면 또 말이 달라질 테지만. 우린 신 나게 내리막길을 걸어오다가 짝퉁 축구팀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싼값에 인도인으로부터 샀다.

그리고 오줌이 급해 겸사겸사 그럼직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예쁜 언니야가 추천해주는 '오늘의 요리'를 먹었다. '적게 먹는 것', '천천히 먹는 것'이 식문화로 자리 잡은 나라에선 여행자의 마음이 괜히 편하다. 그래서 스페인이 더욱 좋다. 방광은 가볍고 배는 적당히 따뜻하고 부른 이 느낌. 여행자에게 이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리씨네 여행기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유럽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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