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조희연 후보가 5일 새벽 서울 신문로 선거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우성
6·4 지방선거 전날, 취직시험 준비 때문에 도서관에 있었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개인 열람실에 앉아서 책을 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동창생 밴드에 글을 올렸다. "교육감 선거는 무엇보다 중요한 선거다, 소신껏 투표하자"면서 슬쩍 "서울시교육감은 조희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였다. 이번에는 카톡과 문자를 열심히 뒤져 조희연을 잘 모를 만한 사람을 골랐다. 꼭 조희연을 찍어달라고 애원하듯 문자를 보냈다. 남은 시간은 그냥 때우고 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나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기초·광역 단체장이 누가 되느냐보다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가 더 중요했다. 고1짜리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선택할 무렵 디자인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아이 아빠와 나는 딸아이가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서울 귀퉁이에라도 붙어 있는 대학에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아이에게 지고 말았다. 아이는 우리를 안심시키려듯 말했다.
"요즘엔 특성화고에 가도 대학 갈 수 있어. 진학반이 있거든. 엄마 아빠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아, 내가 요즘 고등학교 상황을 잘 모르는구나. 그래도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학기 초에 담임은 학부모와 면담을 하려고 하니 적당한 시간에 학교에 와달라고 했다. 며칠 후 학교에 가서 담임과 상담을 했다. 딸아이는 학교 잘 다니고 적응도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면서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다. 나도 그렇다고 했더니, 요즘 특성화고는 예전과 달라서 진학반이 따로 없다고 했다.
진학을 하려면 우선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예상했던 말이 아니라서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 다른 방법은 학교를 인문계로 옮기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도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고 9월이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상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아이의 진로 문제를 고민해보았다. 인문계를 간다고 해도 상위 1~5% 정도는 되어야 겨우 '인-서울' 대학을 갈 수 있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 정도가 아니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좀 더 잘하게 하려면 사교육이라도 시켜야 하는데 그건 아이가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 여건도 되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말했더니 아이도 진학반이 없다는 걸 알고 조금 풀이 죽어 있는 눈치다. 결국 학교를 옮기는 걸로 아이와 합의했다.
진학이냐 취업이냐... 고등학생 엄마의 고민선거 당일이 되었다. 선거일엔 도서관도 문을 열지 않는다. 아침 먹고 투표소에 가서 한 표를 던지고, 도서관에도 못 가니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나는 그 전날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저녁 먹으며 친구와 함께 식당에서 눈이 빠지도록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찍은 조희연 후보는 인지도도 낮고 특히 교육 쪽은 워낙 보수적인 분위기라서 당선이 불가능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드디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뜻밖에도 조희연이 당선된다고 나왔다. 출구조사가 정말 믿을 만한 건가? 지금까지 본 출구조사는 대부분 맞았기 때문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믿어지지 않았다. 저녁을 먹자마자 개표 방송을 보기 위해 다시 친구 집으로 갔다. 개표가 얼마 진행되지 않았지만 조희연이 앞서고 있었다. 1시간쯤 지나니 "당선 확실"이라는 자막이 뜬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조희연이 당선되는 기적과는 반대로 기초·광역단체장은 우려했던 대로 지역감정이 여전히 드러났다. 진보정당이 단 1석도 당선되지 못한 현실은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개표를 같이 보던 친구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조희연이 당선된 것 말야,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은 조희연을 잘 모르지만 보수가 싫었고 진보를 갈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30년 전이나 40년 전이나 변함없는 학교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싫었고, 게다가 세월호 사건 때문에 '앵그리 맘'이라는 계층이 생겼다던데 그들의 표도 한 몫 했을 거고 말야."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쓸모없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게 하고 내키지 않는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학교, 여전히 두발과 복장을 검열하는 학교. 이건 학교가 아니라 차라리 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희연 새 교육감님께 바랍니다맥주를 마시면서 개표를 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운 지 몇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당장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나는 조희연 새 교육감이 공약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과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입시경쟁으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없는 교육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거기다 나처럼 안정적이지 않은 직장을 가진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걱정하지 않고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 대학의 서열화나 고등학교의 비평준화를 없앴으면 좋겠다.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급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꽃다운 학창 시절에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보다는 더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앞장섰으면 좋겠다.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끝이 없다.
서울을 비롯해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되었다. 이 결과로 그동안 침체되었던 학교 분위기가 밝아지기를 바란다. 조금 오버해서 교육계의 혁명이라 할 만한 변화의 새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방학을 줄여달라고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조희연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자 아이는 말했다.
"나도 좋아. 학교가 감옥 같지 않고 신나게 놀면서 배우는 곳이면 좋겠어." 맞다. 학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감옥'이 아니라 '해방구'가 되어야 한다.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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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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