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랑 있을 땐 내 아이 얼굴이 저렇구나"

[제7회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배타고, 비행기 타고 온 신입생들

등록 2014.06.12 17:58수정 2014.06.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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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입학생들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박현영(8·전남 순천) 어린이. ⓒ 이희훈


"어젯밤에 엄마랑 같이 여수에 나와 잤어요."

더불어 입학식 참가를 위해 엄마, 오빠와 함께 오마이뉴스를 찾은 박현영(8·전남 여수)양이 말했다. 현영이 가족의 보금자리는 전남 여수 시내에서도 1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 배로 갈아타야 하는 외딴 섬 마을. 상경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날 여수 시내로 나와 하룻밤 집 밖 다른 곳에서 묵었다.

현영이는 이 모든 과정이 여행만 같다.

"오늘은 신나게 놀아야 되니까 어젯밤엔 9시도 안 되서 잠들었어요."

자랑하듯 툭 던지고 제 짝꿍의 손을 잡는다. 현영이의 짝은 오늘 더불어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또래 여자아이 예서(8·전남 순천)다.

지난 11일 오후 1시,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더불어 입학식'이 진행됐다. 7회를 맞는 오마이뉴스 '더불어 입학식'은 현영이처럼 외딴 지역에서 홀로 입학한 아이들을 모아 함께 입학식을 열고, 더불어 전국 곳곳의 동급생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올해는 경기 이천의 분교에서부터 전남 여수·순천, 강원도 동해, 경북 영덕, 멀리 제주도까지 전국 동서남북의 나홀로 입학생 19명이 가족들과 더불어 입학식에 참가했다. 본격적인 진행 전 노란 티셔츠로 모두 갈아입은 아이들은 마당에 처음 나온 햇병아리들처럼 마냥 신났다. 부모님과 인솔자, 기자들도 미아방지와 빠른 친화를 위해 함께 갈아입었다.


왁자지껄 아이들 앞으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나섰다. "내가 여기서 제일 멀리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던진 질문에 아이들의 팔이 바쁘게 올라갔다. 한 아이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자 "경기도 이천이요"라고 답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오 대표는 말을 이어 "다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재밌게 노세요!"라고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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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입학생들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함께한 개그맨 '나몰라 패밀리'. ⓒ 이희훈


곧이어 더불어 입학식을 진행해줄 개그맨 그룹 '나몰라패밀리'의 김태환, 고장환 씨와 개그맨 지망생 양진범씨가 무대 위로 올랐다. 이들은 더불어입학식의 취지에 공감해 무료 재능기부를 해줬다.


개그맨들을 향해 한 아이가 대뜸 질문했다. "외국사람이에요? 원숭이 닮았다." 멤버들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질문에 반응하자 주뼛거리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보탰다. 마술부터, 케이크 커팅까지 시끌시끌 지루함 없이 진행됐다. 비상교육출판에서 제공한 신학기 참고서와 각종 학용품 등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함께 전달했다.

난생 처음 짝꿍 생긴 아이들 '우정'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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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나홀로 입학생들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11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이희훈


오후 네시께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에버랜드 놀이동산에 도착했다. 입학식 일정 중 아이들이 가장 기다린 순간이었다.

"여기 팔 줘봐, 햇빛 뜨거워."

엄마들은 내 아이, 다른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의 팔과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줬다. 특히 여수 지역에서 나홀로 신입생 아이를 기르는 학부모 카카오톡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움직이는 데 능숙해보였다.

여수에서 두 남매를 기르는 이성화씨는 "동네가 좁으니까 내 아이 할 것 없이 같이 키우는 거죠. 나홀로 입학식도 작년에 참가한 한 엄마가 알려줘 정보 공유하고 다같이 오게됐어요"라고 전했다.

"상우가 지켜야 할 사람은 누구야?"
"임수아!"
"수아는?"
"이상우!"

인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맞잡은 손을 더욱 꼭 움켜쥔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땐 어색한 목인사를 나눈 아이들이 어딜가든 손을 놓치 않고 움직였다. 누군가 한 명이 급하게 뛰면 함께 따라 뛰며 "손 잡자, 잃어버리면 안돼"하고 짝꿍을 챙겼다. 난생 처음 짝이 생겨본 아이들 눈빛엔 '책임감'이 또렷하게 읽혔다.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사파리 버스 안에서 2m가 훌쩍 넘는 곰들을 만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파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운전기사가 "와, 최고다!"라고 칭찬하자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하이에나는 응가도 흰색이래. 먹다남은 뼈들을 많이 먹어서 그랬대."

동물에 관심이 많은 태하는 옆자리에 앉은 동생들과 친구들에게 책에서 본 동물 상식들을 전수했다.

나홀로 신입생일수록 또래들 만남 기회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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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친구들과 신나게 '나홀로 입학생들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첫 날인 11일 오후 경기도 용인에 마련된 숙소에서 함께 풍선 게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줄 속에선 엄마들의 대화들이 이어졌다.

"태하가 참 야무지더라구요. 오빠라서 그런가."
"이 엄마는 시골에서 오셨다는데 서울 엄마 같으셔."

아이들은 어느새 어색한 분위기를 떨치고 인솔자와 동행기자에게 "선생님!"을 외쳐댔다.

"선생님! 저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요!"
"대단하다. 선생님은 너무 겁났어."

함께 놀이기구를 탄 아이에게 괜히 무서운 척 하며 치켜세워주자 의기양양하게 또래들에게 달려가 자신이 탄 놀이기구를 자랑하기도 했다.

늦은 밤, 아이들 모두 숙소 큰 방에 모이게 한 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학부모들은 거실에서 다과와 함께 조촐한 간담회를 했다.

"저는 다운이 아빠구요, 강원도 동해에서 늘 있느라 서울 나들이를 잘 못 나왔는데 이렇게 아이들 또래들도 만나고 좋습니다."

한마디씩 자기 소개 후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고민인지 부모들의 깊은 고민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색한 시작이었지만 이내 크고 작은 웃음을 곁들인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반대편 방에선 아이들이 서늘한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단체 게임에 몰두했다.

"진짜 힘들다. 근데 재밌다!"
"수아야, 이리와. 빨리 빨리!"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도 아이들은 주저앉지 않고 움직였다.

"여기 또래들이랑 있으니까 없던 애교도 부리고, 못 보던 표정도 보여주고, 제 아이지만 오늘 정말 신기하네요."

야간 카퍼레이드 앞에서 한껏 소리를 지르는 상우를 보며 엄마 박혜영씨가 말했다. 상우는 올해 경북 영덕 바닷가 마을에 있는 분교에 입학했다. 전교생이 5명뿐인 작은 학교다.

"새로 학년을 맡은 선생님이 신경써서 알려주시고 챙겨주셨어요. 이런 행사가 있는지도 모르는 부모들도 많은데. 정말 감사하죠."

엄마는 한껏 신난 상우의 얼굴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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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더불어 함께 입학식'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나홀로 입학생들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개그맨 나몰라 페밀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더불어입학식 #나홀로 신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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