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전통시장에서 만난 돼지머리, 그 맛은?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48] 남미여행의 마지막 오타발로

등록 2014.06.21 16:44수정 2014.06.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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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화개장터, 오타발로 시장

키토에서의 며칠이 흐르면서 부쩍 하는 일이 줄었다. 매일 같이 다리가 저려올 정도로 거리를 걷던 것도 관두고, 저녁이면 습관처럼 마셔대던 맥주도 모습을 감췄다. 수도인 키토의 신시가지에는 우리네 못지 않은 클럽과 펍들이 즐비했지만 그 분위기에 섞일 수 없었던 우리는 시끌벅적한 밤 거리를 그저 한 바퀴 휘 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선택한 곳이 바로 오타발로. 키토의 북쪽에 위치한 산간마을 오타발로에는 매 주말이면 남미에서 가장 큰 원주민 시장이 열린다.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남미의 인디오들의 모습을 머리에 새겨두고 싶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어디든 사람 냄새가 잔뜩 나는 곳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a  오타발로로 가는 창밖 내내 따라오던 이름모를 화산의 풍경

오타발로로 가는 창밖 내내 따라오던 이름모를 화산의 풍경 ⓒ 김동주


키토 외곽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오타발로 행 버스 밖의 풍경은 도심을 벗어나더니 금세 색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울퉁불퉁 굽이진 길을 따라 드문 드문 보이는 들꽃들과 넓은 밭, 그리고 그 너머를 흐르는 계곡, 시선 멀리에는 한 눈에도 화산임에 분명한 봉우리가 구름을 잔뜩 머금은 채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쫓는다.

세 시간 정도 달려 한적한 어느 길가에 우리를 비롯한 몇몇 여행객을 내려주고 멀어져가는 버스를 뒤로 하고 시장이 열린다는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아직 시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좌우로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상점들은 역시나 하나 같이 원주민 복장을 한 인디오들 차지. 머리보다 더 커 보이는 중절모를 얹은 여인들과 양털 옷을 입은 아이들, 여인들의 손에는 하나 같이 수를 뜨는 실과 천이 들려 있다.

단 하나, 우리의 상상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익숙한 복장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기계들이었다. 최신형 휴대폰은 물론이고 피시방에서 인터넷 게임까지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이들에게도 문명의 이기는 더 이상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세상이 이만큼 변했으니 그들도 세상 속에서 생존의 방식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a 오타발로 시장  남미에서 가장 큰 원주민 시장. 여느 시장처럼 그 시작은 먹자골목이다.

오타발로 시장 남미에서 가장 큰 원주민 시장. 여느 시장처럼 그 시작은 먹자골목이다. ⓒ 김동주


남미에서 가장 큰 원주민 시장인 오타발로 시장은 원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의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가 가진 가축을 교환하는 '가축시장'이었다고 하지만, 소문을 듣고 몰려든 인디오들이 다양한 상품을 가져다 팔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모습들이 여행객의 흥미를 이끄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어느 시장이나 그렇듯 오타발로 시장의 시작도 먹거리로 시작한다. 양철 지붕을 지그재그로 맞대어 만들어 놓은 간이 건물 아래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일렬로 쭉 뻗은 복도의 좌우로는 온통 '맛집'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탁자 위의 형태가 제법 그대로 남아 있는 돼지머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a 다양한 먹거리들  돼지고기를 사용한 요리가 주를 이루고 대부분의 경우 가격은 접시당 2달러 이하다.

다양한 먹거리들 돼지고기를 사용한 요리가 주를 이루고 대부분의 경우 가격은 접시당 2달러 이하다. ⓒ 김동주


기름진 돼지고기니까 족발, 저건 순대, 이건 번데기. 대충 생김새만 보고 멋대로 이름을 정한 우리는 가장 많은 가게에 걸쳐 있는 식탁에 앉아 마음껏 음식을 주문했다. 하얀 접시에 담겨진 음식은 몇 가지 야채와 각종 소스가 뿌려져 색다른 모습이었는데 우리는 누가 보기에도 너무 많은 양을 시켜 버렸다.


뒤에서 보면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돼지로 변해 버린 센의 부모와도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족발, 닭고기, 만두, 순대, 곱창(모두 우리가 붙인 이름일 뿐 맛은 전혀 다르다)를 모조리 해치우고 번데기 차례가 됐을 때 준이 갑자기 입 속에 든 것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으엑. 이거 벌레야. 무슨 벌 씹는 거처럼 바스락거려."

a   빛깔부터가 다른 적도의 야채와 과일들.

빛깔부터가 다른 적도의 야채와 과일들. ⓒ 김동주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리자 이번에는 과일과 채소시장. 방금 채색한 듯 반짝 반짝 빛나는 과일들의 빛깔이 새삼 이곳이 적도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배는 불렀지만, 봉투 한가득에 1달러라는 이야기에 나는 정체불명의 빨간 과일을 집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보니 녀석은 온통 시커먼 무언가를 빵에 바르고는 막 요금을 치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빛깔 때문에 '지옥의 과일'이라고 불렀던 그것의 정체는 무화과였다. 목구멍을 찌를 듯 달게 볶아진 무화과 잼.

a 크래프트 마켓 야외로 나가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끝도 없는 공예품 골목이 이어진다. 기념품 구입에 이보다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크래프트 마켓 야외로 나가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끝도 없는 공예품 골목이 이어진다. 기념품 구입에 이보다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 김동주


아치 지붕이 끝나고 야외로 들어서면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수공예품 장터다. 이곳에 사는 원주민은 동이 트기 전부터 모여 그날 팔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울을 씻고, 짜고, 염색한 뒤 실을 섞어 화려한 무늬의 카펫, 담요, 스카프, 옷을 만든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공예는 어떠한가. 원주민을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을 나무 판에 새기고 곱게 채색하기도 하고 담뱃대에 우스꽝스러운 행위를 새겨놓기도 한다. 2시간이 넘게 돌아다닌 우리는 한 남자의 가게 앞에 섰다. 그는 안데스의 다양한 풍습을 나이프와, 병, 필기구 등에 새겨 놓은 작품들을 팔고 있었다. 준은 그 중에서도 원주민의 모습이 새겨진 나무상자에 시선을 뺏겼다.

a 어느 예술가의 가게  우리가 물건을 보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조각하던 그의 표정에서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예술가의 가게 우리가 물건을 보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조각하던 그의 표정에서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 김동주


얼마냐는 물음에 15달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품질만 따지자면 충분히 지불할 만한 금액이지만 에콰도르의 물가를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했던지 준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다문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버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준을 타일러 인디오 장인의 솜씨를 기리기로 했다. 몇 개의 물건을 더 집어 들고 악수를 나눈 순간에야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타발로에서 즐기는 쇼핑은 단순히 예쁜 것을 고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쌓여온 그들의 삶과 문화를 즐기는 과정 그 자체이니 가격은 아무래도 좋았다. 만약 내가 다시 에콰도르에 간다면 절반은 빈 여행가방을 든 채로 마음껏 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000년 동안 축척해 온 안데스의 그 아련한 삶을.

안녕 친구여, 안녕 남미

바뇨스(Banos)라고 불리는 에콰도르 남부의 작은 마을은 온천으로 유명해진 관광지였다. 그러나 이별을 하루 앞둔 우리는 딱히 무엇도 하지 않았다. 늦은 밤,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위해 어쩌면 함께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를 멕시코 요리를 파는 가게에서 마지막 건배를 했다.

a   에콰도르에 남아 스페인어를 배우겠다는 준과의 마지막 인사.

에콰도르에 남아 스페인어를 배우겠다는 준과의 마지막 인사. ⓒ 김동주


아주 처음에는 준은 브라질에서 나와 합류해 미국으로 이어지는 여행 끝까지 함께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늦게 시작한 녀석은 점점 남미에 빠져 들었고 에콰도르에 남아 스페인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던 나는 에콰도르에서 그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필 내일이 준의 생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다음 날 아침, 처음으로 행선지가 다른 버스표를 손에 든 우리는 어색하게 정류소 주변을 맴돌았다. 준의 버스가 먼저 기적을 울렸고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에 올라타는가 쉽더니 곧 다시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외쳤다.

"몸 조심 하고, 햄버거 그만 먹고. 너는 겁이 너무 없는 게 문제야. 멀쩡하게 살아서 한국에서 보자."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토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비어 있는 옆자리가 어색했지만 준은 준 나름대로의 여행을 계속 할 것이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겠지만 그래도 어느새 적응할 것이다.

그날 밤, 밤길은 위험하다는 숙소 주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시가지로 나간 나는 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인 '후안 발데즈'를 한 병 샀다.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여행 내내 커피 같은 기호식품에는 일절 시간과 돈을 쓰지 않았다. 반대로 준은 언제나 맛있는 커피를 그리워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간단한 쪽지와 함께 숙소에 보관된 녀석의 짐에 커피원두 한 병을 넣는 것이 남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브라질부터 시작해서 바닥을 찍고 다시 에콰도르까지 두 달을 가득 채운 남미 여정. 얼음의 땅에서의 고된 트레킹 중에 웃을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악명 높은 도시들에서 작은 사고 한 번 없었던 것도, 내가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는 언제나 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남은 아메리카 대륙을, 준은 에콰도르에서의 삶을 즐길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겠지만 그게 지구 상의 어디가 되던, 우리는 다시 만나도 지금 이때를 이야기 하며 똑같이 웃고 떠들고 티격태격 할 것이다.

아디오스, 아미고(안녕 친구)
아디오스, 라티노아메리카(안녕 남미)

간략여행정보
키토의 북부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에 네번, 오타발로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시간은 2~3시간 사이며, 돌아오는 버스는 정확히 내린 곳의 반대편에 서있으면 탈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주말시장이라고 해서 일요일에 가면 낭패다. 대부분의 장은 토요일에만 집중적으로 열리며, 살아있는 동물을 판매하는 '가축시장'은 토요일 새벽 6시에만 열린다. 이를 위해서는 금요일 저녁에 오타발로에 도착해 하루를 묵어야 한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축과 가축의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는 진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자세한 오타발로 시장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4001701

#오타발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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