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간 이소선... 낯선 남자를 만나다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25] 3. 밑바닥 인생

등록 2014.06.27 10:44수정 2014.06.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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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이소선이 주머니를 뒤져 보니 단돈 15원뿐이었다. 결심을 굳히자 뒤도 안 돌아 보고 집을 나섰다. 머뭇거리다가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것만 같았다. 다른 생각은 일체 안 하기로 했다. 오로지 서울만 가자. 서울에 가서 돈을 벌어야지 살 수가 있다.


이소선은 이 돈을 가지고 부딪쳐보기로 했다. 시내버스에 올라 10원을 내고 대구역에 도착했다. 5원밖에 안 남았으니 이 돈으로 어떻게 기차표를 살 수 있겠는가. 무작정 역무원에게 갔다.

"아저씨, 정말로 미안합니다. 제 사정 좀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실은 제가 서울에서 대구까지 빚을 받으러 왔다가 사람도 못 만나서 돈 한 푼 못 받았어요. 차비까지 다 날려 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서울 집에서는 젖먹이까지 해서 어린애들이 이 어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딱한 사정을 좀 봐주실 수는 없는지요."

이소선은 생각나는 대로 거짓말을 꾸며댔다,

역무원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사정해도 공짜로 기차를 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역무원 옆에 바짝 붙어서 한 번만 선처해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래도 역무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데도 매정하게 아는 체도 하지 않다니 세상 인심이 야속하기만 했다. 이소선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이렇게 사정하는데 한 번쯤 봐 줄 수도 있잖아요. 나도 할 수 없어요.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니까 무조건 서울 가는 기차를 탈 겁니다. 내가 차표가 없어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저씨가 다 책임지세요."


이렇게 억지를 쓰니 역무원이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한참이나 이소선의 행색을 뜯어보았다. 그는 기다려보라는 말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돌아온 역무원이 이소선의 손에 무임승차권 한 장을 쥐어 주었다. 이소선은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역무원 아저씨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개찰구를 빠져 나갔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소선이 어린 자식들을 두고 울면서 서울로 떠났던 대구 재마루길을 아들 전태삼이 걷는다 ⓒ 민종덕


'아! 결국 나는 이 차를 타야 하나? 어린 지식들은 어찌하고...'

이소선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이 몽롱해져서 서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기차를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소선은 무임승차권을 손에 꼭 쥐고 기둥에 기댔다.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느라고 그의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소선의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기차의 바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한번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하고 말아야지. 이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이소선은 출발하고 있는 기차에 올라탔다. 가슴이 메어 울 수도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대구 시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대구를 떠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아니야,내가 이러면 안되지. 이것이 자식들을 위하는 길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야.'

이소선은 입술을 꼭 다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언제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자식들 곁을 떠나야 하다니...'

차창에 애들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배가 고프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소선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가슴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절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돼.

이소선은 아이들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고개를 들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남자들은 담배를 피울까, 나도 담배라도 피우면서 이 시름을 잊어볼까.'

이소선은 고통스러운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담배꽁초를 하나 주웠다. 그러나 그에게는 성냥이 없었다. 아무리 사정이 절박하다 해도 남자들한테 담뱃불을 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소선은 주머니에 찔러 두었던 5원으로 3원짜리 성냥을 한 갑 샀다. 자리에서 일이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다. 어지럼증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그래도 이소선은 담배꽁초 하나를 손끝이 뜨거워질 정도로 다 피웠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더니 몸에서 힘이 쑥 빠져나갔다. 어질어질하고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며칠을 굶주린 데다 극심한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거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얼마간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이소선은 감고 있던 눈을 그때야 뜰 수가 있었다. 담배를 피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둑어둑한 새벽이 되자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오니 막상 갈 곳이 없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거리는 어둠이 덮여 있었다. 이소선은 대합실 밖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이런 꼴을 하고 아는 사람을 찾아가기는 죽어도 싫었다.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벌 것인가, 머릿속에는 그 생각 하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거리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소선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배가 조금 나온 중년의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혹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기다리는 게 아닙니까? 식모자리라도 괜찮다면 내가 알아봐 줄 수가 있는데요."

그는 그렇게 해서 이소선에게 접근하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배달해 주는 집 중에서 식모를 구하는 집이 많이 있어요.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괜찮다면 나를 따라갈 수 있겠어요?"

이소선은 더운밥 쉰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선뜻 그 남자를 따라 나섰다. 이렇게 빨리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니. 운이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이소선은 사내를 따라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했다.

"아주머니, 미안하지만 이쯤해서 우리 집에 가 있어야 하겠는데요. 내가 다른 일이 있어서 어디 가봐야 할 데가 있거든요. 우리 집에 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좋은 집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남자가 나를 도와주려는 줄 알았더니 하는 짓을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

이소선은 남자가 엉뚱한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너한테 당할 것 같냐. 어디 한번 네놈이 당해봐라.'

사실은 그 남자가 미워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워낙 궁지에 몰려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아저씨, 내가 가진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해요. 그러니 집에까지 갈 차비 좀 주시요."

남자는 금세 못 미더워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하는 수 없었던지 남자가 주머니에서 5백 원을 꺼냈다.

"아주머니, 그러지 마시고 구로동을 간다고 해도 집을 찾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왕십리 광무극장 앞에서 이따가 오후 1시쯤 해서 만나는 게 어떨까요?"

이소선은 남자의 이 말을 듣자 그의 속셈이 어떠하다는 것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저씨 말대로 하지요. 그런데 아저씨 돈 천 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광무극장 앞에서 못 만나면 어떻게 물어서라도 내가 구로동 집을 찾아가지요."

남자는 담배를 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 원을 더 내놓았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지만, 우유 배달하면서 불쌍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돈을 빼앗다시피 하는 것이 꺼림칙했다.

'당신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거요.'

이소선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디 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동정해 줄 사람을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저씨, 내가 혹시 아저씨 집을 찾지 못해서 만에 하나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남 욕하지는 마세요."

이소선은 듣기에 따라서는 꼭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듯한 말을 남기고 그 남자와 헤어졌다.

'자, 이제 내 손에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밑천이 생겼다. 이제 할 일을 찾아보기로 하자.'
#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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