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가르치는 선생에게 법내·법외는 없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을 기다리며

등록 2014.06.19 11:36수정 2014.06.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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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마음 도려낸 '종이배'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서울지역 전교조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선생님 마음 도려낸 '종이배'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서울지역 전교조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남소연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오늘(19일)로 65일째를 맞는다. 부도덕한 해운사, 그들이 부린 허수아비 선원들, 그 모든 이들을 만든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주범'이었다. 그 '주범'의 진정한 주인공들을 만든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즈음 읽은 책에서 만난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1879~1953)를 떠올린다. 그는 식민치하 조선의 마지막 일본 총독이었다. 일왕의 항복 선언 후, 조선을 떠나던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장담하건대 한국이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인에게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그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의 힘일까. 이 나라 대한민국 선생들은 지금껏 아이들에게 '그대로 있으라'를 가르쳤다. 주인이 노예를 대하듯, 그대로 있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아이들을 겁박했다. 유구한 동방예의지국의 아이들은 그런 선생들의 말을 따랐다. 어른과 시스템의 말에 순종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10개 반 중 8개 반이 그렇게 몰살 당했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 창립선언문에서 사람들에게 '선생'이라 불리던 교육 노동자들은 그렇게 절규했다. 독재권력이 강요한 사이비 교육으로 지식판매원, 입시기술자로 내몰린 자화상을 그들은 그렇게 자조했다.


그 선배 교사들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전교조에 가입했다. 정식으로 교사 된 지 보름여가 지난 2000년 3월 중순경이었다. 그렇다. 나는 교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소속되어 있는 15년차 조합원이자 교육노동자다. "민족교육 만세, 민주교육 만세, 인간화 교육 만세"를 외치며 참스승이 되겠다고 가입한 조직이 전교조였다.

그러나 나는 껍질만의 전교조 교사였다. 25년 전 전교조는 창립선언문에서, 민주시민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에게 교원 스스로 민주주의 실천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교실로 전교조 자신을 규정했다. 사회의 민주화는 교육의 민주화에서 비롯됨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런 전교조의 선언을 나는 과연 얼마나 실천했나. 지난 15년의 삶을 돌아본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있으라'를 가르쳤다. 나 자신에게 '그대로 있으라'를 속삭였다. 그대로 있지 않음으로써 아이들과 내게 닥칠 고난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이렇게 묻는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

아이 가르치는 선생에게 법내·법외는 없다

전교조는 백 퍼센트의 선이 아니다.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전교조가 있었기에 나는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를 끊임없이 떠올릴 수 있었다. '법내'든 '법외'든 상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 조직에 '법내'와 '법외'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되었다. 그렇게 법 안에서 보낸 시간이 15년이다. 그런 전교조가, 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된 교사 9명이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로 법 밖으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이라는 긴 이름의 1심 선고재판이 오늘(19일) 열리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전교조에 비관적인 전망을 전한다. 정치적 자신감으로 무장한 박근혜 정권을 서울행정법원의 일개 판사들이 무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근거도 있다. 일본 아베 총리가 임명했다는 조롱을 듣는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와 제자 연구를 가로채 돈을 챙겼다는 비난을 받는 김명수 교육부장관 내정자 등이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눈물 몇 방울로 선거 분위기를 반전 시킨 뒤 홀연히 이 나라를 떠난 박 대통령이야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6만 교사를 조합원으로 둔 전교조다. 정부가 우리를 내치면 과감하게 '법외'로 나가자. 법 밖에 있는 거친 광야로 돌아가자. 우리가 최초로 있었던 그곳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싸우자.

정부가 우리를 '법외'로 내치면 그 '법외'를 우리의 '법내'로 삼아도 되겠다. 쫄지 말자. '법외'로 밀리면 우리는 우리만의 '법내'를 지키면 된다. 허풍이 아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법외'는 우리의 '법내'이자 세계의 '법내'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는 지난 3월 27일 해고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는 노조법 및 교원노조법 관련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한민국은 '5등급' 국가임을 발표한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국제노총)도 있다. 5등급은, 지난 5월 19일 국제노총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세계노동자권리지수'(GRI)에서 한국이 얻은 '점수'다. 국제노동기구(ILO) 자료에서 지난 1년간의 97개 노동권 관련 지표를 뽑아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이 얼마나 잘 보장되는지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5등급은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나라'다. 중국·캄보디아·방글라데시·나이지리아가 받은 등급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에서는 노동법이 명시적으로 존재하나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최하위 등급이다. 돼지고기라면 등급 외라 판매조차 못한다.

이보다 아래에 '5+등급'이 있긴 하다. '해적 국가'로 악명 높은, 법치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소말리아가 대표적이다.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남수단이나 시리아 역시 5+등급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겼다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이 해적 국가와 어금지금하다. 이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일까.

법과 명령, 규약들이 존재한다. 노동자는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헌법 제33조 1항이다. 해고된 자와 실직자는 조합원 자격이 부정된다. 노동조합법(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다. 전교조 내부 규약이다. 정부는 노조의 위법 사항에 대해 노조에 시정 요구를 할 수 있다. 노조법 시행령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명저 <시민의 불복종>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 불의의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나는 전교조를 향한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인 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을 거부한다. 불의의 법이라고 여겨서다. 정부는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하여 그를 노조 밖으로 추방하는 노조를 바란다. 그런 노조를 노조라 할 수 있는가. 시대착오적인 교원노조법은 국회에 계류중이다. 개정이 필요한 악법이라는 말이다. 내 불복종의 근거들이다.

인간이 있은 후에야 국민이 있다. 교사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법이 있으나 정의가 먼저여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국민을 원한다. 국민보다 교사를 원한다. 정의는 말로만 외치면서 법을 앞세운다.

나는 국민이 아니라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교사이기 이전에 국민이 되고 싶다. 법보다 정의를 따르는 삶을 살고 싶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판결을 기다리는 이 새벽의 외침이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전교조 #교원노조법 #국제노동조합총연맹 #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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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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