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아래 돌 틈 사이로 부추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명신
"모든 꽃은 자연 속에 피어나는 영혼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
목공소는 일찌감치 컨테이너로 정했다. 공간이 필요했지만, 건물을 짓는 것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탓이다. 컨테이너의 크기는 기본형인 3×6미터. 생계형이라기보다는 취미형이라 이마저도 과분하다. 굳이 새것일 필요는 없어 금산과 대전에서 근 두 달이나 찾아 헤맨 끝에 중고로 마련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오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목공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한동안 목수로 일한 적이 있다. 학교 건물과 1000여 세대의 학교 아파트를 관리하는 시설관리단에 속한 목공소였다. 몸은 고됐으나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로 기억된다.
목공소는 또 다른 학교였고 목공은 훌륭한 커리큘럼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배워 두면 자급하는 삶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도서관 등 좀 더 편한 곳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이유는 지루하지 않고 창의적인 일로 보여서였다. 물론 나무를 만지는 일도 좋았다.
익숙하지만 죽은 재료에 불과했던 나무를 새롭게 인식한 것은 시골로 내려와서다. 컨테이너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평탄 작업과 함께 일곱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을 때였다. 대부분 가느다란 사철나무 묘목이었으나 팔뚝 굵기의 복숭아나무도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모양은 왜소했으나 아래는 그렇지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뿌리 주변을 판 후 나무를 잡고 흔들다 중심부의 가지가 약간 찢어졌다. 잠시 후 그 부위에서 점액질의 진액이 고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나무의 피처럼 느껴졌다. 그가 생명이 있는 존재로 다가왔고 미안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왜 고대인들이 토테미즘을 숭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마당의 향연이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