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암투병에 짜증내던 남편, 실상은 이랬다

[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②] '곁'의 이야기를 듣다

등록 2014.07.01 14:19수정 2014.07.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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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은 지난 두 달간 '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투병 후 일상에 복귀한 25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 실감한 것 중 하나는 투병과 복귀의 과정에서 '곁'을 이루는 '관계'의 중요성이다. 7~8월에는 수다회 <'곁'들의 이야기>를 열어 투병 당사자의 가까이에서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중 한 그룹은 투병 당사자들의 '남편'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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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투병 후 일상에 복귀한 사람들의 수다회 <'곁'들의 이야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 freeimage


몸이 아프면 외롭다. 몸을 관통하는 고통이 온전히 내 몫임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병을 겪는 일이란 단지 몸  속 암세포와의 싸움, 통증, 투약과 회복 등 흔히 말하는 육체의 경험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내 몸과의 관계를 새로이 맺어나가고, 삶과 죽음에 대해 수차례 질문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며, 때론 이 모든 것이 육체의 경험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에서 그 복잡하고 중요한 과정을 함께 나눌 이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 사람이 몸의 고통과 외로움 자체를 덜어줄 수는 없어도, 당사자가 그 고통과 외로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그것을 어떤 삶으로 이어가는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투병 당사자의 일상 복귀 이야기에는 언제나 가까운 타인의 눈빛과 체온에 대한 기억이 스며 있다.

중요한 삶의 변화를 함께 나눌 타인의 존재

"이렇게 얘기하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남편이 정말 되게 나한테 중요한, 그 옆에 있었네요. 힘들 때 같이 있었던 게 남편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내가 너 살렸다'고 막 이랬는데 그땐 공감 안 됐거든요. 그냥. 병이 낫고 나서는 너무나 남편이 고마웠는데, 생활을 좀 하다보니까 묻히고, 또 나도 시어머니 간병을 하면서 그만큼 했다, 이런 보상심리도 좀 있었던 것 같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남편이 옆에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 K(장결핵, 40대)

배우자는 투병 중 중요한 고비를 넘기는 것부터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을 나누는 것까지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신체적 감정적 도움을 주고받고, 경제적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전망도 함께 바라보는 관계이다. 한편 그렇게 가깝고 중요한 관계이기 때문에 투병이라는 예상치 못한 과정에서 서로 의지하고 다독이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다.

"남편이 굉장히 무뚝뚝하고 표현도 안 하고 그런데 또 마음은 한편으론 여린 거예요. 그러니까 좀 술을 많이 먹었어요. 자기 딴에는 괴로우니까. 그런 게 많이 힘들었어요. 자기도 속상해서 집에 와서 보면 안됐으니까 '뭐 아파가지고 그러노? 아프지 말지.' 이런 말들도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줄임)


내가 아픈 게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 같다고 '미안하다' 이러는데, 저는 미안하다고 하는 자체가 싫은 거예요. 내 몸이 힘드니까. 그래서 아픈 중에도 많이 다퉜어요. 지금은 회복이 많이 돼가고 있는 중이에요. 마음을 아니까." - J(유방암, 50대)

"와이프가 아프면 남자들은 일단 짜증을 내요. 뭔가 자기는 와이프를 위해서 비싼 데 갔단 말이야. 근데 비싼데 반도 못 먹고 그러니까 막 짜증난다는 거야. 근데 뭐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잖아. 그때 잘해주려고 평소와 너무 다른 행동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특별한 거를 할 필요는 없어." - L(유방암, 50대)

"남편한테 암이라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더 시무룩하고. 저쪽 방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말도 안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화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얼굴 굉장히 안 좋고, 일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그러면서 나는 울고불고할 새도 없었어요. 그냥 애들 키우고, 얘기 좀 하려 하면 남편은 그냥 방에 들어가고. 속상했죠." - Y(갑상선암, 40대)

'함께한다'고 하지만 경험과 감정은 일치할 수 없고, 아프고 힘든 가운데 그 간극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하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대다수 남성들에게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고 돌보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적게 주어지는 사회이기에 남편으로서 투병하는 배우자를 대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가깝지만 쉽지 않은 관계, 남편으로서 함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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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투병 후 일상에 복귀한 사람들의 수다회 <'곁'들의 이야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 pixabay.com


하지만 배우자의 투병 경험을 계기로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경험과 감정의 불일치 자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배우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위로와 조언을 해주면서 이전과 다른 관계로 접어들기도 한다.

"우리 남편은 자기랑 같이 사는 와이프는 '뭐든 다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내가 막 이렇게까지 우울해져서 힘들어 하니까 나한테 그 얘기를 하더라고. 내가 힘들다 내색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한 번도 같이 사는 배우자가 '이래서 힘들 것이다'라고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거지.

그러다가 막상 딱 크게 아파 버리니까 '앗 뜨거워라' 했나 보더라고. 그래가지고 '나랑 너랑 제일 친하게 살았는데, 야, 네가 아프면 안 되지 않냐'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뭐 '인제 좀 더 친해진 것 같은데, 아파버리면 안 되지.' 별로 표현 잘 안하는 사람인데, 뭐 그런 표현." - A(갑상선암, 50대)

"근데 이제, 가사분담을 하더라고요. 원래는 분업이 됐다고 항상 주장하는 사람이거든.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가사노동은 내 몫이고, 돈 버는 건 자기 몫이라고 그랬는데, 어느 날 보니까 정말로 집안일을 나누기 하고 있더라고. 이제는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청소하고 설거지 안 돼 있으면 설거지하고. 그리고 빨래 널어야 될 일 있으면 널고. 그런 정도, 기본 도울 수 있는 거는 돕고. 그리고 내 컨디션을 봐주더라고." - A(갑상선암, 50대)

"남편이 내가 우울하지 않게 하려고 되게 애를 썼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런 걸 되게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라고 하는 말이 저한테 굉장히 큰 지지대가 됐어요. 그냥 나의 있는 그대로. 남편이 계속 끊임없이 얘기해주고 서로 그거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고, 그게 저는 병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 M(유방암, 40대)

그리고 그렇게 함께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병 당사자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으로 만들기도 한다.

"남편은 나름대로 자기의 케어로 인해 부인이 완치됐다는 경험들을 가지고. 가끔씩 밤에 둘이 누워서 얘기를 하다보면, '우리의 스토리가 굉장히 풍요롭다, 풍부하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우리가 나중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하더라도 잘 헤쳐나갈 것 같다'라고 하는,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줄임) 저는 그래서 병을 앓았던 게, 되게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진짜 많이 들더라고요." - M(유방암, 40대)

더 많은 '남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투병하는 사람의 가까이에서 일상을 나누고 회복과 복귀를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남편으로서의 케어와 지지는 더욱 어렵다. 앞서 적었듯 남성의 사회화에서 돌봄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중시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 결과 배우자를 돌보는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서로의 경험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친정어머니, 여동생, 친구에 의해 가장 1차적인 돌봄을 받는 경우가 많고, 이들 여성 돌봄 제공자들은 서로 서로 그 어려움과 노하우를 나누곤 한다. 그러나 투병하는 배우자를 돌보는 남편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남편들과 경험을 공유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그렇듯 투병하는 배우자와의 관계도 노력하고 새롭게 배워야 할 일 투성이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는 아직 그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남편으로서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경험했고 어떻게 돌파했는지, 또는 후회되거나 여전히 고민되는 일은 무엇인지, 어떤 지원이 필요했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사회적으로 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 이야기는 투병하는 여성을 포함하여 그 가족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꼭 만나고 싶습니다
- 수다회 <'곁'들의 이야기> 참가자를 기다립니다. 대상은 중증질환을 겪어내고 일상에 복귀한 여성의 '남편'입니다. 수다회는 7~8월 중 1회 진행하며, 참가자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수다회 결과는 본 사업과 관련한 활동에 활용되며, 내용은 익명이 보장됩니다. 신청마감 7월 4일.
- 참가 신청 및 문의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02-737-5763 womensbody@womenlink.or.kr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아픈 여성 #여성 건강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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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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