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때문에 지하철에서 한 번도 마음 편히 꺼내지 못한 그 책'뚱뚱'하다는 단어가 이렇게 오랫동안 내 마음의 족쇄가 될 줄은 몰랐다.
후마니타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멘붕의 전조가 감지됐다. 우선 책의 제목이 문제였다.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 예뻐지느라 아픈 그녀들의 이야기>. 출판사 관계자들이 과도한 센스를 뽐내고 말았구나. 물론 센스가 돋보이는 작명이지만 진짜 뚱뚱한 사람들과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제목이다.
비만인 내가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발견했더라면 분명히 못 본 척 지나쳤을 제목.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그런 제목이었다.
며칠 후 북콘서트의 포스터가 도착하자 멘붕이 가속화됐다. 행사 이름마저 책 제목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로 간택된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나는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라는 타이틀의 북토크에서 유일한 비만인이 되어, 그것도 무대 위에 설 운명에 처했다.
한창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던 몇 달 전,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면접관을 만나고 말았다. 채 쉰 살이 되지 않은 듯한 작은 마케팅 회사의 대표와 면접 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다. 이 멀쩡하게 생긴 중년남이 대화 도중 아무렇지 않게 "덩치가 커서 밥도 많이 먹겠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영애를 '덩어리'라고 불렀던 사장과 개지순의 얼굴이 떠올랐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나한테 벌어진 것이다. 당황한 나는 중년남께 썩은 표정을 적나라하게 건네 드리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냐"며 급냉각된 면접을 마무리했다.
자타 공인 멘탈 '갑'인 나라고 해도 이 정도 강 펀치에 멀쩡할 리 없다. 나는 당시 외부 공격은 물론 내부 폭격에도 굉장히 민감한 궁극의 예민체 '취업준비생'이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살이 찔 때 본인이 가장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겠나.
거기에 체중 감량을 하지 못한 상태로 심지어 PR의 세계로 업종 전환을 시도하던 나의 창호지 낱장 같았던 자신감은 그날 바닥을 보고 말았다. 다행히 취직이 되기 전까지 여러 회사의 면접을 거치면서 더 이상 인신공격을 하는 매너 실종자들을 만날 일은 없었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내게 불면의 밤을 선물했다.
'뚱까' 북콘서트 현장, 아무도 살 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