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화백과 우진교통 김재수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충북 제천 이 화백의 자택 정원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 화백은 김 대표에 대해 "구체적인 삶의 변화에 뛰어들어 성장시킨 것에 박수를 치고 싶다"며 "10년 동안 바친 삶이 적어도 헛고생은 아니었기에 고맙다"고 높이 평가했다.
유성호
#에필로그 : 아주 오래된 만남
"흔히 '입 진보'라는 말이 있죠. 말만 하면 자기 할 일은 끝이라는 병든 지성들이 많죠. 그런데 재수씨는 달랐어요. 건설운수업은 성격이 나쁜 직종으로 일반인들이 인식을 하는데, 작지만 그 한 귀퉁이를 맑게 깎았어요. 구체적인 삶의 변화에 뛰어들어 성장시킨 것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10년 동안 바친 삶이 적어도 헛고생은 아니었기에 고마워했어요."이철수 화백이 지난 6월 18일 자신의 집을 찾아온 우진교통 김재수 대표에게 한 말이다. 이 화백과 부인 이여경씨가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 두 번째 초청자로 김 대표를 추천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 화백은 김 대표의 주례 선생님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뒤에도 김 대표는 이 화백의 집에 가끔 찾아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뜸했단다.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철수(아래 이) : 얼마 전까지는 대종경 판화의 밑그림을 그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요즘은 틈틈이 농사를 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양파를 거둬들였고 내일은 마늘을 거둡니다. 해가 설핏할 때에는 바깥에서 일하고 낮에는 판화 작업을 합니다.
기자 : 요즘 마음자리는 어떠신가요? 매일 쓰시는 '나뭇잎 편지'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배어나왔었는데…….
이 : 표현이 좀 거친데,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서 일반 승객까지 300여 명 되는 사람들이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본 셈이었죠. 충격이 컸습니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요. 요즘은 생명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문창극이 출몰해서 또 다른 형태의 분노와 마주쳤어요. 엊그제 엽서에 썼는데 세월호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읽을 수 있었다면 문창극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볼 기회가 된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안의 '문창극' 기자 : 무슨 의미죠?
이 : 문창극이라는 한 개인에게는 여러 가지 병증 같은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권력에 관한 열망도 보이고 자리와 자신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죠. 애국의 방법에 관해서도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국민 일반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는데 그런 류의 병든 내면은 그 사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기자 : 두 사건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이 : 문제의 해결, 그러니까 그 열매가 맺기까지 구체화하고 집요하게 붙잡고 가는 힘이 우리 사회 전체에 모자라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일이든 짧게 분노하고 짧게 슬퍼하죠. 답을 찾을 때까지 사회가 변할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죠.
또 우리 안에도 문창극이 있죠. 우리 사회 전체가 탐욕에 물들어있어요.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괴물처럼 변해버린 인간상을 옆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 대목에서 우진교통 김재수씨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재수 씨를 (아만남에) 추천한 것도 그 때문이죠.
기자 : 두 분은 어떤 인연이죠?
김재수(아래 김) : 제가 비합법 노동운동을 할 때였어요. 철수 형님이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1988년 전후였어요.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뭣하지만 제가 도움을 요청했고, 형님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 주례도 부탁드렸어요. 철수 형님보다 제가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도(웃음), 결혼식에 오셔서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제 인생의 격변기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지금도 제가 어려울 때 찾아뵙고 있습니다.
기자 : 김재수 대표를 오랫동안 보아오셨는데, 평소에 하지 못한 질문이 있나요?
이 : 특별한 건 없고요, 마누라한테 잘하나? (웃음)
김 : 잘 못합니다.
이 : 이런 게 문제야!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은 가족경영도 잘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지들끼리 술 먹고 늦게 들어가면 되나. (웃음)
김 : 집에 들어가면 12시나 1시입니다. 가족에게 제일 미안하죠.
기자 : 막상 우진교통 노동자들에게는 가족을 돌려드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나요?
김 : 며칠 전에 3만 원권 뮤지컬을 노동자들에게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회사에서 2만 원을 지원할 테니, 개인이 1만 원을 부담해서 부부나 가족들끼리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100명의 노조원들이 뮤지컬을 봤습니다. 회사 내부의 가치는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막상 저는 우진교통 중심이고, 집 사람이 제게 잘 해줍니다.
이 : 우리 사회는 월급을 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삶의 스케줄이 짜이고 재충전의 보금자리라고 할 가정이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죠. 그런데 나와서 보면 향락 문화입니다. 부정한 거래일수록 음란한 밤 문화에서 벌어집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의미로 그걸 강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