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들리는 기이한 소리...그게 시작이었다

10년을 기다리고 1년을 준비한 성미산오케스트라, 첫 공연 막전막후

등록 2014.07.03 16:52수정 2014.07.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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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월 22일 성미산오케스트라 창단공연

6월 22일 성미산오케스트라 창단공연 ⓒ 쫄쫄 김종운


도심 속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살아가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이 2014년 여름, 또 하나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그간 주민 동아리 형태로 밴드나 노래패, 합창단을 꾸려 다양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해오다 이번에는 '마을 오케스트라'라는 형식으로 정식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오케스트라 창단은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담아냄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구현해 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애초 '성미산 지키기' 싸움을 기점으로 뭉치기 시작한 주민들의 공감이 주로 생태적 삶과 건강한 육아공동체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음악을 통한 정서적 교감을 이뤄보고자 한 걸음 더 나선 것이다.

10년 전 품었던 꿈의 결실

성미산오케스트라는 성미산학교 개교 초창기부터 품어왔던 작은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학교'를 지향하며 시작된 성미산학교.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학교'라는 우리들의 모토는 거창한 이념이나 슬로건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함께'라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유대감 속에 살아 숨 쉬는 과제였다. 얼굴이 다르듯 각자 조금씩 다른 생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 나누고 조율하면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그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오케스트라는 그래서 시작된 꿈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데 있어 음악은 강력한 구심이 되곤 한다. 서로 다른 악기, 서로 다른 소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뤄내는 아름다운 선율은 지치고 피곤한 마음에 위로를 주고, 행복한 꿈을 키우게 한다. 특히 아이들의 예술교육은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고 마을오케스트라 같은 데서 마을 어른들을 만나며 배우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오케스트라의 첫 물꼬를 성미산학교에서 트기로 한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당장에 실현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정한 음악적 기량을 갖추기 위해선 체계적인 연습이 필요하고, 경험과 의지를 가진 교사도 필요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악기도 마련해야 했다.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음악시간에 리코더를 배우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하면서 조금씩 음악의 즐거움을 키워갔고, 어른들은 마을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마침내 지난해 6월 성미산학교 방과후교실에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기 수업이 개설되었고, 학교 밖으로 흘러나가는 우리의 연주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한두 명씩 합류하기 시작했다.


플루트 부는 엄마, 바이올린 켜는 아들이 있는 자리

a  6월 22일 성미산오케스트라 창단공연 리허설

6월 22일 성미산오케스트라 창단공연 리허설 ⓒ 띠용 이영은


지난 1년간 성미산학교에서는 찢어질 듯 서툰 바이올린 소리가 새어나오고, 관악기 파트에서는 난데없는 '부부젤라' 소리가 터져나오기 일쑤. 저녁 시간 누구네 담장 너머에선 '기이한' 첼로 소리가 들려왔다. 악보도 읽을 줄 모르던 아이와, 난생 처음 클래식 악기를 잡아보는 어른들의 첫 출발은 마을 오케스트라 창단의 꿈을 '미션 임파서블'로 여기게 만들었다.

2013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한 두 차례의 음악캠프는 단원들의 실력이 부쩍 향상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었다.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 그러나 우리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손가락엔 물집이 잡히고, 입 주변 근육에 경련이 일어도 아이들은 취침시간을 넘겨서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도 편하게 잠을 청할 수는 없어 한두 명씩 슬그머니 악기를 들고 나와 연습에 동참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들려오곤 했다.

"첨엔 못할 것 같았는데, 하니까 되네요!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러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맘이 자꾸 생겨요."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충분히 음악을 배우고 즐겼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에 감동하여 무딘 손을 더 열심히 놀렸다. 하루하루 소리가 달라지고 제법 그럴 듯한 화음이 울려퍼졌을 때, 단원들은 서로에 대한 감동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맛보았다.

그렇게 뒷줄에 앉은 엄마 단원의 플루트 소리와 앞줄에 앉은 아들 단원의 바이올린 켜는 소리는 조금씩 자신을 다듬어가며 1년간 행복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 떨리는 첫 무대에 서게 되었다.

진정한 마을 오케스트라를 꿈꾸며

지난 6월 22일 늦은 7시 30분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그때 그곳은 성미산오케스트라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었다. 75명의 단원들은 긴장된 표정이었으나 당당한 발걸음으로 600여 명의 관객들 앞에 섰다. 그리고 10년을 기다리고 1년을 준비했던 우리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으로 시작하여 영화 <미션> OST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제곡, <베토벤 1번 교향곡> 1악장, <리베르 탱고>와 드라마 <하얀거탑> 주제곡 <비 로제트>,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OST, 그리고 앙코르곡으로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5번>까지 순서대로 연주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영혼을 담았고 마음을 담았던 우리의 연주는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원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했던 관객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와 연주자들에게 보내주었던 응원의 눈빛들은 우리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오케스트라의 성장은 연주자와 관객들이, 그리고 마을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성미산오케스트라는 나이, 성별, 실력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선율의 감동을 만들어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음악의 힘을 증명해주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리를 가다듬고 친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 그 모든 과정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장 감동적으로 전해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느끼게 되는 감정은 무한한 삶의 기쁨과 자신감이다.

앞으로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참여하고 함께 즐기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을 안팎에서 편안하고 재미있는 연주들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아름다운 하모니의 연주자이자 관객이 되는 오케스트라.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마을 오케스트라이다.
덧붙이는 글 이설영씨는 성미산오케스트라 운영대표로, 첼로를 연주합니다. 김수연씨는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오케스트라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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